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함께라면
네모필라는 맑고 푸른 하늘빛을 닮은 작은 꽃으로, 넓은 들판을 가득 채워 피어납니다. 하지만 한 송이만 보면 그 존재는 너무도 작고, 연약해 보입니다. 어르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요양원에서 홀로 조용히 머물며, 세상과 단절된 듯 살아가지만, 그 내면에는 보이지 않는 깊은 감정과 이야기가 담겨 있을 것입니다.
네모필라는 강렬한 색이나 화려한 향기를 내뿜지 않지만, 함께 모여 피면 들판을 파랗게 물들일 만큼 강한 생명력을 가집니다. 어르신도 마찬가지로, 혼자일 때는 작고 외로운 존재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를 이해하고 곁에 있어 줄 누군가가 함께할 때 비로소 따뜻한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어르신이 바라보는 작은 창밖 세상에도 네모필라 같은 잔잔한 행복이 스며들기를. 그리고 우리가 그의 곁에서 작은 들꽃처럼 조용히 머물러 주기를.
요양원의 한 어르신, 방안을 불시에 점검 당하는 일이 일상이 되어버린 분이 계신다. 멀리서 보아도 눈은 끊임없이 주위를 살피고 계셨다. 행사나 프로그램, 다른 어르신들과의 교류에는 전혀 관심이 없으셨고, 오로지 방 안에서 홀로 머무르며 TV를 보는 것이 유일한 일상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된 사실은, 그분이 단순히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커다란 눈망울을 지닌, 겁이 많아 보이지만 점잖은 인상의 그 어르신은 예상치 못한 모습을 가지고 계셨다. 도벽이 심한 분이었다. 요양원 곳곳의 물건들이 어느새 그분의 방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다른 방 어르신들의 물건은 물론, 요양원 곳곳에 비치된 휴지, 신발, 목욕용품, 수건, 비누, 샴푸까지도 예외가 아니었다. 모든 것이 그분의 ‘목표물’이었고, 남몰래 손에 넣어 방 안 깊숙한 서랍장이나 침대 매트리스 밑에 숨겨두셨다.
그 행동이 반복될 때마다 직원들은 조심스레 설득하고 다시 물건을 원래대로 돌려놓았지만, 어르신은 언제나 무표정한 얼굴로 순순히 물건을 내어줄 뿐이었다. 마치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는 듯한 태도였다. 그러나 다음날이면 또 같은 행동이 반복되었다. 결국 직원들은 어르신이 방을 비우실 때마다 몰래 수색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방 안에서 지내실 때는 늘 불을 끄고 어둠 속에 계셨다. 방문 앞에서 인기척이 느껴지면 문틈으로 슬며시 바깥을 살피셨다. 철저한 보안과 당부도 소용이 없었다. 귀를 쫑긋 세우며 작은 소음 하나도 놓치지 않으셨다. 마치 어딘가로부터 도망쳐야 하는 사람처럼, 항상 경계를 늦추지 않으셨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밉지 않은 분이었다. 실패했을 때 그분의 사슴 같은 눈망울이 금방이라도 눈물을 머금을 듯한 표정을 지을 때면, 왠지 모르게 안쓰러웠다. 공용 화장실의 휴지가 사라지는 것도, 다른 어르신들의 원성이 터져 나오는 것도 하루이틀 일이 아니었지만, 그 행동 너머에 숨겨진 깊은 외로움을 생각하면 쉽게 나무랄 수가 없었다.
어르신의 방은 텅 비어 있었다. 옷 몇 벌만이 자리한 작은 공간. 가족의 방문은 거의 없었다. 남겨진 시간을 의미 없이 반복하며 살아가는 듯한 그분의 모습에서, 삶의 무게가 느껴졌다. 어떤 과거를 살아오셨기에 이렇게까지 마음을 닫고 계시는 걸까? 무엇이든 쌓아두지 않으면 안 될 만큼 허전한 마음을, 사소한 물건들로라도 채우려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진짜 채워야 할 것은 물건이 아니라 사랑이었다.
어르신은 웃음을 모르셨다. 늘 긴장 속에 살고 계셨다. 과거의 상처가 남긴 흔적이 현재까지도 그분을 붙잡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였다.
조금이라도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 드리는 것.
강요하지 않고, 억지로 바꾸려 하지 않고, 그저 옆에서 조용히 함께하는 것.
누구나 가족의 사랑이 가장 크다. 삶은 그 사랑 속에서 빛나고, 또 그 사랑 속에서 스러져 간다. 어르신에게도 따뜻한 사랑이 전해질 수 있도록, 그 텅 빈 곳을 물건이 아닌 사람의 온기로 채울 수 있도록, 조금 더 다가가고자 한다. 남은 시간들이 외로움이 아닌 행복으로 채워질 수 있도록, 그분의 눈빛이 조금 더 편안해질 수 있도록, 진심을 담아 응원해 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