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 하우스 메이트가 우리 엄마한테 예쁨 받는 법
고부(는 아니지만) 갈등은 바깥 양반(도 아니지만) 하기 나름이야
지금 도고랑 나랑 사이는 하우스 메이트지만, 우리 관계를 설명하자면 그것보다는 딥하다. '답'이라는 말을 써도 될 정도로! 초등학생 때부터 친구였다는 말로도 모자라다. 우리 둘 부모님은 상견례까지 끝내셨으니까. 물론 우리 빼고.
시간을 거슬러 우리가 서울에 살 집을 찾아다닐 때, 도고와 내가 서로와 함께 살겠다고 본가에 연락하자마자 아버지 두 분은 서로와의 통화를 끝냈다고 한다. 같은 학년 100명이 초중고를 다 같이 다녀야 할 만큼 손바닥만 한 동네에서 12년 학부모 생활을 하면 '누구네 엄마'라는 말로 알음알음 서로를 알아본다. 거기에 아버지 두 분이 다 공무원이라면? 이건 서로를 모르는 게 이상한 거다. 엄마한테 듣기로는 아버지 두 분이 술자리를 하면서 딸 욕도 나누셨다고. 듣기로는 딱 딸 둘 시집보내는 모양새였다.
시작이 그래서인지 우리 자취는 결혼 준비하듯 진행되었다. 서로뿐 아니라 양가 부모님까지 신경을 쓰셨다는 말씀. 보증금은 반반으로 하자. 큰 방은 누가 써야 하는가. 냉장고는 누가 해오는가. 쓰던 가구들은 어떻게 넣어야 하는가. 짐을 넣을 때는 부모님들이 올라오셔서 각각 밥도 사주셨다. 자리를 잡은 지금도 내 부모님은 도고의 안부를, 도고네 부모님은 내 안부를 물으신다. 아무래도 딸이 타지에 뿌리내리고 사는데, 같은 동네 친구랑 같이 산다니 조금은 안심하신 것 같았다. 우리도 농담조로 그런 얘기를 한다. 회사를 다니는 내가 바깥양반, 집에서 일하는 도고가 안사람이라고.
지금은 도고를 예뻐하는 우리 엄마지만, 도고가 비건이 됐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으셨을 때에는 엄청 걱정하셨다. 물론 도고가 아니라 나를. 내가 도고한테 처음 비건 이야기를 들었을 때처럼 엄마의 첫 질문은 '왜?'였다. 그 궁금증이 해소되고 나서는 나에 대한 염려를 풀어놓으셨다.
너한테도 비건 하라고 하느냐. (그건 아니고요.) 그럼 너도 앞으로 집에서 고기 못 먹는 것 아니냐. (집에서는 원래 잘 안 먹었어요. 나무 벽에 냄새배서리.) 절대 따라 하지 말아라. (어차피 회사 다니면 밖에서 비건하기 어려워요.) 그러다 도고 쓰러지면 어떡하냐. (지금 도고가 저보다 건강해요. - 이건 내 걱정이 아닌데!)
우리 엄마 결론은 이거였다. 넌 꼭 고기 먹어라! 한 끼만 깨작거려도 어디 아프냐고 냉장고를 털어 먹이셨던 엄마셨으니, 딸이 뭘 안 먹고 지낸다는 게 걱정되셨겠지. 엄마의 마음이 어떤지는 백번 이해했다. 하지만 나는 불속성 효자들이 으레 그러하듯 귓등으로 흘려 들었다. 네네. 제가 알아서 잘 먹을게요.
도고가 비건이 됐다는 이야기를 전한 뒤 한동안은 엄마랑 전화 패턴이 똑같았다. 사는 얘기 좀 하다가 도고 비건 걱정. 그리고는 '고기 잘 먹어라!' 엄마는 내가 마르던 원인이 도고의 비건이라고 생각하셨나 보다. 점점 핼쓱해지고 음식도 제대로 못 넘기던 나를 위해 생각날 때마다 과자랑 간식, 영양제를 보내주셨다.
