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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bert 이홍규 Jan 29. 2022

대서사극, 소리와 격정

〈맥베스〉(1948) × 〈맥베스〉(2015) × 〈맥베스의 비극〉

[영화에 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일도, 내일도, 내일도 맥베스

데이빗 스콧 作, 〈글로브 극장에서 '윈저의 즐거운 아낙네'를 관람하는 엘리자베스 여왕〉(1840) [출처: Art UK]


셰익스피어의 매력을 이야기해보자. 다만, 지금의 여기에서 이야기를 시작하기는 어렵다. 지금, 여기는 잠시 후 돌아올 예정이니, 잠깐 '르네상스'라 불리던 16세기의 유럽으로 이동해보자.


16세기 말, 17세기 초, 엘리자베스 1세 국왕의 치세 하에 유럽 최강국의 반열에 오른 잉글랜드의 수도, 런던. 도시를 가로지르는 템즈 강의 남쪽, 서더크라고 불리는 지역구에 글로브 극장이 있었다. 이 극장은 당시 영국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왕립극단(King's Men)'의 전용 공연장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이들은 극단의 대표 작가이자 배우 중 한 명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무대에 올리며 사회의 모든 계층에게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다.


물론, 처음부터 '왕립극단'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시작하지는 않았다. 1594년, 당시 왕가의 유흥 및 문화활동을 주관하는 궁내부 장관(Lord Chamberlain) 헨리 캐리 남작에 의해 구성된 이 극단은 후원자에 걸맞은 '궁내부 장관 극단(Lord Chamberlain's Men)'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됐다. 작품성과 인기를 인정받아 5년 후인 1599년에는 아예 글로브 극장의 전용 사용권을 따내게 되었고, 1603년, 엘리자베스 1세 국왕의 사후에 왕위에 오른 제임스 1세는 이들을 '왕립극단'으로 임명하면서, 셰익스피어의 연극들은 명실공히 잉글랜드를 대표하는 예술작품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King's Men'을 왕립극단이라고 번역하기는 했지만, 극단의 이름은 '왕의 남자'라고 직역함이 더 어울릴 수도 있다. 당시 연극판에는 남성 배우들만을 기용해 여성 배역까지 연기하는 관례가 있었기 때문에, 극단이라 하면 보통 남자 배우들의 모임이었다.


여기까지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단 하나도 논하지 않았지만, 이미 우리는 대중문화에 유명한 작품 몇 개를 떠올리게 된다. 당장, '킹스맨'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마크 밀러의 코믹북, 그에 기반한 매튜 본 감독의 영화 프랜차이즈, 남성 배우들만이 존재하던 무대 위, 남장을 한 여성 배우의 은밀한 사랑을 상상해 묘사해낸 존 매든 감독의 〈셰익스피어 인 러브〉(1998), 그리고 남성 배우들로 이루어진 극단과 그들을 후원하는 왕 사이 금단의 관계를 묘사한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2005).


하지만, 셰익스피어의 작품 외부의 특징에서 영감을 받은 영화들보다는, 셰익스피어가 공연을 했을 17세기 초반 당시 무대를 조금 더 시각적으로 상상해보자. 혹시 상상이 어렵다면, 위에서 언급한 〈셰익스피어 인 러브〉, 또는 셰익스피어 네트워크에서 4K 화질로 리마스터해 유튜브에 업로드한 로렌스 올리비에의 〈헨리 5세〉(1944)의 초반부를 관람해도 좋다. 심지어 대사가 이해되지 않아도 크게 상관이 없다. 배우들이 소화해내는 대사들의 운율, 사이에 들려오는 각운, 기발한 대사의 위트에 놀라워하거나, 우스꽝스러운 상황에 배를 잡고 웃는 관객들의 떠들썩한 모습을 보자. 우리는 이러한 광경을 현대에도 본 적이 있다.


헨리 5세(로렌스 올리비에), 〈헨리 5세〉(1944) [출처: YouTube @ Shakespeare Network]


가장 접근성이 높은 비교 대상은 디즈니+에서 서비스 중인 린 마누엘 미란다의 〈해밀턴〉(2020)이다. 미국의 건국이라는 고루한 역사를 힙합과 랩을 포함한 현대의 팝 음악의 문법으로 변주해, 3시간에 가까운 공연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관객을 홀리고 몰아치는 이 뮤지컬은 21세기 브로드웨이와 공연계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자리매김했다.


형식만이 아니다. 집필 계기에도 지나간 역사의 재해석을 통해, 역사와 작품을 관통해 현대인에게도 밀접한 주제를 재조명하려는 시도가 존재한다. 2015년 오프 브로드웨이와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한 〈해밀턴〉 뮤지컬은 작품이 그려내고 있는 실제 역사와는 약 2세기 정도의 시간 간격을 두고 있음에도, 미국 건국 당시의 정당 정치와 현대 미국 정치-사회에서 양극화되고 있는 양당체제의 유사성을 포착해낸다. 셰익스피어의 〈헨리 5세〉의 초연은 1599년으로, 실제 작품이 그려내고 있는 아쟁쿠르 전투가 일어난 1415년과도 2세기에 가까운 거리감이 존재한다. 하지만 작품 내에서 묘사되는 훌륭한 지도력의 소유자지만, 왕위를 찬탈했기에 분리된 국가의 왕으로 남고만 헨리 4세와, 시련을 이겨내고 국가를 하나로 봉합한 헨리 5세의 복잡한 부자 관계는, 종교 분쟁과 가톨릭 탄압으로 인해 잉글랜드 역사에 길이 남을 치세에도 불구하고 흠결이 생긴 엘리자베스 1세 국왕과, 브리튼 역사상 처음으로 잉글랜드-스코틀랜드 통합 국왕으로 왕위에 오른 제임스 1세의 관계와 닮아있다.


