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손길: 요양원의 하루 2 지난 8년간 요양보호사로 일하며 경험했던 다양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습니다. 매일 마주했던 어르신들의 삶과 그들의 깊은 눈빛 속에서 배운 인생의 지혜, 그리고 가슴속에 남은 감동과 슬픔의 순간들을 솔직하게 풀어냈습니다. 돌봄의 현장에서 느낀 보람과 함께, 때로는 힘겨웠던 순간들도 함께 기록했습니다.
연세가 98세 되셨던 백 여자 어르신과 89세 되신 황 어르신이 내가 근무하는 요양원에 몇 년째 한 방에서 함께 지내고 있었다.
백 어르신께서는 그 옛날 부잣집 며느리로 시집오셔서 고생 한 번 안 하시고 곱게 곱게만 사셨다고 하신다. 너무 당당하시고 가족보다는 당신이 먼저라는 까다로우신 성품이셨다. 가족이나 선생님들께서 한동안은 힘들어하셨던 분 중 한 분이셨다.
그러나 나중엔 오랜 시간 함께 알아가면서 딸처럼 믿고 잘 따라주시고 마음을 활짝 열고 받아주시면서 평안하게 지낼 수 있었다. 여느 어르신보다 풍채가 크고 건강하셔서 식사 외에 유난히도 간식을 하루 종일 드실 정도로 먹성도 좋으셨다.
반면 한 방을 함께 쓰시던 다른 황 어르신께서는 약간의 치매도 있으셨지만 하체를 전혀 못 쓰시는 와상 어르신이셨고, 가난한 시집살이로 몸이 망가지셨다. 원망스러운 말씀을 간간이 토해내셨다.
무엇이든 살아오신 상황과 생활이 다르다 보니 서로 맞지 않는 성격이라 투닥투닥거리시는 일이 잦았다.
백 어르신은 먹고 싶거나 사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자식들에게 부탁하셔서 개인 냉장고에 넉넉히 항상 채워놓고 풍성하게 잘 드시지만, 황 어르신께서는 자식에게 당당하게 요구할 형편이 아니라며 무엇이든 그저 괜찮다고 거절하시는 성품이시다. 제대로 못 얻어 드시니 비교가 대조적이다 보니 자존심이 상해 괜한 심술을 부리시기도 하신다.
매주 백 어르신 댁에서는 과일부터 고기, 밑반찬 등을 수시로 바꿔가며 보내오지만, 황 어르신 가족은 몇 달에 한 번 간단한 요기거리 정도만 가지고 면회 오신다. 그것조차도 당신께서는 자식에게 미안해하셨다.
속으로는 백 어르신을 무척 부러워하시는 것 같았다. 비교되시니 나눠주시는 간식거리도 자존심 때문에 거절하시고 안 드신다. 매번 백 어르신께서 나눠주시려는 것이, 당신은 드릴 게 없다 하여 아예 받지 않으려 하시는 것이다. 이렇듯 상반된 상황이지만, 처음엔 두 분은 또 꼭 한 방을 쓰시겠다고 원하셨다.
그렇게 오랜 측은지심으로 룸메이트 생활 중, 서로 치매와 건강 상태가 나빠지시면서 원수 아닌 웬수처럼 더 앙숙으로 변해가시고 애먼 소리까지 하시며 마음의 상처를 서로 주시려 하셨다.
문제는 황 어르신께서 치매가 심해지시며, 넉넉한 백 어르신의 풍요에 모든 것이 못마땅하셨던 그동안의 모습에 스트레스가 쌓였던 것 같다. 결국 방을 따로 옮겨드리고 구분해드리니, 그동안 미운 정 고운 정이 드셨던지 돌연 시간이 흐를수록 떨어져 계신 시간만큼 애틋해하시면서 관계는 좋아지셨다.
두 분 건강은 날로 쇠약해져 백 어르신께서는 좋아하는 과일과 음식을 삼킬 수 없을 정도로 노환이 심해졌고 경관식(음식물 섭취가 어려운 환자에게 영양을 공급하는 방법으로, 주로 코나 복부를 통해 위나 소장에 직접 음식물을 투여)으로 바꿔야 했지만, 그 연세에 끝까지 내려놓지 않으시고 냉장고 문을 열어놓고 수시로 쳐다보시며 욕심을 내셨다.
더는 드실 수 없어도 냉장고 안은 과일로 채워놓아야 안심하셔서 상해서 버리는 상태라도 아무도 말리지 못했다. 유난히 과일을 좋아하시니 못 드셔도 매번 다시 새것으로 채워놓는 반복이 됐다. 워낙 먹성 좋으셨던 분이시고, 그로 인해 위로받으시며 사셨던 분이라 가족은 돌아가실 때까지 어르신이 원하는 대로 최선을 다해 드리려 애써주셨다.
그렇게 계시는 동안 여러모로 힘들게 하시다 100세를 채우시고 먼 꽃길 여행을 떠나셨다. 가실 때는 원없이 드셨던 좋아하는 과일이 풍성하게 차려졌을 것 같았다. 그 옛날 몇 안 되신 어르신의 풍성한 삶을 뵈었던 것 같다.
또한, 결이 다른 삶을 사신 황 어르신께서도 자식을 위한 삶으로 훌륭히 잘 살아오셨지만, 91세를 뒤로 하시고 먼 꽃길 여행을 떠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