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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미숙 Nov 17. 2024

두리번 윤할매

잃어버린 기억 속, 그리움으로 쌓아 올린 작은 보물들

마음의 손길: 요양원의 하루 2 지난 8년간 요양보호사로 일하며 경험했던 다양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습니다. 매일 마주했던 어르신들의 삶과 그들의 깊은 눈빛 속에서 배운 인생의 지혜, 그리고 가슴속에 남은 감동과 슬픔의 순간들을 솔직하게 풀어냈습니다. 돌봄의 현장에서 느낀 보람과 함께, 때로는 힘겨웠던 순간들도 함께 기록했습니다.





84세 되시는 여자 윤 어르신이 몇 해 전부터 입소해 지내고 계셨다. 처음에는 치매가 약하게 진행 중이셨다. 얌전하신 듯했으나, 한 번씩 말씀이 안 되는 것으로 우기시며 사나움을 표출하셔서 다른 어르신들이 거리를 두며 지내셨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는 방에서만 머무시는 일이 잦아졌고, 잠깐씩 수시로 들락날락하시며 눈치 보듯 복도나 거실 밖을 서성거리다 방으로 들어가시는 일이 잦았다. 그냥 어울리지 못하시고 겉도는 것 같아서 유난히 신경 써드리는 일이 많았다.


어느 날 두 분이 쓰시던 방인데 자꾸 안 보이던 짐이 늘어나고 있었다. 그러면서 어느 순간 문을 열고 사시던 분이 문을 꼭 닫으시고 침상 밖을 나오려 하지 않으셨다.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지냈다. 


옆방에 계시던 어르신 한 분이 자꾸 당신 옷이 하나씩 없어진다며 화를 내셨다. 세탁 후 혹시 다른 어르신 방에 잘못 갖다 놓았을까 싶어 찾아보던 중, 윤 어르신 가방에 숨겨놓으신 듯 꼭꼭 숨겨져 있어서 꺼내드리려 할 때 윤 어르신이 당신 것이라며 만지지도 못하게 화를 내시며 움켜쥐고 내려놓지 않으셨다.


각 방 어르신 방 호수와 이름을 새겨놓기 때문에 금방 찾을 수 있다. 우선은 알겠다 하고 어르신을 밖으로 모시고 프로그램하는 사이 꺼내다 찾아드렸다. 그러나 윤 어르신은 거기까지다 꺼내온 것을 보지만 않는다면 기억이 없으시다. 그것이 있었는지조차 모르신다. 


이런 일이 빈번하여 옷장을 하루는 정리할 겸 열어보니 깜짝 놀라고 말았다. 우리가 사용하는 비품과 와상 어르신들 사용하는 기저귀가 옷장 사이사이 옷과 가방 보따리 보따리 묶어 장농 안 가득 채우고 침대 뒤 박스에 가득 넣어 보자기로 덮여 있어 꺼내 보니 기저귀만 400여 개가 넘게 나왔다. 언제부터 모아두신 건지 놀라웠다.


어쩐지 매일 사용하던 기저귀가 자꾸 부족하다고 하면서 이상하다, 누가 너무 쓸데없이 자주 남용하는 것 같다는 오해를 받고 하기도 했었다. 또 다른 어르신 방 소품 물건들, 컵, 꽃나무 꺾어 넣은 것, 화분에 있는 선인장 등등 다양하게 눈에 띄는 모든 것을 다 몰래 가져다가 쌓아두었던 것이다. 얼마 전부터 생기신 일이었다.


왠지 윤 어르신께서 선생님들이 방을 드나들 때면 예민해하셨다. 습관이 되셔서 일단 밖으로 나오시면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살피시면서 가져갈 목표를 향해 주변을 자주 기웃거리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이후로 007 작전이 어르신과 선생님들 사이에 하루에 몇 번씩 이뤄지고 있었다.


어르신 방에 물건을 한꺼번에 다 꺼내지 않고 티 안 나게 조금씩 꺼내오면서 어르신 습관을 다른 곳으로 옮기도록 많은 도움을 드리고, 훔치는 습관을 잊도록 해드렸다. 처음엔 힘들었지만 치매이기에 어느 순간 기억에서 사라지며 멈춰지게 되었던 웃픈 상황들이 마음이 많이 아팠다. 


이토록 치매라는 중병이 본인도 훔치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시면서 어르신을 지배하고 있었다. 선생님들의 지혜를 모아 집중 관심과 도움으로 마음의 허함을 달래드리고 사랑을 채워드리면서 점차 안정을 찾으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치매라는 병, 기억을 잃어가면서 본인도 모르고 그때 그때 생각나는 대로 옮기는 행동이기에 안타깝고 애처로웠다. 언제나 집중 관심과 사랑이 더해진다면 치매라는 병으로부터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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