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한판 속에 피어나는 웃음
거실 한 귀퉁이, 장기판을 사이에 두고 날마다 퉁퉁 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장군 받으시오!” “멍군이오!” 외치며, 어르신들의 승부욕이 솟구치는 장면은 늘 떠들썩합니다. 눈이 시뻘게지도록 한 수 한 수 심혈을 기울이시는 모습 속엔, 남자들만의 조용한 전쟁 같습니다.
삼삼오오 모여 앉아 차를 움직이고 병을 전진시키며 포로를 잡아가고, 이쪽저쪽에서 훈수가 쏟아질 땐 그 풍경이 너무도 정겹습니다. 장기판 위를 돌고 도는 말처럼, 인생의 긴 여정을 거쳐 이 자리에 도달하신 어르신들은 어쩌면 ‘마지막 장군’을 외치며 편안한 쉼을 기다리고 계신지도 모릅니다.
“여보시오, 한 수만 뒤로 물러주면 안 되겠나?” 사정하듯 말씀하시는 어르신, 그리고 여기저기서 터지는 훈수팀의 원성. 그 사이, 시간은 어느새 흘러 밥때가 다가왔지만, 어르신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장기에 푹 빠져 계십니다. 장기 몇 판이면 지루할 틈도 없이 하루가 훌쩍 지나갑니다.
몸은 조금 불편하시지만, 함께 마주 앉아 나누는 이 시간 속에서 가족애가 새롭게 피어납니다. 각자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가족과 떨어져 지내시지만, 보이지 않는 외로움을 이렇게 서로의 존재로 달래며 지내는 공동체 생활이 더없이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돌아보면 언제 이런 한가로운 시간이 있었을까 싶습니다. 마음을 내려놓고, 장기판 앞에서 웃고 떠드는 어르신들의 모습은 마치 개구쟁이 아이들과도 같이 밝고 천진해 보입니다.
“차로 나간다!” “포로 움직여라!”
고민에 멈칫하는 순간, 여기저기서 “그거 말고 졸로 가야지!”
장기 한 판에 온 방이 들썩이고, 훈수로 가득 찬 이 공간은 누가 두는지조차 알 수 없을 만큼 모두가 하나가 됩니다. 승패보다 분위기에 취해 허허 웃음과 헛헛한 탄식이 오가는 모습은 그 자체로 정겹고 유쾌합니다.
하루 종일 장기판에 붙어 앉아도 피곤한 기색 없이 웃고 떠드시는 이 시간이 어르신들에겐 가장 빛나는 일상입니다. 밤이 되면 낮 동안 핏대 세우며 몰두하신 그 시간이 자연스레 숙면을 부르는 명약이 되고, 침상에 누우시면 모두 곯아떨어지십니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코 고는 소리는 오케스트라처럼 어우러져 또 하나의 풍경이 됩니다. 크크크… 웃음이 납니다.
장기 놀이가 궁금해 조심스레 여쭤보면 “이건 이렇고, 저건 저런 거야” 하며 알려주시지만, 나에겐 도통 어렵기만 합니다. 금방 포기하게 되네요. 역시 이건 남자들만의 여가 놀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는 서로를 알아가고 이해하며 단단히 뭉쳐가는 정(情)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떨어져 새로운 환경에서 홀로 살아가야 하는 삶의 후반, 그 길을 함께 나누며 외롭지 않게, 평안하게 지내시기를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삶의 전반을 치열하게 살아오신 어르신들. 이제는 몸과 마음 모두 편안히 쉴 수 있는 이곳, 시니어 요양원이 ‘장군, 멍군’ 소리 가득한 웃음의 보금자리로 기억되었으면 합니다. 오늘도 즐거운 한판! 어르신들, 장군멍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