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단편 「종이 동물원」을 통해 문학사 처음으로 3대 사변소설 상이라고 할 수 있는 휴고상, 네뷸러상, 세계 판타지상을 모두 수상하며 3관왕에 오른 괴물 신인 켄 리우의 글을 읽다 보면,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작가가 소처럼 우직하게 일하는 모습이 놀랍기만 하다. 같은 중국계 미국인이자 단편으로 유명한 테드 창과 비교를 많이 당하는데,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테드 창이 내가 읽고 싶은 단편소설의 작가라면, 켄 리우는 내가 쓰고 싶은 단편소설의 작가라고 평하고 싶다.
동명의 단편을 포함한 단편소설집 『종이 동물원』 이후 출간된 작가의 장편 소설 데뷔작 《민들레 왕조 연대기》 1부 『제왕의 위엄』 또한 재미있게 읽었지만, 아무래도 『초한지』를 기반으로 한 작품이다 보니, 해당 역사가 잘 알려진 동양권에서는 이야기의 전개가 어느 정도 예측이 된다.또한 지극히 개인적인 버릇일 수도 있지만 소설을 읽다가도 등장인물과 실제 인물을 비교하면서 읽게 되어, 서사를 파편적으로 경험하게 되고, 결국 오롯이 작품만으로 평가하기가 난감한 면이 있었다. 때문에 켄 리우의 새로운 단편 소설을 더욱 기다리게 되었다.
『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는, 동명의 영문 단편집 전체를 번역한 『종이 동물원』과는 달리, 한국에서만 번역된 단편집이다. 미국에서는 2020년 출판된 단편집 『The Hidden Girl and Other Stories』에 실린 《싱귤래리티 3부작》과 아직 다른 단편집에 포함이 되지 않은 몇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두 단편집의 내용이 겹침에도 불구하고, 영문 단편집보다 더 몰입해서 읽었다. 책을 덮고 나서 왜 그런지 고민을 해 보았는데, 작가가 다루는 주제를 크게 '기술과 인간성', '아시안-아메리칸의 이중 정체성'이라고 정리해보면, '이중 정체성' 주제의 작품들은 묘하게 영어보다 한국어가 더 어울린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켄 리우 (출처: The New York Times)
어쩌면 한국어가 한자 문화권에 속해 있기에 켄 리우가 사용하는 여러 중국어 단어와 개념이 직관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일 수도 있고, 독자 본인이 미국에서 성장기와 사회 초년 생활까지 살아가며, 켄 리우의 인물들과 유사한 경험을 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러한 면에서 켄 리우의 소설은 독자에게 무척 개인적으로 다가온다. 켄 리우는 머리말에서 “인간이라는 종(種)은 기본적으로 이야기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도록 진화했다”라고 설명하는데, 그의 소설을 읽다 보면 어둑한 공허 속에 부유하는 개념처럼 간직하고 있었던 개인적인 경험들이 어느 정도에 위치하는지 좌표를 찍을 수 있는 느낌이다.
『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에서 가장 흥미진진하게 읽었던 「모든 맛을 한 그릇에 - 군신 관우의 아메리카 정착기」가 바로 이러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북미의 대륙철도의 선로를 깔기 위해 아이다호까지 온 중국인 노동자들의 이민 수난사를 무대로, 삼국시대, 청나라 말기를 종횡무진하는 이 작품은 역사 교과서, 또는 1800년대 인구 조사 자료에만 남아있는 무미건조한 숫자에 서사가 부여되었을 때, 어떠한 작용을 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누군가는 "1870년 아이다호 인구의 28.5%는 중국계였다"라는 통계 자료를 읽으면, 단순히 역사에 존재하는 숫자로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켄 리우는 중국인 이민자들을 중심으로 한 서부시대 드라마를 만들고, 두 문화가 공존하고 소통하는 방법을 그려낸다. 그가 머리말에서 언급한 내용을 어느 순간 피부로 이해하게 된다. 우리는 이야기를 통해 세계를 이해한다.
《싱귤래리티 3부작》은 인간이 의식을 데이터화 시켜서 어떠한 가상공간에서 살아가는 미래를 그려본다. 처음으로 그 실험을 진행한 개발자를 주인공으로 한 1부, 마지막까지 인간의 형태를 지키기 위해 저항하는 인간을 주인공으로 한 2부, 그리고 데이터화 된 의식이 낳은 가상인간 2세를 주인공으로 한 3부 모두 인간성이 무엇인지에 대해 독특한 상상을 하는데, 3부의 제목이 바로 단편집 전체의 제목이기도 한 「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였다.
3부의 마지막 부분에서, 주인공은 시카고의 스카이라인이 변하는 과정을 고속으로 돌려 보게 되는데, 크라이슬러 빌딩이 "차례로 바뀌는 계절과 함께 천천히 휘어서 기울어" 가고 결국 "빌딩의 위쪽 절반이 추락하여 굉음과 함께 무너져 가는 광경을 본다. 끄트머리부터 부서져 가는 빙산처럼, 주위의 다른 빌딩까지 쓰러뜨리는 광경을."
인간이 사라진 세계에서 고층 건물이 풍화되어 무너지는 광경과 끄트머리부터 녹아 부서져 가는 빙산의 모습이 포개지는 이 지점이, 독자가 쓰고 싶은 소설의 형태를 간직하고 있다. 시간이라는 필연 앞에 무의미해지는 인간과 인간이 만든 피조물. 사라져 가기에 아름다운 유한의 미학. 켄 리우는 종으로서의 인류(humanity)는 정의가 무의미해지는 기술적 특이점에 도달하더라도,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인간성(humanity)이 어떠한 가치를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 몹시 낙관적인 상상을 한다. 그의 글에서 느껴지는 낭만주의는 단순한 이상주의를 넘어, 지금, 현대를 이해하고 살아갈 용기를 주는데, 이러한 온기가 바로 켄 리우의 정수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