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손길: 요양원의 하루 2 지난 8년간 요양보호사로 일하며 경험했던 다양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습니다. 매일 마주했던 어르신들의 삶과 그들의 깊은 눈빛 속에서 배운 인생의 지혜, 그리고 가슴속에 남은 감동과 슬픔의 순간들을 솔직하게 풀어냈습니다. 돌봄의 현장에서 느낀 보람과 함께, 때로는 힘겨웠던 순간들도 함께 기록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선생님~~?" 4층 건물 밑 주차장 밖까지 어르신 한 분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린다.
이렇듯 하루 수백 번 정도, 하루 종일 부르신다. 이렇게 저렇게 벨을 누르시도록 유도해 드리나 소용없이 선생님만 불러대신다. 온전한 정신이 드실 때는 유난히 더 불러대신다.
“왜~ 그러십니까?” 들어가 여쭈면 ........ 대답 없이 조용히 계신다. 그러다 나오면 다시 선생님을 부르신다.
선생님들께 심술 내시거나 골탕 먹이기 위한 작전 중 하나다. 또 하나는 당신께 관심을 가져달라는 신호이기도 하다. 잠시 머물러 말벗해 드리면 풀어지신다. 우리 선생님들 상황을 불편하게 하시는 것이 목표시기도 하다.
원래는 활발한 성격이시고, 노래 듣기를 좋아하셨던 분이셨고 가수 조항조 님의 팬으로 모르는 노래가 없이 아주 가수처럼 잘 부르시기도 하신다. 하루 종일 카세트 노래를 틀어놓으시고 계시며 따라 부르시고 듣기를 반복하신다.
오랜 요양원 생활로 단조로워진 패턴과 함께 찾아온 당신만의 스트레스 푸는 방법이시며 고비고비를 나름 지탱하시느라 애쓰신다. 남보다 젊은 연세로 일찍 찾아오신 우울증과 치매지만, 너무 아름답고 예쁘신 우리 어르신이시다.
예전엔 고향 부녀회장으로, 4남매의 어머니로, 아내로 남부러울 것 없이 지내셨던 분이시란다. 그런데 어느 한순간 갑자기 찾아온 충격을 이기지 못하시고 병을 갖게 되신 것 같다.
너무 사이좋으셨던 남편분께서 사업을 하시다가 바람이 나 몰래 오랜 세월 두 집 살림을 하시고 계셨던 것을 늦게 알아버린 이후 마음고생을 심하게 하셨던 것 같다. 멋진 가족사진 속에 계신 남편 사진 걸어놓으시고는 찾아오지 않는 남편을 애타게 기다리시는 걸 엿볼 수 있었다.
처음엔 잘 모르고 가족은 다 오시는데 남편은 어떻게 뵐 수 없느냐, 돌아가셨느냐 여쭈니 답을 피하시다 어느 날 대뜸 욕을 하시면서 “나쁜 년 하고 살고 있다”시며 눈빛이 달라지셨다. 이후 금기어가 되어버린 남편에 대한 이야기는 묻지 않았다. 그러나 마음엔 미운 남편의 그리움이 크게 자리하고 계신 것이 보였다.
부부만의 속정, 미운 정 고운 정이 순간 감정으로 올라올 때면 간간히 “보고 싶다, 한 번만 다녀가지...” 혼잣말 씀도 하신다. 자식들이 알 수 없는 부부만의 묘한 기류처럼 흘러가듯 그럴 땐 갑자기 유난히 큰 목소리로 애먼 “선생님” 타령이 시작되신다.
안타깝다. 그럴 땐 노래를 함께 부르고 말벗을 좀 오래 해드리면 좀 가볍게 지내시고, 운동도 조금씩 병행하면서 기분 전환을 도와드린다.
어느 날 하루는 산책을 시켜드리면서 “어서 빨리 회복하셔서 예쁜 손녀들과 재미난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하지 않겠냐”는 말씀 중에 정말 집에 가서 가족과 살고 싶으시다고, 꼭 다시 가고 싶은 데 갈 수 있겠느냐시며 소원이라는 그 순간 먹먹해지고 애잔함이 느껴졌다.
순간순간 진심 어린 이야기 속에서 가족이란 울타리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게 해 주었고, ‘선생님’이란 그 속에는 모든 게 함축되어 있었던 것이다. 가족이 매일 보고 싶고, 그립고, 집에서 함께 살고 싶다는 간절한 욕구였을 것이다. 마음속 외침이셨던 것이다.
우울증 증상으로 의욕은 점점 더 떨어지시고, 커다란 몸을 움직이지 않으려 하셔서 언제부터는 소대변을 못 가릴 정도로 침상에 생활로 바뀌어갔다. 어르신께서는 어느 한순간 삶의 의욕이나 희망의 끈을 내려놓으신 듯 어린아이로 돌아가고 있었다.
당신이 원하던 방향이 아닌 다른 삶 속에서의 고통을 잊어버리려는 듯 모든 기억을 지워가고 있었다. 딸이나 가족이 찾아와도 감흥이 없이 선생님만 찾으시며 외면하신다.
유난히 내 손을 잡아주시며 눈 맞춤하신 어르신. 매일 방에서 노래 불러주시면 대신 엉덩이를 흔들며 장단 맞춰드릴 때 활짝 웃던 아름답고 예쁜 우리 어르신. 멀리서 익숙한 내 목소리가 들리면 어느새 “선생님~~” 대답할 때까지 숨 넘어가듯 불러대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