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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미숙 Nov 24. 2024

나 이대 나온 사람이야

한 가닥 남은 자존심을 지키며

마음의 손길: 요양원의 하루 2 지난 8년간 요양보호사로 일하며 경험했던 다양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습니다. 매일 마주했던 어르신들의 삶과 그들의 깊은 눈빛 속에서 배운 인생의 지혜, 그리고 가슴속에 남은 감동과 슬픔의 순간들을 솔직하게 풀어냈습니다. 돌봄의 현장에서 느낀 보람과 함께, 때로는 힘겨웠던 순간들도 함께 기록했습니다.





혼자되신 아드님이 82세 되신 어머님을 모시고 사시다가 치매가 시작되어 근무하는 요양원에 입소하시게 되셨다. 너무나 깡마르시고 예민하신 어르신이시다. 입맛이 짧은 편이시고 편식도 심하셔서 까다로우시던 분이셨다. 무엇 하나하나 어르신 생각대로 안 되면 짜증과 소리부터 지르시며 "나 이대 나온 사람이야, 네가 뭘 알아~" 하시며 매사 탓을 하시며 트집부터 찾으려 하신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나 이대 나온 사람인데~"를 되뇌신다. 이래도 저래도 못마땅해하시며 화가 몸에 배어 있으신 어르신, 무엇 때문인지 안타까웠다. 이대 나온 거랑 일상생활 하시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 건지 너무 상반된 일이 많았지만, 당신의 커리어우먼다운 자존심을 세우려 하시는 것을 느꼈다. 


아무튼 어르신의 자존감을 높여드리고 맞춰드리려 노력하면서 서로 신뢰를 조금씩 쌓아가고 있었다. 어르신도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여시며 나아지고 있는 것 같았다.


무슨 공부를 하셨느냐 여쭈면 입을 닫아버리시고 화를 내신다. "알아서 뭐 하겠냐며...?" 그렇게 여러 달이 지나고 우리는 알았다. 어디서 들으신 게 있으신지, "이대 나오면 최고로 대접받는다"는 생각을 하시며 살아오신 것 같았다. 


이대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당신이 꿈꾸던 시절의 바람이었던 것이다. 자존심을 세우고 싶으신 것과 과거 대학 다니는 친구들의 부러움이 크셨던 것, 그 소망 같았다.


모른 척 덮어두고 어르신께 "좋은 대학 나오신 분이 왜 자꾸 좋은 이야기는 안 하시고 짜증만 내시며 다른 어르신들의 모범이 되지 않은 것 같네요. 이대 나온 거 망신시키는 일 같아요" 여쭈었다. 움찔하시더니 더 큰 소리로 "니들이 뭘 알아~ 무식한 것들아" 하시며 막무가내이셨던 어르신... 얼마나 가고 싶었던 학교였기에 당신만의 각인이 되어 꿈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계신지...!


물론 진짜로 이대 나오신 어르신 중에도 이런 분이 계시다. 그 시절 모두 자랑이고, 자존심을 높일 꿈의 대상이셨던 것 같다. 다른 어르신이 하루는 "나 이대 나온 사람이야"라는 소리를 들으시고, "난 서울대 나왔다, 왜~ 뭐가 잘났냐~ 별것 가지고 유세 떤다"며 그만 좀 얘기하라며 꾸중을 하셨다. ㅎㅎㅎ 웃고 말았다. 어르신들의 이야기 안에 많은 것이 내포되어 있는 것 같았다.


이 연세에 치매가 찾아온 지금 한 가닥 희망을 붙잡고 싶으신 건 아닐지... 약은 없는 것 같은데 그냥 받아들여 줘야 할 것 같다. 한 가닥 자존심이신 것을... 두 아드님께서도 어머니의 괜한 자존심이라며 안타깝고 허망한 일이라고 이해할 수 없다고 하시며 불쌍하게 생각하고 있다 말씀해 주신다.


오늘 아침 인사 드리며 "우리 이대 나오신 어르신~ 어젯밤 좋은 꿈 좀 꾸셨어요? 혹시 대학 동창 모임 하시면서 행복한 시간 보내셨을까요?" 여쭙고 살핀다. "뭐야~ 동창 모임은... 무슨..." 뒷말이 없으시다. 


"우리 이대 나오신 어르신께서는 품위 있으시고 교양이 넘치셔서 저희가 잘 모르는 것이 많으니 불편한 게 있으시면 지도 편달 부탁드릴게요~~ 짜증 내지 마시고 사랑스럽게 말씀해 주세요~ ㅎㅎㅎ" 애교 섞인 말을 건네 본다.


동창 모임에 가시려면 식사 많이 드시고 힘을 길러야 하니 규칙적인 운동과 프로그램 활동 열심히 참관하시며 정서에 심혈을 기울여 드린다고 당부드린다. 어쨌든 자존심을 높여드리고 맞춰드리면서 말벗해 드리니 입가에 미소를 띠시며 좋아해 주신다.


이대 나오신 것으로 인정해 드리고 맞춰 드리니 한결 부드러워지고 조용히 지내셨다. 치매로 오신 당신의 소원이었던 지난 세월 꿈이 마음에 응어리가 되어 맺혀 있는 지금의 삶 앞에서 당당히 외치고 계신다. "나~~ 이대 나온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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