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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주 Oct 04. 2021

채식주의자 하우스 메이트를 받아들이는 5단계

비건과 논비건의 동거

 "나, 비건 하기로 했어."


 15년 지기 친구 도고가 느닷없이 비건을 선언한 날. 그날은 우리가 2년 월세계약 벽돌집에 같이 산 지 4개월 되는 날이었다.


 입주 첫날 우리 어머니가 보내주신 소고기를 구워 먹으면서도, 새로 생긴 곱창집 메뉴를 같이 읽을 때도, 늦은 밤 치킨을 시켜먹을 때에도. 나는 도고가 채식주의자가 될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내 주변에는 채식주의자가 없었다. 도고가 채식주의 선언을 하기 전까지는.


 그래서 내 반응은 이랬다.



1) 축하: "오, 대단하네. 축하해!"


 비건이 되는 게 성년이 되거나 대학생 혹은 사회인이 되는 것처럼 축하할 만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도고를 축하했다. 쨌든 비건이 뭐고 환경애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고 있었으니까 가능한 반응이었다. 그리고 평생 고기를 뺀 식탁을 받는다는 게 얼마나 힘들까 하는 데까지 생각이 닿자 비건이 되는 일이 참 대단해 보이기도 했다.


 사실, 조카 첫 돌 때문에 당일치기로 울산을 다녀와 피곤한 상태에서 나온 기계적 반응이었다.



 2) 확인: "비건이라고? 그러면 계란이랑 우유도 안 먹어?"


 번개처럼 입 밖으로 축하를 뱉은 후에, 뒤늦게 머릿속에 천둥이 쳤다.


 '비건? 그런데 비건이 뭐였더라?'


 비건이 가장 높은 등급의 채식주의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정확하게 뭔지 확인이 필요했다. 고기뿐 아니라 동물 부산물까지 먹지 않는 게 맞는지, 또 어떤 걸 먹을 수 있는지를 물었다. 여기까지는 그냥 호기심이었다.  단순히 도고가 어떤 걸 안 먹기로 결심했는지 묻는 정도였다.



 3) 의심: "너 아이스크림도 안 먹어? 저번 주에도 나랑 배스킨 다녀왔잖아."


 그런데 생각할수록 충격이었다. 단순하게 고기를 안 먹는다? 이 정도는 반찬 하나 포기하는 정도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우유와 계란까지 빠지니까 내 지식 선상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어마어마하게 빠졌다. 빵이 들어가는 음식, 우유로 만드는 디저트를 못 먹으니까. 도고랑 같이 살면서 생활비로 밥 대신 군것질을 하는 데에 재미를 붙이고 있던 나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그럼 이제 나 혼자 먹어야겠네, 까지 생각이 흐르자 그제야 현실적인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4) 혼란: "너 나랑 생활비 같이. 쓰잖아!"

 사이좋게 월세와 보증금을 반반 나눠 들어온 벽돌집. 우리는 생활비도 공동으로 모아 썼다. 인당 15만 원씩 모인 30만 원 생활비는 우리의 전기세 가스비 수도세와 생활용품, 그리고 장바구니를 채우는 식비가 되었다.


 "생활비 남으면 우리, 곱창 먹으러 갈래?"


 간간이 한 달 생활비가 남으면 거한 외식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럴 수가 없게 되었다. 도고의 채식주의자 선언 때문에.


 도고와 나의 커다란 식단 교집합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한 사람이 안 먹는 식재료에 공동 생활비를 쓰는 건 불공평했다.(이건 내 생각이었다.) 그렇다고 둘 다 먹을 수 있는 시금치 고사리나물 같은 푸성귀로 장바구니를 채우는 건 편식이 심한 내가 반대였다. 생활비로 식료품을 살 수 없으면 내 사비를 써야 했다. 한 달 뒤에 첫 회사를 다니며 경제적 독립을 해야 하는 나로서는 작은 일이 아니었다.



 5) 합의: "그럼 나는 밖에서 먹고 다닐게. 대신 집에서 먹을 건 네가 찾아줘."


 이러나저러나 우리에게 남은 결론은 합의뿐이었다. 좋으면 좋았지 비건은 나쁜 게 아니었으니까. 내가 없는 이틀 사이에 당장 비건이 되겠다는 도고의 건강이 살짝 걱정되기는 했지만, 다 큰 성인이 결정한 일인데 내가 왈가왈부할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물넷 먹은 성인이 자기 먹을 거 자기가 결정한다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공동 공간 깨끗하게 쓰기, 설거지 제때제때 하기 같은 동거 규칙에 채식 항목을 추가해야 했다.


