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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주 Oct 06. 2021

동거인이 비건 시작하고 나의 고기 시대 시작됐다

비건의 하우스 메이트가 불쌍해 보였던 이유

 출근을 시작했다. 신입사원에게는 업무 없는 일과시간보다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어색하게 사담을 섞어야 하는 점심시간이 더 어려웠다. 적당히 웃으며 제육볶음을 먹고 있는데 어떤 분이 장난을 걸었다.


 "이박 씨, 열심히 먹네요? 집에서 안 먹어요?"

 "아, 네. 집에선 못 먹어서요."

 "왜 못 먹어요? 집에서 고기 안 먹어요?"

 "네. 하우스 메이트가 채식주의자라서요."


 그렇게 내 실수로 회사 사람들에게 내 하우스 메이트의 식생활이 공개되었다. 덕분에 점심 식사의 화두는 나와 도고의 식생활이 되었다.


 어떻게 고기를 안 먹어요? 그럼 외식할 때에는 어딜 가요? 진짜 고기가 먹고 싶을 때는 어떡해요? 반응은 대체로 나와 같았다. 호기심 반 걱정 반의 반응. 나는 못하겠다, 힘들겠다, 하는 남 이야기 반응. 채식하지 않는 사람들이 채식에 대해 이야기할 만한 말들이었다.


 그런데, 이야기가 점점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렀다. 그들과 함께 자리한 내가 비건이 아닌, '비건의 논비건 하우스 메이트'였기 때문이다.


 집에서는 풀만 먹어요? 생활비는 같이 쓴다면서요. 억지로 채식하는 거 아니죠? 날 걱정하는 말이었지만 묘하게 따가웠다.


 점심으로 주문한 제육볶음은 식탁에 올라오자마자 내 앞으로 밀려 들어왔다. 어묵 반찬도 멸치 볶음도 사이드 된장찌개 속 차돌도 내 차지였다. 입사 일주일 차 파릇파릇 신입사원은 점심값도 안 내고 온 식탁 고기를 독차지했다.


 그날의 점심을 시작으로 내 앞에 고깃길이 깔렸다. 평범한 식당에 가도 '이박이 고기  많이 먹어라'하는 말이 붙어 나왔다. 야근 식사 겸 시킨 치킨이나 족발이 남으면 보따리는 나를 따라왔다.


 병아리 사회인으로서 누군가에게 챙김 받는 건 좋은 일이었지만, 과한 관심은 불편하기도 했다. 맛있는 걸 많이 먹는 건 내가 좋아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배가 부르고 나면 명치가 갑갑했다. 과식 탓도 있겠지만.


 "이박 씨, 불쌍하다."


 나는 먹고 싶은 것 마음껏 못 먹는 불쌍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도고와 내가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어떤 합의를 했는지를 덧붙였음에도 마찬가지였다. 내 회사에서 도고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하우스 메이트의 식생활을 방해하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었다. 그냥 먹는 음식이 다른 것뿐인데!



 오랜만에 야근이 없던 날, 도고와 저녁을 먹으러 동네 보리밥집에 갔다. 갖은 나물을 보리밥 자기 양푼에 넣고 고추장 참기름에 비벼먹으며 도고한테 회사 이야기를 했다.


 "내 친구 중에도 너 생각하는 사람 있었어."


 도고는 비건에 대한 다른 친구들의 반응을 이야기해줬다. 도고 주변에는 채식에 관심 있는 친구들이 많았다고 했다. 덕분에 도고의 비건 선언은 많은 응원을 받았다고. 그중에서도 도고의 하우스 메이트인 나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같이 먹던 음식을 같이 못 먹는 거고 요리도 채식이 아니면 따로 해야 하는 거잖아."


 음식을 나누는 건 타인과의 동거에 있어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다. 우리가 합의한 점이 있다고 해도 그 부분이 아쉽게 남는 건 사실이었다. 그래도 그걸 아쉬워하는 건 우리 몫으로 남겨줬으면 했다.


 나는 편식을 한다. 콩도 싫고 고사리도 싫다. 고기랑 채소를 같이 먹는 것도 싫어해서 쌈을 먹을 거면 고기 빼고 밥이랑 쌈장만, 고기를 먹을 거면 쌈 없이 밥이랑 고기만 먹는다. 고기도 누린내가 나면 안 먹는다. 입맛 까다롭기로 따지면 비건 못지않단 말이지.


 내가 다른 사람들과 짜장면을 먹을 때 완두콩을 빼내도 아무도 나한테 뭐라고 안 한다. 괜히 머쓱한 내가 '저, 편식해요.'하고 자진 납세를 해도 '그거 안 먹으면 어떡해요?'하고 안쓰럽게 보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다 큰 어른이니까. 내 앞에 나온 음식을 어떻게 먹든 그건 내 자유다. 그런데 그건 도고도 마찬가지 아닌가?



 "야, 그런데 나. 솔직히 남은 음식 싸주는 거 싫긴 했는데 제육 더 주는 건 좋았다?"

 "그럼 제육 먹을 때마다 내 얘기 해. 이왕 먹는 거 많이 먹고 와."


 비건하면서 이런 얘기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하고 도고는 덧붙였다. 나는 피식피식 웃으며 제육볶음을 내 앞으로 끌어당겼다.


 우리가 가는 보리밥집은 보리밥을 시키면 반찬으로 제육볶음을 줬다. 도고랑 그 식당에 가면 제육볶음은 다 내 차지다. 내가 안 먹는 나물은 고스란히 도고의 자기 양푼에 들어간다. 가끔 기름진 게 먹고 싶을 때면 감자전을 추가한다.


 서로가 뭘 먹든 우리는 한 식탁에 앉는다. 무엇을 어떻게 먹는지는 각자의 자유다. 접시에 담긴 음식이 다르다고 해서 누군가가 미안하거나 불쌍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자기 먹을 것 정도는 마음대로 선택하고 존중받을 수 있는 어른이니까!

(먹는 거 가지고 잔소리하면 서럽다 서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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