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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오백년

한 많은 이 세상 야속한 님아

by 이미숙

6.


늘 입가에 흥얼거림을 띠는 여자 어르신이 계셨다. 언제나 밝고 긍정적이시지만, 문득문득 한편엔 어둠이 비치는 듯했다. "어르신, 오늘 하루도 신나고 재미있게 보내세요!" 말을 건네면, 어르신은 고개만 끄덕이며 환한 미소로 답해주신다.


노래가 생활처럼 몸에 배어 있는 어르신. 무엇이든 노래로 이어지듯, 고개를 까딱이며 박자와 음정을 찾아내신다. 겉으로 보기엔 노래를 정말 좋아하시는 것 같지만, 사실은 아픔을 노래로 삭이며 견디고 계셨다.


가족이 아무도 없는 외로운 분. 다복했던 가족이었지만, 어느 해 가족 여행 중 사고로 인해 모두를 잃으셨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행이부득(行而不得)

생불여사(生不如死)


살아 있기에 살아가지만, 의미 없는 시간이라 하셨다.

당신 마음속은 이미 다 타버린 재만 남아 있겠구나....


오늘도 어김없이 어르신의 노래 한 가락이 들려온다. 어르신의 애창곡이다.


한 많은 이 세상 야속한 님아~

정을 두고 몸만 가니 눈물이 나네

아무렴 그렇지 그렇구 말구

한오백년 사자는데 왠 성화요

백사장 세모래밭에 칠성단을 모으고

임 생겨달라고 비나이다

아무렴 그렇지 그렇구 말고

한오백년 살자는데 왠 성화요


아버지 어머니 오래오래 사세요.

살다보면은 좋은 날 있겠지요

아무렴 그렇지 그렇구 말고

한오백년 사자는데 왠 성화요


한 많은 내 청춘 절로 늙어

남은 반생은 어느 곳에다 뜻 붙일꼬

아무렴 그렇지 그렇구 말구

한 오백년 사자는 데 왠 성화용


조용필 - 한오백년 中



그렇게 구성진 목소리로 '한오백년'을 완창 하신다. 어찌나 구성진 음률이었던지, 가수보다 더 가수 같았다. 곁에 듣고 계시던 여러 어르신조차 칭찬 일색이었고, 다들 좋아해 주셨다.


그렇다. 깊은 내면, 당신의 울분이고 감정이며, 한탄이었다.


먼저 보내진 가족을 생각하며, 하루하루 삶을 힘겹게 맞이하는 어르신의 일상은 지옥 같았다. 그저 흥얼거리는 노랫가락 속에 모든 그리움을 담아 하늘로 띄워 보내는 소식, 그리운 마음의 편지였다.


아무도 어르신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없을 만큼, 그 상처는 너무나 크고 깊었다. 어떤 말로도 대신할 수 없는 아픔이었다. 겉으로는 세월이 약이 되어 조금은 무뎌진 듯 보였지만, 가슴 깊은 곳에는 여전히, 그리운 가족을 향한 애틋한 마음이 선명히 남아 있었다.


우리는 알면서도 모른 척, 그저 밝은 웃음으로 어르신을 대할 수밖에 없었다. 남은 삶 동안, 상처가 완전히 아물 수는 없겠지만, 이곳 요양원에서 조금이나마 위로를 얻으며, 조금 더 따뜻한 하루하루를 살아가시기를 바랄 뿐이다.


어르신, 이제는 혼자가 아닙니다. 여기 있는 모두가 어르신의 가족이 되어 드릴 것입니다. 긴 여행을 마치고 떠나는 날이 오면, 그리운 가족들이 마중 나와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때 다시 만나, 꼭 행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노래에 마음을 실어, 하늘에 계신 가족에게 따뜻한 안부를 전해 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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