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마와 루이스, 그리고 나

by 이안나

|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이란 있을 수 없는 거야"


어려운 환경에 있는 사람들이 도망치려 할 때 발목을 잡는 대사 1위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에겐 이직을 하는 내내 잡아먹혔던 말이다. 사람이 도망 좀 칠 수도 있지 너무하네, 하는 생각도 해보고 정말 나약하고 포기를 습관 들였기 때문에 이런 선택을 하는 건지 고민도 많이 하게 했다. 작중 질처럼 폭력적인 부모가 있지도 않았고, 인신매매나 괴물의 습격으로 생명의 위협을 받지도 않았으니까. 하지만 나는 "네가 혼자 뭘 할 수 있겠냐"는 말에 울컥해 거구의 검사에게 따귀를 날리려 한 질처럼, 처음 세상에 나와 끝이 밟힌 지렁이 정도의 울화통을 터트리고 있었다.


무너진 공과 사의 벽, 헤어진 오랜 연인과의 관계, 엉망이 된 몸과 마음을 질질 끌고 채용 공고 사이를 헤맸다. 비유가 아니라 진짜로 울면서 눈 밑에 휴지를 붙여두고 매일 구직 사이트를 뒤졌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 직장에 퇴사를 이야기할 때나 전 연인이 알게 되었을 때 무시당하고 싶지 않아서 기라성 같은 대감집이 아니면 지원도 하지 않았다. 지금 도망치고 있다는 사실을 면피하기 위해 거의 없던 체면과 욕심을 버리지 못했다. 회피도 예쁘게 포장하고 싶었던 건지, 얼마나 배부른 소리를 했는지 지금은 알지만 그때는 그 조급함이 나를 달리게 했다. 그런데 운 좋게 눈앞에 찾던 낙원이 나타났다. 영 맞지 않는 지원자격과 우대사항, 깊게 해 본 적 없는 직무였지만 그토록 원하던 삐까번쩍 기라성이었다. 회피와 성장을 동시에 할 수 있다는 속물적인 욕심과 뒷배 없는 합리화가 시작된 거다.


무모함은 가끔 동력이 된다. 하지만 조금은 찌질하게. 화가 나거나 슬플 때 결심하지 말라는 말이 유명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밤사이 지원을 해놓고는 며칠간 후회를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미쳤지, 내가 더 버티는 게 맞는데, 다음에 정말 좋은 공고가 뜨면 이 회사는 못 넣을 텐데, 지금 회사 계약 기간도 남았는데... 수만 가지 생각이 나를 괴롭히는 그날도 나는 사수가 하는 노골적인 이야기들을 들으며 점심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퇴근 전, 전화를 받았다.

그 대감집에 이제껏 해오던 일,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포지션 공백이 생겨 그 자리를 제안받은 거다. 내게 이런 기회가 왔네- 싶은 마음이 먼저, 이게 기회일까 도망일까- 하는 마음이 두 번째였다. 내 자리가 맞을까? 하는 고민도 따라왔지만 입은 이미 면접을 보겠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같은 계약직이라면 사수가 없는 곳에 있고 싶었다. 전형은 빠르게 진행되었고, 어찌저찌 찰싹 붙었다. 무를 수도 없는 도망이 시작되었다.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해 주세요.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게 해 주세요. 제가 모자라서, 부족해서 이런 일이 있던 게 아니라고 증명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오만 신들에게 빌었다. 주어 없이 빌면 누군가는 들어주리라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무교의 기도도 가끔은 하늘에 닿는 것 같다. 하늘에 닿았는지, 조상신에 닿았는지 알 수 없으나 적어도 내가 닿은 곳은 낙원이었다. 내가 하는 말이 그들의 상식에도 맞았다. 일이 아닌 다른 것으로 평가당하지 않았다. 더 많은 기회를 받을 수 있었고, 하고 싶은 일이라면 뭐든 할 수 있었다. 푸른 들판에서 춤추는 마티스의 사람처럼 가끔은 우스꽝스레 흔들려도 꼭 맞춘 춤을 추는 기분이었다. 모르는 건 배울 수 있었고 그럴 사람들이 당연하게도 있었다. 녹슬어 고장 나지 않고 팽팽 도는 톱니가 되는 기쁨이 만연했다. 사랑하는 곳에 모든 걸 쏟을 수 있는 마음이 누더기 같은 나를 지속시키는, 지금까지의 내 울분이 받아들여지는 장소와 그곳의 사람들까지 모자랄 것이 없었다.

하지만 점점 더 자주 내 처지를 생각했다. 이곳은 기한이 있으며 나를 완전히 필요로 하는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따라다녔다. 걱정이 스칠 때마다 일부러 더 바쁘게, 더 열심히 해냈다. 내게 남은 시간은 충분히 길고 모두가 내가 함께하기를 바라며 기회를 함께 찾아주고 있으니까. 여기서 너무 잘 해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으니까 모르는 일이라고 스스로 기대를 심었다. 이곳에 오기 위해 냈던 용기로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고 여기서의 경험은 앞으로의 길을 단단하게 만들어줄 거라고 생각했다. 온전히 속하지 않은 곳이라는 사실을 덮어두고 더 뿌옇게 꿈을 꿨다.


사실, 서두에 말한 대사는 작가의 의도와 사뭇 다른 쪽으로 유명해졌다. 무조건 도망치지 말고 버텨야 한다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사는, 늘 무기력하고 자립적이지 못했던 어린 주인공에게 독립심을 심어주고 스스로 성장하라 일깨워주는 검사의 말이다. 그리고 내가 해봤는데, 도망친 곳에도 낙원은 있고 그곳에서 나는 꼿꼿하게 다시 설 수 있었다. 누군가에겐 버티기보다 도망을 먼저 선택하는 것도 답일 수 있다. 사람들이 모르는 게 있는데, 도망에도 큰 용기가 필요하다. 그로 인한 결과를 온전히 책임지겠다는 선언은 쉽게 무시하거나 평가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파멸을 향해 달려가는 델마와 루이스 사이에 살짝 껴앉은 나를 그릴 수 있어야 지금을 버리고 절벽 끝으로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힘차게 뛰어간 절벽에서 땅까지 떨어지는 시간, 내가 낸 용기와 회피의 유통기한은 딱 2년이었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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