작품의 집필 과정은 어떠한가. 지금은 마치 성경과도 같은 경건함과 함께 논의되는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이지만, 그의 활동 당시에는 현대의 무대 예술작품처럼 지속해서 수정되고 발전되는 과정을 겪었다.


〈해밀턴〉이 브로드웨이에 데뷔하기 무려 7년 전인 2009년, 〈인 더 하이츠〉의 작가이자, '프리스타일 러브 슈프림'이라는 임프로브 랩 그룹의 단장이었던 린 마누엘 미란다는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던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백악관의 연례행사 '시, 음악과 말의 밤'에서 공연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그는 당시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다소 저평가를 받고 있던 알렉산더 해밀턴에 대한 음악 프로젝트 작업을 시작하고 있었는데, 여기서 추후 〈해밀턴〉의 오프닝넘버가 될 'Alexander Hamilton'을 공연한다.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한 관객들의 폭발스런 반응에 미란다는 6년 동안 〈해밀턴〉 뮤지컬에 본격 착수했고, 작품은 백악관 초연과 같은 워크숍을 통해 점차 발전되었다. 워크숍 스테이지 와중에 'John Trumbull'이나 'Let It Go'와 같은 넘버들이 사라졌고,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브로드웨이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많은 곡에 들어 있었던 비속어들이 삭제되기도 했다. 미란다 본인이 〈해밀턴〉의 작가이자 주연이라는 사실도 관객의 반응에 기민하게 대응해 가며 작품을 발전시키는데 기여했으리라.


백악관에서 'Alexander Hamilton'을 공연하는 린 마누엘 미란다 (2009) [출처: YouTube @ The Obama White House]


셰익스피어 생전에 발행된 대본집인 쿼토(quarto, 4절판)와, 1616년에 그가 세상을 떠난 후 7년 후인 1623년에 퍼스트 폴리오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작품 전집을 비교해보면, 그가 개별 작품에 어떠한 수정을 가했는지 추측을 해 볼 수 있다. 당장 그의 최고 작품 중 하나로 평가되고는 하는 『햄릿에서, 가장 유명한 대사인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만 해도 퍼스트 폴리오 이전 두 가지의 쿼토 버전이 존재한다. 셰익스피어 본인이 자신의 작품의 배우로 나섰던 기록으로 미루어보아, 아마 매일 공연마다 관객의 얼굴을 확인하고, 서재로 돌아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대사와 씬, 연출 수정에 매진했으리라는 상상도 가능하다.


그렇다면, 셰익스피어의 관객들은 어떠한 모습이었을까? 이 질문을 대답하기 위해서는 잠시 그의 사후 글로브 극장의 역사를 짚어야 한다.


왕립극단의 글로브 극장은 1599년 건립되어, 1613년 화재로 파괴되었다가, 이듬해 재건 후 1644년에 철거되기까지 그의 작품을 상영했다. 철거 이후 글로브 극장이 위치해 있던 서더크 지역에는 인근의 양조장에 글로브 극장이 있었다는 표지판만이 달랑 남아 4세기 전의 영광을 추억하고 있었다. 20세기 말, 미국 출신의 배우이자 감독인 샘 워너메이커는 미국 각지에는 글로브 극장의 레플리카가 건축되어 지역별 셰익스피어 극단의 공연장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본고장인 영국의 서더크 지역에는 글로브 극장이 없다는 현황에 개탄하면서 서더크 글로브 극장 재건 사업에 열의를 불태운다. 워너메이커와 전 세계에 펼쳐져 있는 셰익스피어 애호가들에 의해 1970년에 시작된 셰익스피어 글로브 신탁과 국제 셰익스피어 글로브 센터는 역사 사료를 기반으로 과거의 글로브 극장 디자인의 복원 및, 재건을 위한 투자를 유치했고, 1997년, 셰익스피어의 글로브(Shakespeare's Globe) 개장에 성공한다.


현대 셰익스피어의 글로브 극장은 단순히 그의 희곡 공연뿐만이 아니라 셰익스피어의 시대에 대한 귀한 자료를 제공하기도 한다. 아래의 글은, 글로브 극장의 웹사이트에서 정리한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해본 1606년의 글로브 극장 관람 경험이다.


런던에서 귀족의 시종으로 일하고 있는 우리는 그날 새벽 고용주가 교외로 사냥 여행을 떠나자, 오전부터 이미 들뜬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자유시간이 시작되자마자 거리로 뛰어나온 우리는 글로브 극장으로 향한다. 오랜만에 극장에 왔기 때문에 잠시 티켓을 구매하는 박스 오피스 앞에서 1 페니를 꺼내다가 멈칫한다. 지난번에는 가장 가격이 싼 그라운드의 입석 구역에서 관람했는데, 다른 관객들에게 떠밀리고, 바닥에서 올라오는 마늘과 맥주 냄새 때문에 극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던 기억이 떠오른다. 어차피 1 페니면 빵 한 덩이 가격, 모아 놓은 돈이 있기 때문에 오늘은 조금 더 비싼 좌석에 앉더라도 작품에 몰입하고 싶다. 1 페니를 더 내면 무대에서는 멀지만, 벤치 좌석에서 관람을 할 수 있고, 만약 2 페니를 더 내면 쿠션이 깔려 있는 좌석을 예약할 수 있다. 고민을 하다가 3 페니를 꺼내 쿠션 좌석 티켓을 구매한다. 빵 세 덩이라면, 약 하루에서 이틀 치 급여로, 굳이 따지면 소소한 사치였다.


