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A.V. Club』에서 영화 〈엘리자베스타운〉(2005)을 리뷰하면서 영화 평론가인 네이선 라빈(Nathan Rabin)은 여주인공 커스틴 던스트의 캐릭터 클레어를 "매닉 픽시 드림 걸 (Manic Pixie Dream Girl, 꿈꾸는 조증 요정)"타입이라 이름을 붙이고 다음과 같은 정의를 내렸다.
이들은 "피상적이게 발랄한 영화 속 생물로 예민한 시나리오 작가/감독의 상상 속에 존재하며, 감성에 젖은 젊은 남성들에게 삶의 무한한 신비로움을 받아들이고 모험을 떠나라는 메시지를 전달" 한다.
사실 이 클리셰 자체가 이렇게 입에 착착 붙는 이름만 없었다 뿐이지 시대적으로도 항상, 지형적으로도 모든 곳에 존재는 해왔다. 개인적으로는 우디 알렌의 클래식 작품인 〈애니 홀〉(1977)에서 다이앤 키튼이 그려낸 4차원 꿈 많은 아가씨 캐릭터에서 이러한 느낌을 강하게 받았고, 한편으로 처음 이 평론을 읽었을 "당시" 충무로에서 최강희 배우가 받는 타입캐스팅이, 그리고 구혜선 배우가 대중문화 전반에서 드러내는 인물상이 떠올랐다.
당연한 얘기지만 네이선 라빈이 이 캐릭터 타입을 정의한 이유는 존재에 대한 비판이었다. 정확히 어떠한 이유에서 기인한 지에 대해서는 조금 더 연구가 필요하지만, 2000년대 초반 할리우드에서는 매년 이러한 형태의 캐릭터가 비슷한 유형의 영화에서 튀어나왔다.
이 모든 캐릭터들을 하나의 카테고리에 분류함은 문제가 있으나(특히 〈이터널 선샤인〉의 클레멘타인 같은 경우는 이 캐릭터의 안티테제에 가까우며, 〈500일의 썸머〉에서는 클로이 모레츠가 이 타입에 대해 날이 선 비판을 하고, 영화 자체가 MPDG에 대한 경고로 읽힐 수도 있다), 적어도 그 당시에는 이러한 인물 타입이 유행하고 있었음은 사실이며, 〈엘리자베스타운〉에서 클레어(커스틴 던스트)가 이러한 캐릭터가 가질 수 있는 병폐를 종합적으로 보여준 묘사도 해당 단어의 유행에 일조했다 생각한다.
미국 영화 평론계에서도 매닉 픽시 드림 걸, 짧게 줄여서 MPDG는 몹시 입에 감기는 유행어였던지라 네이선 라빈의 첫 사용 이후 『A.V.Club』, 『Filmspotting』 등 다양한 매체에서 해당 콘셉트를 (반은 장난, 반은 비판의 목적으로) 집중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500일의 썸머〉로 유명해지고 있던 조이 데이셔넬은 이 캐릭터 그 자체라 평가받았다. 데이셔넬은 이 캐릭터 타입에 대해서 복잡한 심경을 드러내 왔는데, 재미있게도, 현재 TV 드라마인 〈뉴걸〉에서 MPDG를 매우 영리하게 패러디한 캐릭터를 연기하여 대호평을 받고 있다.
2.MPDG라는 캐릭터 타입이 왜 문제인가
MPDG의 문제는 실제로 존재하는 여성상이라기보다는 자의식을 찾는 여행을 떠나는 남자의 캐릭터 발전을 위한 일종의 무대적 장치(set piece) 이상으로 성장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보통 이러한 캐릭터들이 가지고 있는 모습인 당당하고 발랄한 모습에 가려져 무언가 주도적인 캐릭터로 해석되기 쉽지만, 이는 대단히 성차별적인 시선으로 해석한 21세기 버전 우렁각시, 야마토 나데시코와도 일맥상통한다. 해당 캐릭터의 존재 이유가 본인의 행복, 또는 욕구의 충족이 아니라 주인공인 남성이 삶에 대해 배워가는 과정의 일부분으로 전락되기 때문이다.
영국의 평론지인 『뉴스테이츠맨』에 기고한 칼럼에서 유명 페미니스트 작가 로리 페니(Laurie Penny)는 MPDG의 문제는 이러한 캐릭터 타입이 관객들, 특히 어린아이들에게 "남자는 자신의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여자는 타인의 삶의 조연 여배우가 될 수 있다 (Men grow up expecting to be the hero of their own story. Women grow up expecting to be the supporting actress in somebody else's.)" 생각하도록 만들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 평가했다. 사실 MPDG같은 캐릭터 및 해석 자체는 그다지 새롭지 않지만, 페니는 MPDG가 특히 위험한 이유는 대다수의 여자 아이들에게 훨씬 접근성이 높으며, 언뜻 보면 성차별이라 느낄 수 없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라 말한다.
