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성화에 여러 번 선을 본 일화를 말하는 화자가 주인공인 박완서 작가의 단편소설 제목이 "그대에게 쓴 잔을"이다. 끝자락을 옮겨본다.
(상대 남자는) 식당에서 매너도 세련되어 도대체 나무랄 데가 없었다. 미주는 문득 이런 남자에게도 인생의 쓴맛과 아픔에 대한 경험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 음식이 괜찮죠?" 청년이 은빛 나이프와 포크로 부드러운 고기를 능숙하게 썰며 말했다. "네, 그런가 봐요. 혹시 이 세상의 쓴맛에 대해서도 뭐 좀 아시는 게 있으세요?" 미주는 불쑥 이렇게 물었다. "쓴맛요? 처음 들어보는 재미있는 질문이군요. 글쎄요. 해마다 봄가을에 한 제씩 먹는 보약 맛 말고는 쓴맛을 전혀 맛본 것 같지 않네요." 그 소리를 들으면서 미주는 어쩔 수 없이 이 남자도 또 찰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정말 어쩔 수가 없었다. 보약 맛 이외에 쓴맛을 모르는 남자에게 여자한테 차이는 쓴맛이라도 맛 보여주고 싶은 걸 어쩔 수가 없었다. (중략) 서른 살까지 살아오면서 맛본 삶의 쓴맛이 오직 보약 맛밖에 없는 남자가 얼마나 허전하게 보였다는 걸 이모에게 이해시키는 일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잘 정돈만 된 글을 대하면, 이 소설 주인공처럼 작가에게 묻고 싶을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