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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맞이 시 한 편

by 복습자

여름


여름을 그리려면 종이가 필요해


종이는 물에 녹지 않아야 하고

상상하는 것보다 크거나

훨씬 작을 수도 있다


너무 큰 해변은 완성되지 않는다

너무 아름다운 해변은

액자에 걸면 가져가버린다


당신이 조금 느리고

천천히 말하는 사람이라면

하나 남은 검은색 파스텔로

아무도 오지 않는 바다를 그리자


당신의 여름이 기분이거나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여행지라면

시원한 문장을 골라서 글로 쓸 수 있는데


여름이 오려면 당신이 필요하다

모두가 숙소로 돌아간 뒤에

당신이 나를 기다린다면 좋겠다


파도가 치고 있다

누군가는 고래를 보았다며 사진을 찍거나

주머니에서 만년필을 꺼내겠지만


고래는 너무 커서 밑그림을 그릴 수 없고

모래는 너무 작아서 부끄러움을 가릴 수 없다


바다가 보이는 방에서 두 사람을 기다린다

그들이 오면 여름은 지나가고

방문을 열면 해변이 사라져서

나는 아무것도 못 그리겠지


그래도 당신과

오리발을 신고 있겠지


시 민구

집 당신이 오려면 여름이 필요해


계절의 변화에 따른 기분을 글로 적어내는 건 어렵다. 한 과학자가 기후위기를 다루며 이렇게 말했다. "매해 올여름이 가장 덜 더울 겁니다" 주차를 하고 회사로 걸어가면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오면서 무더위를 실감한다.


한편, 이재무 시인은 '나는 여름이 좋다'에서 여름을 이렇게 표현했다. "여름은 동사의 계절 / 뻗고, 자라고, 흐르고, 번지고, 솟는다"


여름의 양면성. 난 여기서 끝.


그런데 시인은 여름으로 사랑에 빠진 사람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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