극이 시작하기 전까지 아직 시간이 남아 있어 구내 매장으로 가서 견과류와 사과, 에일 맥주를 구매해 쿠션 좌석으로 향한다. 이미 입석 구역은 1 페니를 지불하고 들어온 노동자들로 바글바글하다. 극이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만취한 이들은 신나게 떠들고 있다. 쿠션 좌석에 앉아 견과류와 함께 맥주를 홀짝 거리며 주위를 둘러본다. 무대 위 쪽의 귀족실(Lord's Rooms)에서 한가롭게 부채를 부치는 귀족들의 얼굴을 보면서 함께 온 동료들과 어떤 귀족인지, 어떤 영지를 가지고 있는지 한담을 하거나, 지난번에 관람했던 작품의 품평을 하면서 배우들이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 시간을 때운다.


C. 월터 호지스 作, 〈1614년, 두번째 글로브 극장 내부〉(~1979) [출처: Folger Shakespeare Library]


오늘 우리가 보게 될 극은 『맥베스라고 한다. 11세기 스코틀랜드의 왕에 관한 역사극이라고 하는데, 3년 전 엘리자베스 1세 사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통합 국왕이 된 제임스 1세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고 보니, 제임스 1세는 잉글랜드의 국왕이 되기 전, 흑마법과 오컬트에 심취해서 마녀사냥을 해야 하는 이유를 논하는 『악마론(Daemonologie)을 썼다고 하지 않았던가. 배우들이 무대에 오르자, 떠들썩하던 관객들의 만담이 잦아든다. 그리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드럼 소리.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 천둥과 번개. 세 명의 기괴한 분장을 한 마녀가 무대로 오른다. 악몽에서 바로 튀어나온 듯한 그들의 모습에 마지막까지 떠들고 있던 입석 구역의 관객들도 대화를 멈추고, 침을 삼킨다….


세 명의 마녀는 맥베스와 만나기를 천명하고, 그들이 퇴장하자 노르웨이-아일랜드 연합군에 맞서 대승을 거둔 글라미스 영주 맥베스 장군의 승전보가 스코틀랜드의 국왕 던컨에게 전달된다. 세 마녀는 맥베스와 그의 심복 뱅쿠오 앞에 나타나, 맥베스가 곧 코더 영주, 그리고 스코틀랜드의 왕이 되리라 예언한다. 하지만 뱅쿠오에게는 맥베스보다 미천하지만 더 위대하고, 뱅쿠오는 왕이 되지 못하지만 그의 핏줄은 왕이 되리라 전달하고, 사라진다. 그 후, 던컨 왕이 보낸 사신에게 코더 영주가 반란을 일으켰기 때문에 그에게서 몰수한 영지를 대신 맥베스의 전공을 기리기 위하여 하사한다는 소식을 듣게 된 맥베스는 예언에 집착하기 시작한다. 결국 부인의 부추김으로 던컨 왕을 살해하고 왕에 오른 맥베스는 곧 자신과 함께 예언을 들었던 뱅쿠오의 충심에 대한 의심, 그의 자녀가 왕이 된다던 예언에 대한 번민에 휩싸인다. 암살자들을 사주해 뱅쿠오를 살해하지만, 뱅쿠오의 아들인 플리언스가 도망쳤다는 소식을 듣고는 근심에 차오른 맥베스는 다시 3명의 마녀를 찾아가고, 그들은 맥베스에게 파이프의 영주 맥더프를 조심하라, 여성에게 태어난 이는 맥베스를 죽이지 못하리라, 버넘 숲이 던시네인 언덕까지 움직이는 일이 없다면 맥베스는 무사하리라는 예언을 내린다.


예언을 들은 맥베스는 곧바로 맥더프를 암살하려 하지만, 그는 국외로 도망쳤고, 대신 그의 가족을 살해함으로 스코틀랜드 전역에 반감을 일으키게 된다. 잉글랜드로 피신해 있었던 던컨 왕의 아들 말콤과 맥더프는 잉글랜드의 도움으로 맥베스를 토벌하기 위한 군대를 일으킨다. 말콤의 군대는 버넘 숲의 나무를 베어 군인들을 나뭇가지로 위장을 시켜 맥베스가 위치해 있는 던시네인 성의 언덕까지 무사히 움직인다. 그리고 마침내 맥베스를 마주한 맥더프는 여성에게 태어난 이는 자신을 죽일 수 없다며 포효하는 스코틀랜드의 광인왕에게 자신은 태어나기 전, 어머니 배를 가르고 나왔다며 응수한다. 자신의 마지막을 예감한 맥베스는 방패를 버리고 맥더프와 필사의 전투에 임하지만, 결국 그에게 목이 잘리고 짧은 왕위를 마친다.


이제, 현대로 돌아와 보자. 셰익스피어가 세상을 떠난 지 4세기가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의 작품이 공연되고, 각색되거나, 재연되는 이유에는 당연히 작품이 가진 원초적 매력이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겠지만, 작품을 지면 상으로만 경험한다면 매력을 이해할 수 없다. 굳이 과거로 떠나, 현대의 무대와 비교를 한 이유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공연-관람을 통한 시청각 경험으로 완성된다는 명제를 세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즉,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현대에 와서 공연하고, 영상화하는 행위는, 그가 남겨놓은 최상의 재료를 가지고 각 연출가와 배우들이 각자의 완성품을 만드는 과정이다.