이 캐릭터들은 본인의 감정을 드러내는데 거리낌이 없으며, 자신에게 성격적으로, 인간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사실 또한 인지하고 살아간다. 또한 사회에서 여성에게 강요하는 미의 기준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스타일을 정립하고, 그 또한 매력으로 여긴다. 이러한 특성들은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남자 주인공이 구출하는 금발 글래머 여주인공에 지친 여성들에게 창작물에서 본인을 투영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준다.
라빈은 첫 기고 이후 MPDG의 정의가 대중에게 받아들여지는 과정을 보며 처음에는 창작물에 만연한 4차원 여성 스테레오타입의 문제를 매닉 픽시 드림 걸이라는 입에 착착 감기는 정의를 통해 드러낼 수 있어서 자랑스러웠다 말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단어가 온라인 영화 커뮤니티에서, 타 비평가들의 입에서, 사용되는 상황을 보면서 무언가 잘못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루비 스팍스(조 카잔), 〈루비 스팍스〉(2012)
2012년 〈루비 스팍스 (Ruby Sparks)〉의 각본을 쓰고 직접 여주인공으로 출연한 조 카잔은 『벌처』와의 인터뷰 중 본인의 캐릭터가 MPDG 타입이 아니냐고 질문을 받았을 때, "그 단어 자체가 여성혐오(misogynist)스럽다 생각한다"고 대답했으며, 추후에도 "그 단어를 좋아하지 않으며, 단어 자체가 실제 그렇지 않은 캐릭터들까지 모두 삼켜버린 괴물처럼 변했다"라고 의견을 표했다. 어느새 사회 현상이 되어버렸다.
라빈 또한 다이앤 키튼이 연기한 애니 홀처럼 복잡한 캐릭터가 MPDG라는 레이블을 받는 현상은 부당하다 설명하며, 그 단어의 용도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고, 단어를 만들어냈음에 대해 사과했다.
이 과정은 미국의 영화 비평 씬에서 국지적으로 일어난 작은 사건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큰 시사점이 있다 생각하며, 어떻게 보면 현재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간 기준으로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회현상들과도 연결고리가 있다 생각한다.
라빈이 처음 MPDG라는 캐릭터 타입을 정의 내린 이유는 그러한 캐릭터 타입에 대한 비판이었으며, 그러한 캐릭터의 존재가 팝컬처의 창작물 전반적으로 만연한 수동적인 여성상에 대한 경고였다. 즉, 태생 자체가 페미니즘에 대한 옹호에서 기인했다. 하지만 정의가 내려진 순간부터 MPDG라는 '콘셉트', '아이디어'는 라빈의 손을 벗어나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 되었다. 그리고 그 정의는 지속적으로 간단해지고 포함하는 범위를 넓혀가며, 4차원에 발랄한 모든 캐릭터는 MPDG라는 레이블 아래 도매금 되었고, 조금이라도 주장이 강하거나 머리 색깔이 이상한 여자는 '4차원 콘셉트, 매닉 픽시 드림 걸' 타입으로 분류된다. 라빈은 이에 그 콘셉트를 만들어내지 말았어야 한다고 후회하고 있으며, 이제는 모두가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라고 말했다.
MPDG라는 콘셉트가 규명되고, 정의가 내려지고, 인구에 회자되고, 본질이 가진 악영향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기까지 7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MPDG라는 콘셉트 자체는 다른 '여성 타입', '남성 타입'을 희화화 하는 유행어들이 지닌 혐오의 정도와 비교하자면 그렇게 독성이 심한 편은 아니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 말을 만들어낸 인물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사람들이 모두 왜 문제가 있는지에 대해 심도 깊은 고민을 하고 문제 제기를 하는 일련의 과정은 대단히 건강하다 보이며,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쓰는 유행어들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는지에 대한 경고라 생각된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던 조 카잔은 『벌처』와의 인터뷰에서 MPDG라는 콘셉트가 가진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해 대단히 정확하게 진단했다. "그 단어는 여성의 특성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되지만, 실제로는 여성을 바라보는 남성들을, 그리고 그 남성들이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을 반영한다 생각해요."
길게 돌아왔지만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간단히 정리해보면, 어떠한 단어가 사용대상이 아니라 사용자의 특성의 문제점을 비추는 시점이 아마 그 단어를 그만 사용해야 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