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_우리는 그렇게 괜찮음을 측정한다.

D+1461

by 이아진 leeAj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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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1461


알람이 울리기 전에 눈이 떠졌다. 천장이 보였다. 아무것도 없는 천장이었다.


알람이 울렸다. 껐다.


샤워를 했다. 뜨거운 물이 나오기까지 30초쯤 걸렸고, 그 사이 차가운 물이 어깨를 때렸다. 익숙한 차가움이었다. 처음에는 차가움에 어깨가 움찔했다. 언제부터 움찔하지 않게 됐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물이 데워지면서 거울이 흐려졌다. 얼굴이 사라졌다. 다시 맑아졌다. 얼굴이 나타났다. 수건으로 머리를 닦았다. 수건에서 빨래 세제 냄새가 났다.


군복을 입었다. 단추를 잠그고 허리띠를 맸다.



차에 탔다. 시동을 걸었다. 히터가 데워지는 데 시간이 걸렸다. 핸들이 차가웠다. 조수석을 봤다. 비어 있었다. 예전에 선글라스가 놓여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언제 치웠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치운 건지 아닌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조수석에 먼지가 앉아 있었다. 아무도 앉지 않은 지 오래된 자리의 먼지였다.


라디오는 켜지 않았다.


출근길은 항상 같았다. 같은 신호등, 같은 건널목, 같은 순서로 바뀌는 풍경. 도시를 벗어나면서 건물이 줄어들고 들판이 나타났다. 들판의 색은 계절마다 달랐다. 봄에는 초록이고 여름에는 짙은 초록이고 가을에는 누렇고 겨울에는 회색이었다. 지금은 무슨 색인지 보지 않았다. 같은 들판이 지나갔다. 전봇대가 일정한 간격으로 서 있었다. 까마귀가 전선 위에 앉아 있었다. 같은 까마귀인지는 모르겠지만 같은 자리였다. 기지까지 40분. 엔진 소리와 타이어가 아스팔트를 밟는 소리만 차 안을 채웠다.



편의점에 들렀다. 문을 열자 따뜻한 공기가 밀려왔다. 샌드위치를 샀다. 햄과 치즈. 처음에는 직접 만들어 온 적도 있었다. 토마토와 치즈를 넣었다. 언제부터 편의점 것을 사기 시작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계산원이 스캔했다. 삑, 삑. 계산원이 누구인지 보지 않았다. 눈이 부었는지 안 부었는지 보지 않았다. 카드를 냈다. 영수증은 받지 않았다.


카운터 옆 유리창을 봤다. 아무것도 붙어 있지 않았다. 예전에는 뭔가 붙어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손 글씨. 별.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편의점을 나서면서 찬 바람이 목을 스쳤다.



기지 정문에서 경례를 주고받았다. 경비병의 얼굴이 바뀌어 있었다. 전에 있던 경비병이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겠다. 경비병은 계속 바뀌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시동을 껐다. 엔진이 식어가는 소리가 났다. 똑, 똑, 똑. 금속이 수축하는 소리. 차에서 내렸다. 자갈이 서걱거렸다.



조종실로 들어갔다. 삑. 문이 열렸다. 환기 팬이 돌고 있었다. 커피 포트가 지직거렸다. 형광등이 켜져 있었다. 창문이 없었다. 마렌이 와 있었다. 30분 일찍 왔다. 머리카락 사이에 흰 머리가 조금 보였다. 화면을 보고 있었다.


“출근했습니다.”


“수고.”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헬무트의 자리가 비어 있었다. 전역한 지 두 달쯤 됐다. 새로운 사람이 배치될 것이라고 했다. 아직 오지 않았다. 의자가 책상 앞에 밀려 있었다. 모니터가 꺼져 있었다. 책상 위에 아무것도 없었다.



의자에 앉았다. 삐걱거렸다. 등받이 왼쪽이 여전히 조금 낮았다.


가방에서 샌드위치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놨다. 컴퓨터를 켰다. 팬이 돌아가는 소리가 웅웅거렸다. 부팅 화면. 군 로고. “라바니안 국방부 무인기체계.”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비밀번호는 보안 점검일마다 바꿔야 했다. 그래도 손가락이 자동으로 움직였다. 새로운 비밀번호도 이틀이면 손가락이 기억했다. 엔터.


화면이 열렸다. 회색 땅, 바위, 나무들.


마렌이 커피를 건넸다. 종이컵. 김이 올라왔다. 형광등 빛 아래에서 김이 보였다가 사라졌다. 마렌은 거의 매일 커피를 건넸다. 한 번도 부탁한 적 없었다. 마렌도 한 번도 이유를 말한 적 없었다.


“고맙습니다.”


커피를 받아 들면서 마렌을 잠깐 봤다. 마렌은 화면을 보고 있었다.


커피를 마셨다. 따뜻했다.


샌드위치를 뜯었다. 비닐이 바스락거렸다.


컨트롤러를 잡았다. 양손에 익숙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오른손 검지가 닿는 부분의 플라스틱이 매끈하게 닳아 있었다.


08:47.


업무가 시작됐다.


오전에 타깃이 두 명이었다.


첫 번째는 09:03. 움직임이 포착됐다. 줌을 당겼다. 배낭을 멘 남자. 바위 사이를 이동하고 있었다. 어깨가 보이고 손이 보이고 얼굴이 보였다. 확인. 복창. 버튼. 먼지. 보고서. 시간, 좌표, 대상, 결과. 30초. 다음 구역.