셰익스피어를 연출하는 방법론(혹은 관람하는 방법론)은 극을 구성하는 요소 중 세 가지 축에 집중하면 분석이 용이해지는데 바로, 시대 배경, 서사의 구조, 원본의 대사의 재연 여부이다. 예를 들자면, 『헨리아드 4부작 중 후반 3부작을 각색한 데이비드 미쇼 감독의 〈더 킹: 헨리 5세〉(2019)는 시대 배경을 살리되, 3부작을 하나의 영화로 담기 위해, 서사의 구조를 편집하거나 아예 새로운 장면을 창조했고, 원본 대사는 완전히 포기했다. 케네스 브래너 감독의 〈햄릿〉(1996)은 영화사 처음으로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 가장 긴 『햄릿을 축약하지 않고 대사를 온전히 살려 완전하게 영상화했지만, 역사 배경을 19세기의 덴마크로 옮겨 각색했다.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영화화 한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1999)는 시대 배경, 원본 대사를 모두 바꿨지만, 원본 서사를 그대로 가져오면서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현대 고등학교 배경의 로맨틱 코미디로 훌륭하게 각색해냈다.


그의 수많은 작품 중에도 유독 인기를 끄는 작품들이 있다. 2016년, 셰익스피어 사후 400년을 기념하며, 영국의 자료조사기관 YouGov에서는 그의 작품 인기 순위를 선정했는데, 1위는 『로미오와 줄리엣이었고, 2위는 맥베스였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인기 비결은 아마 그다지 설명이 필요 없을 듯 하지만, 맥베스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우뚱하는 이들도 있을 듯하다. 주인공이 영웅스럽지도 않고, 심지어 빌런이라고 불러도 모자람이 없는 불길한 피카레스크 작품이 다른 수많은 작품들을 제치고 가장 인기가 많다니. 작품을 공연할 때 워낙 사고가 많이 일어나서 "맥베스의 저주"라고 불리며 배우나 연출가들이 이름을 직접 부르기도 꺼려하기에 "스코틀랜드 연극(The Scottish Play)"라고 부른다는 작품이다. 어쩌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태양에 너무 가까이 날아 타버린 이카로스처럼, 욕망 때문에 파멸해가는 존재의 붕괴 과정에 끌리는지도 모를 일이다.


(左) 오슨 웰스 감독, 〈맥베스〉, (中) 저스틴 커젤 감독, 〈맥베스〉, (右) 조엘 코엔 감독, 〈맥베스의 비극〉[출처: WM Commons, IMP Awards]


하지만, 저주가 무색하게도, 이 작품은 큰 인기를 반영하듯 여러 번 영상화되었고, 심지어 대부분의 영화 버전이 평단에서 어느 정도 작품성을 인정받는다. 영화사를 바꿔놓은 〈시민 케인〉(1941)의 원작자이자, 미국이 배출해낸 셰익스피어 천재인 오슨 웰스의 〈맥베스〉(1948), 할리우드가 가장 사랑하는 일본 감독, 구로사와 아키라가 전국시대로 무대를 옮겨 각색한 〈거미집의 성〉(1957), 참혹한 가정사에서 비롯된 잔인한 연출로 논란을 일으킨 로만 폴란스키의 〈맥베스〉(1971),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저스틴 커젤 감독이 서부극을 연상케 하는 감성으로 연출한 〈맥베스〉(2015), 그리고, 데뷔 후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함께 작업해 왔던 조엘과 에단 코엔 형제가 잠시 개별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 작별한 후, 조엘 코엔이 처음으로 단독 연출한 〈맥베스의 비극〉(2021) 모두, 맥베스의 파멸에 대한 나름의 해석을 통해, 400년 전 만들어진 이야기를 완성해간다.


이 글에서는 『맥베스 원작이 가지고 있는 숫자 3에 대한 기묘한 집착을 단서삼아, 3명의 연출가, 오슨 웰스와 저스틴 커젤, 조엘 코엔의 『맥베스 각색을 비교해가면서 3개의 시간 축, 즉 11세기 스코틀랜드의 왕, 17세기의 극작가, 20-21세기 영상 연출가들이 대화해가는 변증법을 통해 오락과 예술 사이 어딘가 위치해있는 공연-영상의 시청각 유희의 원천을 찾아보고자 한다.


오슨 웰스, 맥베스-폴스타프

찰스 포스터 케인(오슨 웰스), 월터 파크스 대처(조지 컬러리스), 〈시민 케인〉(1941) [출처: Wikimedia Commons]


영화사에 길이 남을 롱테이크로 시작했던 〈악의 손길〉(1958) 이전, 아니, 영화사에서 가장 충격스런 데뷔작인 〈시민 케인〉(1941) 훨씬 이전, 오슨 웰스의 성장기 이야기는 마치 무협지의 주인공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파란만장하면서도 황당한 일화들을 간직하고 있다.


웰스는 9세에 모친을 여의고, 그가 15세가 되었을 때 부친도 세상을 떠났다. 그의 부친은 유서에 아들이 후견인을 직접 선택할 수 있도록 조치를 했고, 웰스는 부모의 친구였던 의사 모리스 번스타인의 보호 아래 자라게 된다. 웰스는 16세에 하버드 대학교에 장학생으로 합격 통지를 받았지만, 대학에 진학하기보다는 예술의 길을 쫓기를 원했다. 웰스는 시카고 예술대에서 몇 주 공부를 하다가, 번스타인에게 여행을 가고 싶다는 희망사항을 고백한다. 결국, 웰스와 번스타인은 사회생활 전 배낭여행이라는 낭만스런 합의에 도달했고, 16세의 웰스는 대서양을 건너 아일랜드로 향한다.


