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_낙서

2026.04.11.

by 이아진 leeAjean


낙서


가장 먼저, 하찮은 글을 쓸 수 있게 공간을 내어 준 브런치와 여기까지 따라와 준 독자분들에게 감사의 말을 올린다.


그리고 오늘의 글이 있을 수 있게 해 준 ‘무라카미 하루키’, ‘친타오’, ‘미야자키 히데타카’ 이 세 분에게도 고맙다는 말로 에필로그를 시작한다.






한 국가와 다른 한 국가가 전쟁을 시작하면 혼란이 생긴다. 그 혼란은 평범한 하루가 되고, 나중에는 구분 지을 수 없게 된다. 바깥에서 바라보는 우리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심각하게 받아들이다가도, 뉴스 속보를 그냥 넘기게 된다. 그 안에는 고통이 계속되고 있는데, 밖에서 보는 우리의 관심에는 유통기한이 지나 있다.


혼란은 어떤 이의 정치적 돌파구였을 수 있다. 시선을 돌려야 할 때, 전쟁은 꽤 괜찮은 선택지가 된 지 오래다.




카엘은 드론을 조종하며 적군을 감지하고 처단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어린 시절부터 꿈꾸던 국가를 지키는 영웅이 되는 것. 시험을 보고, 면접을 보고, 체력 검증에 통과하고, 교육을 이수한다. 마침내 꿈을 이루었다. 조종실에 앉아 처음 화면을 켰을 때, 그는 자신이 옳은 자리에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느 환상과 현실의 괴리가 그렇듯 임무에 투입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눈치챘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도 이상함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동료도, 상관도, 뉴스도. 그래서 카엘도 말하지 않았다.


철저하게 자기 파괴가 완료된 카엘을 보듬어 줘야 하는 세상은 어디에도 없다. 각자의 밥그릇을 지키려는 정치가들의 약속 대련과, 정육점의 안녕을 위해 투쟁하는 돼지들만이 존재할 뿐이다.




모두의 바람과는 달리, 완결 이후에도 테르바키아에는 여전히 미래가 없다.


카엘과 마렌 중위가 살린 나디아는 우여곡절 끝에 라바니안의 국경을 넘은 뒤, 자신의 조국인 테르바키아에서 벌어지는 참상을 고발한다. 그녀의 인터뷰가 방송을 타고, 기사가 나가고, 한동안 사람들은 그녀의 이름을 입에 올린다. 일자리를 얻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배 속의 아이에게 평범한 일상을 주기 위해 찾아온 평범한 사람은 자신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일단 중요한 사람이 돼버렸다.


한편, 전쟁을 일으킨 라바니안의 대통령은 반전 여론을 뒤집기 위한 정치적 돌파구로 그동안 진행하던 '드론 작전' 이외에 테르바키아를 향한 대규모 침공 작전을 계획한다. 하지만 전쟁 종료를 요구하는 여론이 들끓게 되고 끝내 실행하지 못한다.


임기 말에 치러진 선거에서 야당 후보가 51.2%의 득표율로 당선되며, 전쟁은 끝난다.


하지만 전쟁이 끝났다는 선언이 모든 것을 끝낸 건 아니었다. 긴급 징집되어 단기간에 투입된 군인들은 전역 이후에도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지 못했다. 이들은 여전히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살아간다.




종전 후 나디아의 용기 있는 고발은 전쟁을 끝낸 새로운 대통령의 뇌물 스캔들에 묻혀 버린다. SNS 타임라인에 그녀의 이름이 더 이상 올라오지 않는다.


테르바키아의 독재는 더욱 심화되었다. 테르바키아의 비밀경찰이 한 남자가 사는 어느 가정집에 들이닥쳤고, 이후 나디아의 소식은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는다.


낙서 이후의 세계에서, 더 이상 전달할 이야기가 없다. 반복되는 평범한 하루의 보편적 사람들만이 자신의 일상을 연재하며 살아간다.




카엘은 악인이 아니었다. 아마 평범했다. 그가 죽인 사람들을 적군이라고 불러 준 것은 뉴스였고, 시청률로 유지시킨 것은 소파에 앉은 나와 이 글을 읽는 당신 그리고 보편적인 사람들이다.


전쟁에서 지도자는 서명을 했을 뿐이다. 서명을 지지한 여론이 있었고 투표를 한 (혹은 하지 않은) 절대 다수의 제3자들의 지지가 있었기에 이 모든 것이 가능했다. 그리고 전쟁을 끝낸 것도 같은 사람들이었다.


드론을 조종한 사람도, 국경을 넘다 객사한 사람도, 전쟁을 선언한 정치인도 이 이야기에서 소수자다. 절대 다수는 언제나 그것을 바라본 사람들이고, 그저 바라보는 것 자체가 이미 참여였을지 모른다. 그 어떤 선택에도 중립은 없다. 그 정도의 불편함은 가져가도 좋을 것 같다.





글의 마지막에 다가왔다.


절대 다수를 불편하게 하지 않기 위해 말하는 "더 이상 피해자가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라든가, "하루빨리 xx이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같은 말로 글을 끝내고 싶지 않다. 누구도 불편하지 않을 문장은 누구에게도 남지 않는다.


대신, 내가 아는 한 사람의 이야기로 글을 마무리한다.





그는 전역 후 배달 일을 시작했다.


밤마다 오토바이를 타고 하루에 열아홉 시간씩 일을 한다.


누군가 왜 그렇게까지 일을 하느냐고 물으면, 멈추면 생각이 난다고 한다. 무슨 생각이냐고는 아무도 묻지 않았다. 나도 묻지 않았다. 물었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묻지 않았다.


드론 배달이 보편화된 지금도 그는 오토바이로 배달 일을 한다. 왜 드론을 운전하지 않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는 대답 대신 웃기만 했다.


잘 지내냐고 물으면 잘 지낸다고 한다. 나는 그 말을 믿으려 한다.


오늘도 그는 멈추지 않고 도로를 달린다.


금이 간 밤하늘에 아직 야광별이 남아 있다면, 부디 그에게 작은 빛이라도 내어 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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