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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노 Sep 04. 2020

대장정의 시작: '동유럽의 꽃' 프라하에 가다

여행 1일차: 기대와는 달랐던 프라하의 첫인상

블로그에서 찾은 여행 준비물 리스트.

2019.09.22 여행 1일차 체코 프라하

인생에는 '총량의 법칙'이 있다. 사람이 살면서 할 수 있는 양은 정해져 있다는 뜻이다. 동유럽 여행을 준비할 때에도 '총량의 법칙'이 적용됐다. 내가 여행 준비에 쏟을 수 있는 에너지가 100이면, 여행 계획을 세우는 데 95를 써버려서 5의 에너지만 갖고 한 달 동안 필요한 짐을 챙겨야 했다. 너무 막막해서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 출발 전날이 되어서야 부랴부랴 짐을 쌌다.

동유럽 여행을 위해 보조배터리, 셀카봉, 일기장을 구매했다.


먼저 블로그에서 찾은 유럽여행 준비물 리스트를 인쇄했다. 나에게 필요한 물품만 형광펜으로 칠한 뒤 하나씩 챙겼다. 하루면 충분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큰 오산이었다. 우선 가져가야 할 옷이 많았다. 여행 기간이 한 달이라 얇은 반팔 티부터 두꺼운 겉옷까지 다 넣어야 했다. 이 밖에도 여권, 비행기 e-ticket, 호텔 예약 확인서, 카메라, 셀카봉, 여행용 멀티어댑터, 각종 충전기, 보조배터리, 일기장 등 챙길 게 수두룩했다. 새벽 5시가 되어서야 짐 싸는 것을 끝내고 잠에 들 수 있었다. 



인천국제공항에서 여권과 항공권을 들고 탑승을 기다렸다. / 영화 '아가씨'를 보며 폴란드항공 기내식을 즐겼다.

1시간 조금 넘게 눈을 붙인 뒤 집을 나섰다. 여행을 앞둔 설렘이 컸던 탓에 잠을 많이 못 잤어도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해 짐을 부치고, 오전 10시 55분에 이륙하는 폴란드항공 여객기에 탑승했다. 폴란드항공을 비추천하는 블로그 후기가 있어서 타기 전에 조금 걱정했는데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좌석이 넓지는 않았지만 불편할 정도는 아니었고, 서비스와 기내식도 나쁘지 않았다. 한국 영화를 비롯해 최신 영화도 볼 수 있었다. 나는 영화 '아가씨', '알라딘', '그래, 가족'을 보며 시간을 보냈는데, 비행 시간이 10시간이라 영화를 아무리 봐도 시간이 많이 남았다. 계속 남은 비행 시간을 확인하다가 나중엔 지쳐서 꾸벅꾸벅 졸았다. 그렇게 자다 깨다를 몇 번 반복하니 경유지인 폴란드 바르샤바 공항에 도착했다.

폴란드 바르샤바 공항 내 코스타 커피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휴식을 취했다.

10시간 만에 땅을 밟은 기쁨을 누린 뒤 최종 목적지인 체코 프라하에 가기 위해 환승을 했다. 공항 직원들이 여권과 기내용 수하물을 일일이 확인하느라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경유 시간이 짧은 항공편을 예약했으면 마음이 조급했을 텐데, 나는 3시간 후 탑승 예정이라 여유가 있었다. 보안 검사를 통과하고 나서 폴란드에 첫 방문한 기념으로 바르샤바 공항 이곳저곳을 돌아봤다. 마음에 드는 기념품이 있으면 하나 살까 했지만, 주로 큰 보드카를 많이 팔아서 고민이 됐다. 너무 무겁고 깨질 것 같아 보드카를 사는 건 포기하고, 남는 시간 동안 코스타 커피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통유리창이 보이는 자리에 앉아 휴식을 취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즐겼다.

셔틀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한국인 학생과 대화를 나눴다. / 비행기에서 본 폴란드의 마을 풍경.