아일랜드에 도착한 웰스는 시오그(Sheeog)라고 불리는 당나귀가 끄는 마차를 타고 교외를 돌아다니며 그림을 그리는 여행을 시작했다. 그가 번스타인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낮에는 본인이 직접 "흉물"이라고 부른 수준의 풍경화를 그리고, 해가 지면 밤하늘을 이불 삼아 모닥불 옆에서 잠을 청하던 소년의 들뜬 여행을 따라갈 수 있다. 여름내 아란 군도를 비롯하여 아일랜드의 서부를 한가로이 떠돌던 웰스는 가을이 되자 문득 목가적인 전원에 질렸는지, 현대 문명사회를 찾아 더블린으로 향한다. 더블린의 게이트 극장에서 롱포드 백작의 〈멜로스의 대화〉를 관람한 웰스는 배우 중 자신이 서쪽 지방 여행 중 만났던 젊은이를 발견했고, 공연이 끝나자 백스테이지로 돌진해 그와 인사를 하면서 연출진과 배우들에게 자신을 소개했다.


16세의 오슨 웰스 [출처: Wikimedia Commons]


그의 영화를 보아도 잘 알 수 있지만, 웰스는 16세에도 퍽 인상에 남는 체구와 외모를 가지고 있었고, 게이트 극장의 창립자인 힐튼 에드워즈의 눈에 들게 된다. 웰스는 자리에서 자신이 18세이며, 뉴욕에서 잘 알려진 베테랑 배우라고 허풍을 떨면서 에드워즈의 다음 작품을 위한 오디션을 본다. 에드워즈는 추후 웰스의 말을 한마디도 믿지 않았다고 소회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구의 10대 소년에게 어떠한 불가사의한 매력, 혹은 천재성을 느꼈던지 그를 바로 주연 배우로 캐스팅한다. 약 1년간 더블린에서 배우로 활동하던 웰스는 런던으로 건너가 극장의 문을 두들기지만, 취업 허가증을 받지 못해 미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하지만 아일랜드에서 시작된 그의 예술혼은 미국에 귀국해서도 더욱 크게 불타올랐고, 18세의 나이에 여배우 버지니아 니콜슨과 결혼한 후에도 배우 활동을 이어나간다. 그는 19세에 캐서린 코넬 연출한 〈로미오와 줄리엣〉 티볼트 역할로 브로드웨이에 오르고, 배역을 통해 제작자 존 하우스먼의 눈에 띄게 된다. 이후 라디오 드라마 시리즈 등으로 명성을 올리던 그에게 하우스먼이 접촉해 온다.


1935년, 존 하우스먼은 당시 대공황으로 인하여 불황에 빠진 경제를 살리기 위한 뉴딜 정책 중, 예술계를 위한 지원인 연방극장계획(Federal Theatre Project) 산하, 뉴욕의 흑인극장단체(Negro Theatre Unit)의 책임자로 근무하고 있었다.


[참고. 시카고 대학교 여론조사센터의 단체장인 톰 스미스 교수는 흑인을 지칭하는 단어의 변화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19세기 중, 인종 분류 상 흑인을 지칭하는 단어는 유색인이라는 의미의 'Colored'가 주로 사용되고 있었다. 1920년대에 와서는 해당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유색'이라는 포괄적인 의미에서 조금 더 구체적인 '흑인'을 의미하기 위해 라틴계 언어에서 흑색을 의미하는 'Negro'라는 단어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1960년대, 미국 인권운동 시대에 'Negro'라는 단어가 노예제 시절에 흑인을 비하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비속어인 'Nigger'와 유사하다는 지적이 제기되었고, 이에 미국식 영어에서 흑색 자체를 의미하는 'Black'으로 변경되었다. 이후, 인종 관련 담화가 심화되면서, 보는 이의 피상적 이해를 돕기 위한 피부색보다는, 당시 백인들이 자신들을 지칭하던 고향-미국인 명명법(예: Italian American, Irish American)을 따라, 지역 기원성을 갖춘 'African American'의 사용이 사회 전반으로 확장되었다. 이 개념과 변화만을 논하는 정규 대학과목이 만들어질 정도로 다양한 쟁점 및 시선이 존재하기에 이 글에서는 1920년대에 정부 기관의 이름에 'Negro'라는 단어가 쓰였고, 이후 60년대 인권운동이 전국으로 확장되기 전까지도 해당 단어를 비속어로 사용하지 않았던 이들이 많았다는 역사를 언급하는 선에서 마무리한다.]


존 하우스먼은 20세의 웰스에게 덜컥 국가지원 연극의 감독을 맡기고, 패기가 넘쳤던 웰스는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19세기 아이티 공화국의 악명 높은 독재자였던 앙리 크리스토프의 궁정으로 무대를 옮겨 흑인 배우들만을 캐스팅해 각색한, 일명 〈"부두" 맥베스〉(1936)를 연출해낸다. [참고. 이 연극의 제목은 셰익스피어의 원제를 그대로 가져온 〈맥베스〉였지만, 글 내에서는 웰스의 영화 작품과 구분을 위해 〈"부두" 맥베스〉라고 표기한다.] 할렘의 라파예트 극장에서 초연한 〈"부두" 맥베스〉는 흑인 사회를 포함해 관객들로부터 큰 호평을 받았고, 심지어 전국 순회공연까지 진행되었을 정도로 인기를 끌게 된다. 약관의 나이에 웰스는 미국을 대표하는 천재 예술가로 명성을 떨친다.

 

(左) 〈"부두" 맥베스〉(1936) 공연 장면, (右) 〈"부두" 맥베스〉 초연 당시 라파예트 극장에 몰린 인파 [출처: WIkimedia Commons]


그 후 웰스의 인생은 어느 정도 유명하기 때문에 깊게 논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불과 20대 중반에 그는 데뷔작으로 〈시민 케인〉을 연출해냈지만 개봉 당시에는 흥행에서 초라한 성적을 내면서 영화계에서 입지가 좁아졌다. 이는 작품의 모델이라고 알려진 언론 재벌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가 작품이 자신의 삶을 풍자와 비판으로 연출해냈다는 이유로 펼친 방해 공작 덕분이기도 한데, 웰스는 이러한 실패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소규모의 투자를 이끌어내 영화계와 텔레비전에서 작품 활동을 지속했고, 와중에 자신에게 유명세를 안겨준 셰익스피어의 작품 〈맥베스〉(1948), 〈오셀로〉(1951), 그리고 『헨리아드 4부작을 각색한 〈심야의 종소리〉(1965)를 영상화하기도 했다.


