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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미숙 Oct 20. 2024

여인천하

늦은 나이에 찾아온 어르신들의 따뜻한 사랑 이야기

마음의 손길: 요양원의 하루 2 지난 8년간 요양보호사로 일하며 경험했던 다양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습니다. 매일 마주했던 어르신들의 삶과 그들의 깊은 눈빛 속에서 배운 인생의 지혜, 그리고 가슴속에 남은 감동과 슬픔의 순간들을 솔직하게 풀어냈습니다. 돌봄의 현장에서 느낀 보람과 함께, 때로는 힘겨웠던 순간들도 함께 기록했습니다.





우리가 근무하는 요양원에는 남자 어르신보다는 여자 어르신이 좀 더 많이 입소해 계셨다. 


그중 유난히도 다정하시고 살가우신 남자 어르신이 함께 지내셨다. 항상 긍정적이셨고, 뭐든 'Yes Man'으로 통하실 만큼 모든 분들께 매너 좋으시고, 웬만한 부탁이나 도움 주셔야 할 땐 모두 들어주시려 하신 분이셨다. 상냥하시고 다정하셔서 인기가 제일 짱이셨던 분.


어느 날 출근해 보니 벌써 거실 소파에 정말 곱고 어여쁜 여자 어르신 한 분과 어느 날부터 다정히 손을 잡고 일찍 나오셔서 산책하신 후 이야기 나누시고 계셨다. 


처음 본 사람이면 부부라 해도 믿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좋아 보이셨다. 90을 바라보는 연세에도 젊은 사람들 못지않은 꿀이 뚝뚝 샘솟고 있었다. 각자 홀로 긴 세월을 보내시다 오신 분들, 여기서나마 가족처럼 의지하시듯 정을 나누시는 다정한 모습에서 측은지심이 들었다. 


유심히 서로 바라보면서 같은 공간에 계시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해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서로 잘 챙겨 주려 하시고 뭐든 들어주시려 하시며 배려와 칭찬이 넘쳐나고 애정 만만세다. 


다른 남자 여자 어르신들에겐 부러움의 대상이셨다. 늘 함께 움직이시고 주무시는 시간만 헤어져 지내시고 항시 손잡고 다니셨기에 어르신들 사이에선 부러움의 연인이셨던 것이다. 따로 말리고 싶지 않았다. 정신건강에 이것보다 좋은 약이 있을까 싶었다.


보기 쉽지 않은 어르신들의 로맨스였지만 두 분은 정말 잘 어울리시는 신사 숙녀 같으신 분이셨다.


"어르신들~ 그렇게 좋으세요~? 뭐가 그리 좋으세요~?" 여쭈면 "자넨 잘 모를 거야~"라며 웃으셨다. 새색시 새신랑 보듯 매일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활짝 피어 있는 할미꽃, 할배꽃 두 분 입가에 웃음이 떠나지 않으셨다. 


처음에 여자 어르신께서 오셨을 때는 따님과 사셨다고 불안해하시면서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시겠다며 따님에게 매일 보채셨던 분이 몇 달 후 우리 남자 어르신께 반한 이후로는 가족에게 여기서 살아도 되겠다며 되려 이젠 떠나려 하지 않으셨다. 


그렇게 두 분이 한동안 정답게 잘 지내시다가 여자 어르신께서 지병으로 건강이 안 좋으셔서 병원에 입원 들어가신 이후 돌아오지 않으셨다. 남자 어르신께서 한동안 우울해하시며, 늘 미소가 가득하시던 분이신데 웃음이 사라지시고 기운 없이 축 처져 보이셨다. 


그렇게 오랫동안 오지 않으시니 기다리시다 조금씩 마음을 추스르시고 잘 지내려 노력하셨다. 이때다 싶은지 곁에서 부러워만 하던 다른 여자 어르신들이 주변을 맴돌며 그 사이 남자 어르신께 서로 잘 보이고 싶었는지 먹을거리부터 조그만 선물 공세를 하시는 웃픈 상황들이 이어졌다. 여인천하 돌입하신 것이다.


워낙 친절과 다정함이 몸에 배어 계신 분이신데, 다른 여자 어르신들은 그 친절과 다정함을 당신들만의 오해로 엮어가며 서로 다가가려 애쓰셨다.


그러나 남자 어르신께서는 그 후 다른 여자분들과는 친분 정도 나누시기만 하시고 마음을 닫아버리신 것 같았다. 저희에게 간혹 전 여자 어르신 보고 싶다, 궁금하시다며 근황을 여쭤보기까지 하셨으나 병원 입원 중이신 것 외에는 차마 돌아가셨다고 말씀드릴 수가 없었다. 


그동안 나눈 사랑이 깊은 정을 만드셨던 것 같다. 상처로 남지 않았을지 걱정되었지만, 다른 여러 여자 어르신들께서 항상 남자 어르신 주변을 감싸고 관심 쟁탈전이 소소히 일어나고 있었기에 다시 남자 어르신 얼굴에서 웃음기가 보이셨고 활기를 되찾아가시며 잘 지내주셨다.


누구를 막론하고 얼굴 마주치면 사탕부터 내미시는 어르신. 늘 웃음을 머금고 따뜻한 정 많은 어르신께서는 일찍 아내와 사별 후 홀로 아이들 키우시며 부모님까지 모시고 혼자 힘들게 오랜 세월 살아왔노라 하시며 부부정을 못 나누고 살아온 긴 세월이 야속하셨다고 푸념을 해주신다. 


깊은 마음속에 묻어두었던 내심 속내셨다. 그래서 여자 어르신들께 유난히 살갑고 다정하게 대해주신 것 같았다. 여자 어르신들 중에는 남편에게 그런 살가운 정을 못 받으셨던 분들도 계신지 모두들 다 좋아해 주셨다.


인기 짱 우리 남자 어르신, 이렇게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시는데 외로울 시간이 있을까요~~ 늦었다 생각 마시고 더 많이 많은 사랑 나누시면서 건강하게 오래오래 함께 지내셨으면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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