두 번째는 10:41. 같은 순서. 움직임, 줌, 확인, 복창, 버튼, 먼지, 보고서. 30초. 다음 구역. 얼굴이 보였다가 사라졌다. 점이 됐다가 점도 아닌 것이 됐다. 화면이 회색 땅으로 돌아왔다.


마렌이 확인 절차를 진행했다. 키보드 소리. 좌표를 읽는 소리. 4년 동안 같은 소리였다. 마렌의 목소리는 변하지 않았다. 처음 들었을 때와 같은 톤이었다.


두 번 다 정확했다.



점심을 먹었다. 구내식당. 수프와 빵. 나는 빈 자리를 찾아 앉았다.


식당 창밖으로 주차장이 보였다. 해가 낮게 걸려 있었다. 차 유리에 빛이 반사되고 있었다. 식당 안에서 사람들이 먹고 있었다. 수저 소리, 대화 소리, 의자 끌리는 소리. 헬무트가 있었으면 뭔가 말했을 것이었다.



오후에 타깃이 한 명 더 있었다. 14:22. 같은 순서. 움직임. 줌. 어깨, 손, 얼굴. 확인. 복창. 버튼. 먼지가 피어올랐다가 가라앉았다. 보고서. 시간, 좌표, 대상, 결과. 30초. 화면이 회색 땅으로 돌아왔다.


정확했다. 오전 두 번, 오후 한 번. 오늘 셋이었다. 셋이라는 숫자를 세지 않았다. 보고서에 기록이 남아 있었다. 숫자로.


화면 속 땅이 천천히 움직였다. 바위, 덤불, 마른 나무. 4년 동안 같은 풍경이었다. 같은 회색이었다. 처음에는 이 풍경이 낯설었다. 훈련 시뮬레이터와 달랐다. 지금은 낯설지 않았다. 낯설다는 감각 자체가 사라졌다. 익숙해진 것이 아니라 감각이 사라진 것이었다.


퇴근할 때 마렌이 말했다.


“수고했어요.”


“네. 수고하셨습니다.”


컴퓨터를 끄고 가방을 들었다. 조종실 문을 나섰다. 삑. 복도. 형광등. 엘리베이터를 같이 탔다. 마렌과 나, 둘이었다. 문이 닫혔다. 아무 말이 없었다. 1층에서 문이 열렸다.


주차장에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걸어갔다. 마렌은 돌아보지 않았다. 나도 돌아보지 않았다


도로가 막혔다. 아침과 같은 자리였다. 앞차 범퍼에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읽지 않았다. 신호가 바뀌었다. 라디오를 켜지 않았다. 조수석이 비어 있었다. 도시가 다가왔다. 건물들이 나타났다. 가로등이 하나씩 켜지고 있었다.



집에 들어와 불을 켰다. 거실 전구는 한 번 교체했다. 전에 나갔을 때 며칠 동안 어두운 채로 있었다. 지금은 켜졌다.


창가에 화분이 있었다. 흙이 말라 있었다. 잎이 없었다. 줄기만 남아 있었다. 갈색이었다. 언제 죽었는지 모르겠다. 한 번 물을 준 적이 있었다. 흘러넘쳤다. 그 뒤로 주지 않았다. 흙이 갈라져 있었다. 갈라진 틈이 넓어져 있었다. 화분을 버리지 않았다. 버려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있었다. 하지 않았다. 화분은 창가에 계속 있었다.


냉장고를 열었다. 물병이 있었다. 그 외에는 거의 비어 있었다. 달걀도 없었다. 물을 마셨다. 찬물이 목을 타고 내려갔다. 냉장고를 닫았다. 소파에 앉았다. TV를 켜지 않았다. 스마트폰을 봤다. 알림이 없었다. 토루빈이 메시지를 보낸 적이 있었다. 전역하고 나서. 잘 지내냐고. 잘 지낸다고 답했다. 화면을 껐다. 거실이 조용했다.


씻고 침대에 누웠다. 이불이 차가웠다. 체온에 데워지기를 기다렸다.


천장을 봤다. 아무것도 없는 천장이었다. 페인트가 벗겨진 곳이 하나 있었다.


핸드폰을 봤다. 알림이 없었다. 엄마한테서 전화가 오지 않았다. 요즘은 오지 않았다.





사람은 무엇이든 견딜 수 있다. 그것이 인간의 위대함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견딘다는 것과 무감각해진다는 것을 우리는 종종 혼동한다. 견디는 사람은 무게를 느낀다. 무감각해진 사람은 무게가 사라졌다고 생각한다. 둘의 결과는 같아 보인다. 계속 살아간다. 계속 출근한다. 계속 잠이 든다.


우리는 괜찮아진 것과 괜찮아진 척 하는 것을 구별하지 못한다. 구별하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은 묻지 않는다. 나는 지금 견디고 있는가, 아니면 느끼지 못하고 있는가.


손이 떨리지 않으면 괜찮은 것이다. 잠이 오면 괜찮은 것이다. 내일도 출근할 수 있으면 괜찮은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괜찮음을 측정한다.


아무도 괜찮냐고 묻지 않았다. 그러니 모두 괜찮은 것이다.




이전 09화09화_오후의 햇살이 거실 바닥에 길게 늘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