젊은 시절부터 신동이라고 불렸던 그의 행보와, 영화사 일종의 경전으로 평가되는 〈시민 케인〉을 20대 중반의 나이에 데뷔작으로 선보였기 때문인지, 웰스는 현대에 와서는 상당히 특이한 평가를 받는 편이다. 웰스의 평전을 쓴 조너선 로젠봄은 『오슨 웰스를 발견하며』(2007)에서 이 평가를 "호전적"인 반응과 "당파적"인 반응으로 분류했다. "호전적" 반응을 가진 이들은 〈시민 케인〉을 위시한 그의 초기작을 찬양하면서도, 추후 나타날 평작 및 문제작들의 수준을 비판하고, 〈시민 케인〉도 심지어 극작가인 허먼 J. 맹키위츠의 공이 컸다고 논하는데, 이러한 반응은 할리우드에서 가장 신랄한 평론가였던 폴린 카엘부터 시작해, 최근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맹크〉(2020)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당파적" 반응을 가진 이들은 오히려 〈시민 케인〉 때문에 상대적으로 저평가받는 그의 후기작, 특히 〈악의 손길〉, 혹은 〈심야의 종소리〉를 그의 걸작으로 선정하면서, 〈시민 케인〉에 편향된 관심에 균형을 위한 반론을 제기하는 "당파적" 비평을 보인다.


오슨 웰스(톰 버크), <맹크>(2020) [출처: FILMGRAB]


이러한 경향은 오슨 웰스의 작품군과 그가 생전에 견지하고 표현해왔던 작가주의 관점이 평론가들의 삶을 쉽게 만들어주는 분류학이나 계보학에 속하기를 완강히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돌출되어 보인다. 웰스 본인은 이러한 비평 시도에 대해 코웃음을 쳤을 가능성이 높다. 『카예 뒤 시네마의 창립자인 앙드레 바쟁이 1958년 세상을 떠나기 몇 달 전, 그는 웰스와 몇 차례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그중에는 웰스가 어떤 패기로 영화 제작과 연출에 임했는지를 피상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는 문답이 있다.


『카예 뒤 시네마의 1958년 6월호에 게재된 인터뷰에서 바쟁은 당시 그가 막 제작에 착수했던 〈돈키호테〉(1992)에 대해 질문했는데, 이 작품은 1957년부터 1972년까지 간간히 촬영되다가, 웰스 사후 92년에 겨우 개봉했다. 웰스는 〈돈키호테〉를 촬영하면서도 해당 작품의 최종 형태에 대해 생각을 고쳐나갔는데, 다만 본인의 다른 작품처럼 배우로 등장해 연기를 하기보다는, 오슨 웰스라는 인간으로 등장해 내레이션을 하겠다는 연출론을 내비쳤다.


『카예』: 왜 〈돈키호테〉를 이렇게 연출하려고 하시죠?

웰스: 한 번도 안 해봤으니까요. 그게 유일한 이유입니다. 아마 이유를 만들어낼 수 있겠지요, 어떤 미학의 이유요. 영화가 이렇게 만들어져야 하고, 다르게 만들어질 수 없다, 등등. 하지만 실제 이유는 이러한 형태의 연출은 제가 한 번도 해보지 않았고, 제가 아는 한 몇 개의 무성영화가 이런 식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 (후략)


『카예』: 당신이 편집했던 〈악의 손길〉과 제작사의 최종 편집본에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웰스: 제게 '미장센(mise en scène)'이라고 불리는 대부분의 개념은 다 우스갯소리입니다. 영화계에는 진정으로 '감독(metteurs-en-scène)'이라고 불릴 만한 사람은 몇 없습니다. 정말로 연출의 모든 면을 감독할 기회를 받은 사람은 몇 없죠. 그렇기 때문에 유일하게 중요한 '미장센(mise en scène'"은 편집에서 일어납니다. 저는 〈시민 케인〉을 편집하기 위해 9개월 동안 1주에 6일을 편집실에서 보냈습니다. 물론, 심지어 제가 촬영하지 않은 씬들도 있는 〈위대한 앰버슨 가〉(1942)를 편집하기도 했지요- 제 편집이 수정되기는 했지만요. 하지만 기본 편집은 제가 했고, 만약 작품의 한 씬이 성립하고 있다면, 이유는 제가 편집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어떠한 사람이 그림을 그리는 행위와 같습니다. 그림을 완성하고 나면 다른 사람이 와서 어느 정도 마감을 하겠지만, 캔버스 위에 페인트를 덧그릴 수는 없죠. 결국 제작사에서 편집권을 회수해가기는 했지만, 그전에 저는 〈위대한 앰버슨 가〉를 편집하려고 수개월을 투자했습니다. 은막 위에서 상영되는 영상은 제 작품이죠. 제 스타일에 따르면, 제가 바라보는 영화에서는, 편집은 영화의 일부가 아니라, 영화의 전부입니다. 연출은 당신 같은 사람들이 창조해낸 개념입니다. 그건 예술이 아닙니다. 혹은, 하루의 1분 정도만 예술로 기능하고는 합니다. 물론 1분도 몹시 중요하지만, 1분은 드물게 찾아옵니다. 창작자가 영화를 완전히 통제할 수 있는 순간은 편집뿐입니다. … (후략)


[역주. 미장센이라는 단어를 반복하지만, 처음의 미장센은 비평선에서 씬 내부의 구성을 의미하기 위해 사용되는 고유명사처럼, 두 번째 미장센은 '무대(영화 전체) 내의 (개별 씬과 숏) 배치'라는 개념으로 보인다.]