출발 시간이 거의 다 되어 탑승구를 찾아갔다. 셔틀버스를 타고 여객기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는데 어떤 한국인 남성이 내게 말을 걸었다. 얼굴을 보니 아까 폴란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내 옆에 앉았던 B였다. B는 해외를 가는 게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사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기내에서 내가 음료를 시킬 때 눈치를 보며 같은 음료를 주문하고, 창가 자리에 앉아 계속 바깥 풍경 사진을 찍었기 때문이다. B는 6개월 동안 프라하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낼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의 순수함과 젊음이 부럽게 느껴졌다. 나는 퇴사 여행을 왔다고 이야기했고, 우리는 서로의 행운을 빌며 헤어졌다. 이번 동유럽 여행에서 만난 첫 번째 인연이었다. 

인천국제공항에서 출발한 지 약 15시간 30분 만에 체코 프라하에 도착했다.

1시간 20분간 비행 후 체코 프라하에 도착했다. 인천에서 출발한 지 약 15시간 30분 만에 첫 동유럽 여행 도시에 발을 디뎠다. 체력이 바닥나 있었지만 잘 도착해서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먼저 들었다. 비행기에서 내리니 '프라하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한글 문구가 나를 반겼다. 3가지 언어로 환영 인사가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한국어라는 사실이 흥미롭고 신기했다. 체코에 방문하는 한국인 관광객이 정말 많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짐을 찾은 후 공항을 빠져나와 시내로 가는 공항버스 AE를 탔다. 

프라하의 어두운 골목길을 지나 마침내 소버린 호텔을 찾았다.

프라하 중앙역에서 내렸는데 엄청 한적해서 잘못 내렸나 싶었다. 구글 맵에 따르면, 근처에 내가 예약한 호텔이 있어야 했으나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도롯가라 당황스러웠다. 순간 '누가 해코지하면 어떡하지', '돈 뺏어가면 어떡하지', '이래서 여자 혼자 유럽여행은 위험한 건가' 등 온갖 상상을 다 했다. 마음을 가다듬고 중앙역 안으로 들어가 출구 여러 곳을 올라갔다 내려갔다 반복했다. 끝내 시내와 연결되는 길을 찾았지만, 불량스러워 보이는 아저씨들이 담배 피고 있는 곳을 지나야 하는 2차 고비가 찾아왔다. 내가 생각했던 프라하는 로맨틱한 이미지였는데, 기대와 달리 도시가 무섭게 느껴졌다. 다행히 아무 일 없이 소버린 호텔에 도착해 체크인을 하고 짐을 풀 수 있었다. 

'비토프나'는 기차가 맥주를 배달해주는 프라하의 이색 레스토랑이다.
'비토프나'에서 크루소비체 흑맥주와 돼지고기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장시간 비행으로 지친 몸을 회복한 뒤 저녁을 먹기 위해 호텔을 나왔다. 바츨라프 광장 쪽으로 걸어가니 사람이 정말 많았다. 내가 예상했던 프라하의 풍경이 펼쳐져 마음이 한결 놓였다. 저녁을 먹으러 간 곳은 tvN '짠내투어'에 나왔던 '비토프나'였다. 기차로 맥주를 배달해주는 이색 레스토랑이라 한 번 가봐야겠다고 찜했던 곳이다. 유명한 식당이어서 대기를 해야 하나 걱정했지만 저녁 10시쯤이라 앉을 자리가 있었다. 나는 크루소비체 흑맥주와 돼지고기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잠시 후 기차가 맥주를 싣고 '칙칙폭폭' 정겨운 소리를 내며 내 자리 쪽으로 다가왔다. 작은 기찻길을 지나가는 기차가 너무 귀여워서 나뿐만 아니라 주변에 앉아있던 손님들의 이목이 모두 집중됐다. 기차가 잠시 멈췄을 때 맥주를 재빨리 가져가야 했기 때문에 아쉽게도 제대로 된 사진은 남기지 못했다. 

저녁을 먹은 후 프라하 거리를 구경했다.

크루소비체 흑맥주를 한 모금 들이켠 순간, 고단했던 하루가 말끔히 씻기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체코 맥주를 체코에서 마시고 있으니 괜스레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돼지고기 스테이크는 고기가 부드러워서 맛있게 먹었지만, 같이 나온 알감자가 조금 짰다. 그래도 분위기를 즐기며 만족스럽게 식사를 마쳤다. 식당을 나와 소화할 겸 바츨라프 광장과 시내를 구경한 뒤 호텔로 돌아왔다. 그렇게 길고 길었던 여행 첫 날이 마무리됐다.

동유럽 여행 첫 숙소였던 체코 프라하 소버린 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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