그리움으로 살아내는 하루
어르신 방 한쪽, 파란색 커다란 비닐봉지 안에 모든 필수품과 옷가지가 가득 담겨 놓여 있다. 누구도 손댈 수가 없다. 철통같이 사수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매일 "내일이 무기다"라는 말씀과 함께, 큰아들이 모시고 집에 가실 거라 믿으며 기다리신다.
그러나 큰 아드님은 오래전 돌아가셨다. 어르신은 그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다. 작은 아드님께서 "어머니, 좋은 데 있으니 함께 가보자"라고 하여, 좋은 구경시켜주는 곳에 데려가는 줄 알고 따라오셨는데, 당신을 이곳에 두고 갔다며, "이놈의 자식, 만나기만 하면 가만 안 둔다"는 말씀을 수없이 하신다.
엘리베이터 앞에 서성거리며, 가족들이 오기만을 고대하고 계신다. 그 기억이 충격으로 어르신께 남아 있는 듯하다.
문은 닫혔지만, 마음은 여전히 열려 있다. 기다림은 그 문턱에서 시작된다...
하루하루 온몸으로 스트레스를 맞으시는 듯 웃음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말을 건네는 순간, 당신 말씀만 읊조리시며 탄식 섞인 푸념뿐이다.
당신께서는 여전히 살던 집에 가스 검침이 오기로 되어 있다고 하시고, 친구와의 약속을 기억하고 계신다. 지금 실내화를 신으신 채, 누군가 당신 신발을 가져갔다며 찾아내라 우기시기도 하신다. 수돗물이 아닌 변기통에 빨래하신다며, 옷가지들을 담가 놓으시기도 하신다. 치매 중증 어르신이신데, 아무리 설명하고 위로를 해보아도, 어르신께는 당신이 살던 집 외에는 위로가 되지 않는다.
무조건 집에 가겠다는 투정뿐. 큰 보따리를 혼자 싸셨다 푸셨다 하시며 긴 하루를 접고 펴신다. 95세 나이를 잊으시고, 예전 살림하시던 생각으로 억지를 부리시기도 한다. 가족 전화번호가 적힌 쪽지를 들고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시지만 연결되지 않는 전화번호로 계속 시도하신다.
결국 당신이 키우셨다는 손녀에게 전화를 걸어 애원을 하신다. "빨리 와서 데려가 달라"며, "얼마나 보고 싶은 내 새끼들인데…"라고 하신다. 그렇다, 언젠가는 모든 기억이 지워질 것이다. 하지만 남아 있는 기억 속 가족의 모습만은 그리움으로 깊어지고 있다.
거실에 나와 투덜거리신다. "엊그제 같은 세월이 다 어디 있냐… 인생무상(人生無常)이다"라고 하신다. 어르신의 시간은 아직 젊은 날에 젖어 있는 듯하다. 가족과 함께했던 행복을 떠올리며, 모든 일상이 낯선 곳으로 변해버린 이곳 생활에 적응하기가 힘겨우신 듯하다.
일부러 일거리를 드려보기도 한다. 냉이, 부추, 봄나물 다듬기, 마늘 까기 등을 하시며 이야기 삼매경으로 유도해 본다. 여기서도 즐거움을 찾으실 수 있도록, 각종 프로그램 시간에 맞춰 노래자랑, 풍물놀이, 그림 그리기, 음악 체조 등 다양한 정서 지원을 시도해 본다.
처음에는 누구에게나 힘든 시간이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는 지내시다 보면, 조금씩 잊히듯 웃음도 다시 찾으시게 될 것이다. 가족보다 더 아름답고 행복한 선물은 없겠지만, 각자의 삶이 정해져 있기에 현실은 때때로 냉혹할 수밖에 없다. 하루가 길게만 느껴지는 어르신의 일상 속 모습은 언젠가 해바라기 꽃처럼 활짝 피어날 날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날이 오기를, 우리 모두가 함께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