바쟁을 바로 앞에 두고 『카예 뒤 시네마의 작가주의 영화(auteur cinema)가 바쟁과 누벨바그 아이들이 만들어낸 인공 개념이라 주장한 웰스는 (바쟁은 꽤 기뻐하지 않았을까 싶다) 같은 인터뷰에서 본인이 18.5 렌즈를 사용하는 유일한 이유는 남들이 안 해서 그렇다고 대답하면서, 이는 반대를 위한 반대는 아니라고 응답한다. 오히려, '점령되어 있지 않은 공간에서 결과를 창조하고 싶다'라는 개척정신이 담긴 포부를 비춘다.


바쟁이 쓴 오슨 웰스의 평전에는 해당 인터뷰가 출판된 6월호 이후, 바로 다음 달 웰스와 진행한 인터뷰가 게재되어 있다.


바쟁: 인터뷰 마지막으로, 당신이 좋아하는 감독들 몇 명을 이야기해주실 수 있을까요?

웰스: 제 대답을 좋아하지 않을 듯한데요, 왜냐면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영화계에서 지식층이라고 불리지 않거든요. … (중략) … 제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은 비토리오 데 시카입니다. 아마 당신은 저를 가엽게 바라보겠지요. 존 포드도 좋아합니다. 하지만, 20년 전의 존 포드를 좋아하고, 12년 전의 데 시카를 좋아합니다. … (후략)


바쟁: 그렇다면 당신은 '자수성가형 카메라맨'입니까?

웰스: 제가 다른 사람의 영향을 감내했던 유일한 순간이 있습니다. 〈시민 케인〉을 촬영하기 전, 〈역마차〉(1939)를 40번 관람했습니다. 제가 필요했던 예시는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하던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던 사람이었죠. 의도상으로는 존 포드가 완벽했습니다. … (후략)


오슨 웰스에 대한 계보학이 큰 의미가 없고, 아직도 그에 대한 전기가 출간되는 이유는, 그가 적극적으로 과거의 답보를 기피했으며, 도전적으로 분류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웰스는 어떠한 선구자라거나, 인도자가 되기를 원하지도 않았다. 단지, 남들이 해보지 않은 연출, 미증유의 결과를 도출하고 싶어 했다. 아무도 하지 않거나 가지 않으려는 지점에서 연출론을 고민한 웰스는 때문에 몹시 본능적인 창작자이자 예술가였다. 보고 배울만한 족보가 없는데 본능이 아니면 어디에 의지한단 말인가.


그래서 웰스의 인생은 본인이 만들어낸 작품들과 경계선이 희미하고, 그의 삶을 볼 수록 시답잖은 감탄사를 내뱉을 수밖에 없다.


(左) 맥베스(오슨 웰스), 〈맥베스〉(1948), (右) 폴스타프(오슨 웰스), 〈심야의 종소리〉(1965) [출처: FILMGRAB]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전위적으로 각색한 〈"부두" 맥베스〉로 미국 공연예술계의 신동으로 데뷔한 오슨 웰스가, 자신의 야망만을 쫓다가 어느덧 모두에게 버림받고 B급 영화와 광고를 전전하며 할리우드의 시니컬한 농담 소재로 전락해버린 후, 셰익스피어의 『헨리아드에서 왕자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가 버림받는 폴스타프를 연기한 〈심야의 종소리〉로 후기 영화 인생 최고의 역작을 선보였다는 행보는, 우화적이라거나 시적이라는 수식어가 부끄러워질 정도로 기가 막힌 인생이다.


폴린 카엘은 웰스의 〈심야의 종소리〉를 평론하며 글을 쓰던 당시, 그랜드 센트럴 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면서 주워들은, 곁에 있던 어린 흑인 소녀가 대화 중 외친 표현을 인용했고, 결국 평론의 제목으로 사용되었다. "까고 있네! (There ain't no way!)" 그렇다면 이 글에서는, 맥베스처럼 살아가다가 폴스타프처럼 죽어간 웰스에 대해서, 최동훈 감독의 〈타짜〉(2006)에 등장한, 평경장(백윤식)의 죽음에 대한 아귀(김윤석)의 한 줄 평을 인용하고 싶다.


그 양반 갈 때도 아주 예술로 가는구먼

성직자(앨런 네이피어), 〈맥베스〉(1948) [출처: FILMGRAB]


셰익스피어의 『맥베스 원작과 익숙하지 않은 관객이라면 알아차리기 어렵지만, 오슨 웰스의 〈맥베스〉는 원작에 비교해 상당한 각색이 가미되었다. 어느 정도냐면, 1930년대, 인권 운동의 바람이 불기 훨씬 30년도 전인 세계 대공황 시절, 20대 중반의 나이로 흑인 배우로만 이루어진 〈"부두" 맥베스〉를 연출해 흥행시켰던 젊은이의 패기로 가능한 정도의 각색이다. 물론, 웰스가 셰익스피어의 대사에 손을 봤다는 의미는 아니다.


