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결
평범한 하루의 보편적 사람들
라바니안과 테르바키아의 '전쟁'은 양국 간 평화협정이 체결되며 2024년 1월 3일 0시를 기준으로 공식적으로 종료되었다.
이후에도 테르바키아에서는 지속적으로 난민이 발생하고 있다. 유엔 난민기구에 따르면 매년 평균 12,400명이 국경을 넘어 탈출을 시도하고 있다. 이 수치는 전쟁 당시 '침입 시도'로 기록된 연평균 수치와 거의 일치한다.
라바니안의 선거 제도는 국가 최고 지도자 선출 시 유권자의 과반 이상의 지지를 요구한다. 전쟁을 주도한 당시 집권 여당의 대통령은 54.1%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그리고 다음 대선에서 정권을 내주게 된다. 새 정권 출범과 함께 전쟁은 종료되었고, 소집된 23,200명의 병력은 대부분 전역했다.
이들 중 43%가 PTSD 증상을 호소하고 있으나, 정부 차원의 지원 프로그램은 전무하다. 의회에서 관련 법안이 발의되었으나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했다.
집권 후 2년째, 한 인권 단체가 보고서를 발표했다. 테르바키아 출신 난민들이 고액 급여를 제시받아 해외 분쟁 지역으로 이송된 후, 여권을 압수당하고 전투에 동원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신원 확인이 어려운 난민 신분을 이용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최소 340명이 이러한 경로로 이송되었으며, 이 중 연락이 두절된 인원은 127명이었다. 이송을 주선한 것으로 지목된 민간 군사 기업은 라바니안에 본사를 두고 있었고, 전쟁 당시 드론 정비 계약을 체결한 이력이 있었다.
해당 보고서는 주요 언론에서 이틀 동안 다루어졌다. 사흘째부터는 유명 배우의 이혼 소식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드론 제조업체 '벨라크'는 종전 직후 주가가 수직 하락했다. 파산 신청 6개월 후 라바니안 정부가 회사를 인수했으며, 이후 사명을 '위잉'으로 변경하고 배달 플랫폼 사업으로 전환했다. 드론 생산 라인은 현재 가동이 중단된 상태다.
같은 시기, 도심 지역 드론 배달 서비스가 급격히 확대되었다. 배달 플랫폼 '위잉'의 자료에 따르면 배달 시간이 평균 40% 단축되었다. 이제 거의 모든 음식 배달이 드론으로 이루어진다. 하늘에서 프로펠러 소리가 들리면 사람들은 고개를 들어 올려다본다. 음식이 도착했다는 뜻이다.
배달 드론 조종사 채용 공고에는 [전직 군인 우대]라는 문구가 자주 등장한다.
토루빈 레이크(당시 26세)는 전역 후 국경 지역에서 헌옷 수거 사업을 시작했다. 수거 지역은 전쟁 당시 '작전 구역'으로 분류되었던 곳이다. 수거된 옷들은 테르바키아 대도시의 빈티지 상점 체인 '리본'을 통해 판매된다. 한 벌당 평균 99.89달러. 마케팅 문구는 '역사를 입다'였다.
전역 후 카엘은 토루빈과 가끔 만났다. 예전만큼 자주는 아니었다. 한 번은 도심의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맥주를 마시다가 토루빈이 말했다.
"마렌의 소식 들었어?"
"아니."
"내 동기 하나가 병원에서 봤대."
"병원?"
"응. 중앙 병원."
카엘은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심리상담사로 복직한 건가."
"그건 모르겠어. 그냥 병원에서 봤다고만 하더라고. 복도에서."
토루빈이 맥주캔을 돌리며 말했다.
"그 병원 요즘 전역 군인들 많이 간다더라."
더 말하지 않았다. 카엘도 묻지 않았다.
카엘 노빅(당시 27세)의 집 주소는 도심에서 14km 떨어진 아파트 단지다. 3층. 햇빛이 잘 보이는 하지만 늘 커튼이 쳐진 방.
그는 매일 아침 출근한다. 퇴근하고, 집으로 간다. 그리고 잠이 든다.
가끔 잠이 오지 않는 밤이 있다.
그럴 땐 밤을 새고 출근한다.
끝.
다음 회차로 에필로그와 후기가 올라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