그런 엄마가 오해를 푼 건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먹성을 되찾은 때였다. 인턴을 그만두고 다시 취업할 때까지 잘 노느라 땡땡해진 날 보고 엄마는 웃으셨다.
"도고는 채식한댔으면서, 넌 안 하나 보네? 이제 그만 쪄야겠다."
벽돌집에 있을 땐 도고랑 식단을 맞추던 때였던지라 충격이 한 번. 다른 사람도 아니고 엄마한테 그만 쪄야겠다고 들은 거라서 충격이 두 번이었다. 어떻게 나한테 살쪘다고 할 수 있어요! 오늘 저녁 안 먹어! 그렇게 찡찡거리며 거실을 굴러다녔다. 엄마가 쪄놓은 양배추에 못 이겨 야무지게 양배추 굴비쌈 저녁을 먹었다는 건 안 비밀.
도고가 비건을 시작한 지 2년이 넘은 지금도 우리 엄마는 도고의 안부를 묻는다. 걔는 아직 고기 안 먹니? 그럼 나는 대답한다. 네. 지금도 안 먹어요. 그래도 전처럼 걱정은 안 하신다. 대신 내가 먹을 간식을 보내주실 때, 도고랑 같이 먹을 수 있는 과일을 함께 보내주신다. 지난 내 생일에는 도고랑 같이 먹으라고 비건 케이크까지 찾아보셨다고.(결국 찾기 힘드셔서 돈으로 주셨다.)
이제 엄마는 도고의 비건을 좋게 보신다. 사실 '비건'의 좋음을 인정하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채소를 많이 먹게 된 건 좋아하신다. 전에는 메인 푸드만 먹겠다고 고기를 먹을 땐 절대 쌈도 싸 먹지 않는 나였는데, 주말 점심으로 샐러드나 부리또 볼을 먹는다니까 처음에는 믿지도 않으셨다. 암튼 우리 엄마는 요새 이런 얘기를 하신다.
"너랑 사는 게 쉬운 게 아니야. 도고한테 잘해."
18년 동안 날 데리고 산 엄마는 내가 얼마나 정리정돈에 약한 지 아신다. 그런데 도고랑 같이 사는 벽돌집이 (적어도 공용공간은) 깨끗하다? 우리 엄마는 이 부분에서 도고를 굉장히 높이 평가하신다.
부지런하고 집안일에 싹싹한 도고가 공용 공간을 깨끗하게 관리한다고, 그래서 꾸준히 청소한다고 이야기를 하면 엄마는 그렇게! 도고 칭찬을 하신다. 그렇죠, 그렇죠. 내가 속없이 맞장구를 치면 엄마는 밉지 않게 꾸중을 하신다. 그러니까 깨끗하게 살아. 도고한테 쫓겨나지 말고.
하지만 말이야. 이건 다 내 작전이란 말이지. 원래 고부 갈등은 사위 하기 나름 아니겠어? 나름 벽돌집의 바깥양반 포지션을 가진 사람으로서, 나는 오늘도 도고와 우리 엄마 사이에서 서로의 칭찬을 옮긴다. 물론 우리 엄마가 도고한테 시어머니 역할을 하는 건 아니지만, 도고를 예뻐하면 예뻐할수록 과일이 많이 오지 않겠어? 이렇게 오늘도 이박의 큰 그림 속에 벽돌집의 평화로운 하루가 저물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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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 부모님은 도고의 비건 말고는 도고한테 큰 관심은 없으시다. 그냥 전화로 '둘이 요즘 잘 지내니?' 정도의 안부와 도고의 비건 안부를 물으실 뿐.
도고네도 궁금해서 도고한테 물어보니까, 그쪽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우리가 이사할 시기에 내가 인턴을 하고 있었는데, 그것 때문인지 도고네 아버지가 '이박이는 요새도 그 회사 다니니?'하고 종종 물어보신다고.
가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양쪽 가족 다 같이 서울에 올라오셔서 가족 식사(심지어 도고랑 내 동생도 나이가 똑같다)를 하겠다고 하실 때가 있어 도고랑 내 등골을 오싹하게 만든다. 우리 둘 다 성인이니 만큼 본가랑의 거리감은 딱 이 정도가 적당한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