 다행스럽게도, 집에서 고기를 먹지 않는 건 쉬웠다. 우리의 오래된 벽돌집은 거실과 주방이 나무벽으로 되어있어서 냄새가 배는 음식은 출입 금지였다. 입주 날 먹은 소고기를 제외하고는 집에서 육고기나 생선을 먹은 적이 없었다. 그 부분은 평소와 같았다.


 또, 다음 달부터 회사를 다니는 나는 밖에서 점심을 먹고 들어올 수 있었다. 회사 사람들이랑은 평범하게 식사를 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한 끼 정도 함께 채식을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정 다른 게 먹고 싶으면 밖에서 먹고 오거나.


 도고는 작은 사이즈의 우유나 계란을 사라고 했다. 혼자 먹을 만큼의 우유나 계란은 '나 이거 살게!'하고 공동 생활비로 사게 되었다. 도고도 내가 싫어하는 채소(시금치, 고사리, 호박!)를 살 때에는 '나 이거 살게!'하고 장바구니에 담았다. 나름 쌤쌤이었다.


 비록 친구랑 같이 살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기쁨, 같이 맛있는 것 먹으러 다니기가 무너질 위기였지만 도고는 다양한 비건 음식점을 찾아왔다. 우리는 같이 카페에 가고 음식점을 다녔듯 비건 베이커리와 비건 음식점을 찾아다니기로 했다. 재료가 어떻든 몰랐던 맛을 발견하는 건 즐거운 일이니까 그걸 지켰다는 사실에 의미를 두기로 했다.


 그리고 우리가 합의할 가장 중요한 게 남아있었다.


 "혹시라도 서로한테 본인 식습관을 강요하지는 말자."


 인터넷을 떠도는. 비건에 대한 말, 말, 말. 채식주의를 두고 다양한 이론과 논쟁이 타오르는 이유는 채식주의가 단순한 식단 변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채식주의는 하나의 운동이자 신념이고 지지였다. 그 움직임이 좋은 쪽을 향한 것이라 해도, 과정에 있어 강요와 강제는 없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도고와 나는 주와 식이라는 삶의 큰 부분을 공유하게 된 만큼 서로의 변화에 영향을 크게 주고받을 수밖에 없었다.


 나의 경우는, 삶의 가장 큰 기쁨을 차지하는 음식을 놓지 못한 이유가 컸다. 음식은 내가 스트레스를 푸는 가장 쉬운 방법이었으니까. 채식이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하더라도, 또 내가 그 사실을 안다 하더라도 당장 이를 받아들일 생각은 없었다. 코스모스 졸업과 취업을 앞둔 나로서는 큰 변화를 받아들이기도 버거웠다.


 그리고 이 부분은 도고에게도 해당하는 부분이었다. 비건이라는, 지금까지의 인생과 앞으로의 삶을 구분지을 큰 결심을 한 도고에게는 '비건'에 적응하는 것 만으로도 쏟아야 할 에너지가 컸다. 당장 내일부터 그동안 해먹던 자취음식 말고 뭘 해먹어야 할지 고민해야 했으니까. '건강 나빠지니까 그냥 고기 먹어.'하는 말에는 우려가 섞여있을지라도 배려는 없다.

 

 도고와 나는 벽돌집에 함께 살지만 방은 따로 쓴다. 거실 주방 화장실은 함께 쓰지만 각자의 방은 침범하지 않는다. 미술 작업을 하는 도고가 방에서 어떤 작업을 하던지, 재택근무를 하는 내가 침대에서 얼마나 불량한 자세로 타이핑을 하던지. 서로를 존중하되 각자의 영역을 지키는 쓰리룸 벽돌집에 비건과 논비건이라는 새로운 과제가 생겼다. 작지 않은 과제지만 우리는 이 문제를 거실에서 이야기하기 보다는 각자의 방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쨌든 도고도 나도 채식주의는 처음이었으니까.


 우리는 서로 맞춰 사는 가족이나 부부가 아니니까 이런 면에서는 자유로웠다. 서로의 생활을 받아들이지는 않더라도 이해하는 것. 그거면 우리는 같이 살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채식주의자와 함께 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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