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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장이

수다로 시작된 마음의 외침

by 이미숙

5.


누구든 눈만 마주치면 불러 세워 수다가 시작되는 할매. 너무 수다스러워 같은 층 어르신들은 이제 눈을 피한다. 함께 생활하는 어르신들의 신상은 물론, 방마다 다니며 관심을 넘은 참견으로 일이 커지는 경우도 잦다. 결국 어르신 간의 다툼으로 번지는 상황이 반복된다.


이 어르신은 하루 종일 누군가에게 관심받고 싶어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그 관심을 피한다. 아는 척 한마디라도 하는 순간, 과거 이야기부터 조금 전 일까지, 크고 작은 모든 일이 시작된다. 대부분은 부정적인 시선으로 해석되어 본인의 사건처럼 과장되기도 한다. 듣는 이는 점점 지치고, 결국 외면하게 된다. 어르신은 그 순간마다 외면당했다는 서운함을 느끼시는 듯하다.


몸은 불편하지만, 휠체어를 스스로 밀며 자유롭게 이동하시는 모습은 마치 날개 달린 이동차 같다. 더 불편한 어르신을 돌보고 있으면, 어느새 다가와 본인도 예전 교통사고로 몸이 아팠다며 함께 움직이신다. 팔을 들었다 내렸다, 다리를 올렸다 내렸다 하며 구령까지 붙여 관심을 끌고자 하신다.


그럴 땐 “와~ 어르신 운동 열심히 하시네요! 매일 건강해지셔서 보기 좋아요. 어르신 화이팅~” 하고 눈을 마주치며 격려해 드리면, 금세 입가에 소녀 같은 웃음을 띠신다. 늘 방 안에선 우당탕, 쿵쿵 소리가 나고 혼자만의 바쁜 시간이 이어진다. 입가에선 여전히 툴툴대는 소리가 멈추질 않고, 이방 저방 어르신들은 문을 닫아 소리를 막으려 한다. 그럴수록 외로움에 한숨 소리는 더욱 커져 거실까지 들려온다.


툭, 툭, 마음이 떨어지는 소리처럼....


어르신의 표현 방식은 어설프지만, 그 안엔 진심이 담겨 있다. 평생의 습관은 쉽게 고쳐지지 않고, 인지 능력도 떨어지며 치매 증상도 있으시다. 하지만 이야기를 듣다 보면 참 맞는 말씀만 하신다. 똑 부러진 생각도 많으신 분이다. 그동안 가족들과의 소통이 단절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있었을까, 짐작하게 된다. 단순한 요구조차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못했던 아쉬움, 서로가 힘들었을 그 시간이 느껴진다.


사실 어르신의 바람은 크지 않다. 그냥 작고 소박한 관심, 진심 어린 대화, 그리고 사랑이 전부다. 하지만 그조차 주고받기 어려웠던 건 서로의 상처와 이기심이 엇갈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가 다 빠지고 틀니도 제대로 쓰지 못하셔 말이 새고 잘 들리지 않지만, 어르신은 늘 최선을 다해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려 하신다. 듣는 이에 따라 감정의 결은 다르겠지만, 알고 보면 참 정 많은 분이시다.


어눌한 말투와 행동 속엔 풍족하지 못했던 시절을 버텨온 인생의 흔적이 담겨 있다. 말 그대로 ‘고단한 인생살이’가 병처럼 몸에 배어 있는 것이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어르신. 지금처럼만 건강하시고, 앞으로도 그렇게 삶을 이어가시면 됩니다. 지금까지 훌륭하게 잘 살아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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