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손길: 요양원의 하루 2 지난 8년간 요양보호사로 일하며 경험했던 다양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습니다. 매일 마주했던 어르신들의 삶과 그들의 깊은 눈빛 속에서 배운 인생의 지혜, 그리고 가슴속에 남은 감동과 슬픔의 순간들을 솔직하게 풀어냈습니다. 돌봄의 현장에서 느낀 보람과 함께, 때로는 힘겨웠던 순간들도 함께 기록했습니다.
88세 되신 박 어르신께서는 다복한 가정에서 훌륭한 자제분을 키워내신 대단한 자부심이 강했던 어르신이시고 치매로 인해 요양원에 입소해 지내셨다. 남편도 의사, 아들 두 형제 모두 의사 부부인 것을 큰 자랑이자 자신의 큰 자부심으로 여기셨던 어르신이다.
치매가 심하면서도 그 옛날 과거에 매여 있는 어르신께서는 “여보게~ 내가 누구인지 아나~?” 늘 물어보시는 질문이다. 그분에게는 어깨가 하늘을 찌를 듯 하루에도 수십 번씩 아드님 이야기로 시작되신다.
그중 가장 큰아들 내외 분들 자랑은 그야말로 세상 권세를 다 가지시고 사시는 듯하였다. 현역에서 은퇴하신 큰 아드님이 과거에 어머님의 기대에 부응하게 해 드린 효자로 각인되어 있으셨던 것 같다. 그 외 모든 사람들은 그야말로 존재감 없는 무지한 인간으로만 생각하시고 안중에도 없이 “내가 누구의 어머니인데, 너희가 감히 나를 이렇게밖에 대하는 거냐”며 숟가락, 젓가락, 물건 등을 수시로 집어던지시고 매사 시비 거시고 좋든 싫든 일단은 한 번에 통과되지 않고 트집부터 찾으신다.
세상에 대한민국에 의사는 당신 아들뿐으로만 생각하시며 다른 사람은 보려 하지 않으셨다. 모든 음식부터 당신 아드님께 집에서 가져오라 하시고 그것만 인정하시며 맛이 있든 없든 드시지만 요양원 식사는 거절하실 정도로 불신이 강하셨던 어르신이셨다. 뭐든 아드님 말만 들으려 하시고 여기서 하는 것 자체는 다 무시하며 들으려 하지 않으셨던 분이시다.
대단한 자존감이 높으셨던 어르신, 그렇게 천하를 호령하실 기세로 당당하시기만 하셨던 어르신이다. 치매가 심하신 편이신데도 순간순간 다른 어르신들과 수준 차이가 있다며 무시하시는 태도가 은연중 나타내 보이시기도 하셨다. 현재 아픈 상황이신데도 이 정도로 까칠하신 분이신데 예전에는 얼마나 심하게 사람들을 대하셨을지 이해가 됐다. 잘못된 자만심으로 세상을 당신만의 룰로 지내오신 것 같다.
아드님 면회 오시는 날이면 “내 아들이 어떤 아들인지 아시냐”며 더 큰소리 내시고 자랑스럽게 으쓱거리시며 당신만의 기쁨이요, 행복한 만족이셨다. 다른 어르신들은 이분과 가까이하지 않으려 하셨고 거리를 두시는 일이 잦았다. 누구와 눈 맞춤이라도 하시면 일단 내 아들이 이런 사람이라는 것을 앞세우시며 “난 그 아들의 엄마니 당신에게도 예의를 갖추라”는 의도가 있으셨다.
참으로 어려운 상황을 전개하시던 분이셨으나 그 기세도 이제는 많이 꺾여 있으시다. 노쇠로 인한 기운이 점차 떨어지시니 아련한 기억만 붙잡고 하루하루 그 생각의 힘으로 견뎌내시는 것 같다. 그래도 기운 넘치셨던 예전이 어르신답지 않았나 애잔해졌다.
어르신 시절 격동기를 겪으시면서 힘들게 훌륭한 자식을 잘 키워내신 자부심과 자존심의 품격을 충분히 표출하시고 싶으셨을 것이다.
“난 누구의 유명한 아내… 며느리… 아들의 어머니” 등등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박 어르신뿐만 아니라 다른 부모님들도 많이 표현하셨을 것이다. 당신의 이름은 안중에도 없지만 훌륭한 아들, 딸들의 존재만으로 위안이셨던 그 옛날 우리 어르신의 삶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며 엿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