앞서 정리한 셰익스피어 작품의 연출 및 각색 방법론으로 보자면, 시대 배경과 서사 구조, 대사 모두 살려낸 모범적이고 '고증에 충실'한 작품으로 볼 수 있겠지만, 고증에 있어 다소 음험한 구석이 존재한다. 이 글에서 '음험'은 악의적 평가라기보다는, 보는 이가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구렁이 담 넘어가듯 미묘하게 형태와 메시지가 변한다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그는 서사의 구조는 그대로 살렸지만, 대사의 순서를 변경하면서 자신이 생각하기에 현대인이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극을 재구성했다. 그리고, 시대 배경에 있어 만연한 형태의 고증을 시도했다. 이 고증은 11세기를 배경으로 한 작품의 역사성에 대한 추적으로 시작하지만, 어느 순간, 1940년대의 창작자 오슨 웰스의 고백으로 변화하는데, 바로 이 음험하고 만연한 변화야말로 본 작품에 깃들여진, '신동' 오슨 웰스의 재간이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이다.


현대에 와서는 (아마 17세기 이후로는) 비극의 주인공으로 더욱 유명한 맥베스지만, 셰익스피어는 홀린셰드 연대기에 실려있는 실존인물 '막 베하드'라는 이름을 가진 스코틀랜드 왕의 전기에서 영감을 받아 작품을 집필했다. 막 베하드는 11세기 초반에 극의 내용대로 선왕 돈카드(던컨)를 살해하고 왕위에 올랐다. 하지만 막 베하드의 이야기 전에 잠깐 역사 배경을 살펴보자. 막 베하드가 활동하기 약 2세기 전, 9세기 초반 잉글랜드 남부의 웨식스 왕국의 국왕 알프레드 대왕은 브리튼 전역을 뒤덮고 있었던 바이킹 군대인 이교도 대군세(Great Heathen Army)를 잉글랜드 전역에서 몰아내는 데 성공했고 (참고로 이 시기를 다룬 작품은 버나드 콘웰의 색슨 이야기 시리즈, 이를 기반으로 한 TV 시리즈 〈라스트 킹덤〉과 히스토리 채널의 TV 시리즈 〈바이킹스〉가 유명하다), 브리튼 제도에 데인로(Danelaw) 지역을 확립해 바이킹 왕국을 건국하려던 북유럽 인들은 점차 브리튼의 북방으로 통치 영토를 축소해갔다.


막 베하드의 시대인 11세기에 와서는 바이킹 지도 하에 놓여있었던 지역은 극소수에 불과했고, 지역에 남아있던 북유럽 인들이라고 해봤자, 지난 2세기간 현지인들과 융합이 되었다고 보아도 무방한 수준이었다. 이 시기에는 바이킹들의 본진인 북유럽에도 종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 막 베하드의 바로 전 세대인 10세기 말, 덴마크와 노르웨이의 왕인 하랄 1세 블로탄이 기독교를 받아들이면서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각지에도 가톨릭 교회가 건립되었다.


[사족. 하랄 1세의 이명인 '블로탄'은 워낙 블루베리를 좋아해 이가 파랗게 물들었다는 일화에서 기인한 '푸른 치아'를 의미하는데, 그의 사후 약 1천 년이 지나서, 1997년, 하랄 1세를 소설의 등장인물로 각색한 스웨덴 작가 프란스 벵트손의 역사 소설 『붉은 옴 (Röde Orm)(1943)을 읽고 있던 스벤 마티손이라는 프로그래머는 동료인 짐 카다크에게 소설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추천했다. 카다크는 얼마 되지 않아 하랄 1세의 비석을 역사서에서 보고는 어떤 이유에선가 우연이 기억에 남았는지, 당시 자신이 개발하고 있던 기술의 코드네임으로 하랄 1세의 이명을 인용한다. '푸른 치아'라는 의미를 가진 블루투스였다.]


웰스는 단순히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영상화하는 시도로 만족할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이미 극의 지역, 시대 무대를 완전히 옮기고 대사를 그대로 살려낸 〈"부두" 맥베스〉를 통해 셰익스피어의 보편성을 증명해낸 웰스는 영상화에 있어서는 대사를 각색하더라도, 지역-시대 무대, 정확히는 시대의 역사 시사성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때문에, 이 작품이 셰익스피어의 원작과 가장 커다란 차이를 보이는 부분은, 영화 중간 성 미카엘의 기도를 올리는 성직자의 등장인데, 웰스 본인은 후에 이 작품의 목적에 있어 구시대와 신시대의 종교 간 마찰에 집중했다고 이야기했다. 웰스는 3명의 마녀들을 토착종교, 스코틀랜드 켈트족 신앙의 드루이드(샤먼)로 이해했고, 이들이 극 중 보이는 행동을 유럽의 끝, 브리튼의 북쪽 땅까지 확장한 기독교세에 대한 저항으로 해석했다. 성직자가 이끄는 성 미카엘의 기도 장면은 영화의 시작과 끝에 위치한 마녀의 의식과 완전히 반대되는 분위기로, 영화 내 종교전쟁의 구도를 조성한다. 이러한 구도는, 영화 후반부 (마녀의 축복을 받은) 맥베스가 쓰는 왕관과 악마의 뿔의 유사성, 그를 토벌하기 위해 말콤과 맥더프가 이끄는 군대가 십자가를 들고 돌진하는 연출로 인해 더욱 강화되기도 한다.


맥베스(오슨 웰스), 〈맥베스〉(1948) [출처: FILMGRAB]


오슨 웰스 외에도 『맥베스를 토착종교와 기독교 간의 세력 다툼으로 해석한 창작자가 있다. 스코틀랜드의 국민작가인 도로시 더넷은 곧 도래할 왕 (King Hereafter)(1976)에서 맥베스와 동시대 인물인 바이킹 계열 오크니 백작 '힘이 센' 토르핀(Thorfinn the Mighty)과 맥베스가 동일한 인물이라는 대담무쌍한 가설을 바탕으로 역사 상 맥베스의 인생을 소설화했다. 이 작품에서 더넷은 스코틀랜드인 맥베스이자 바이킹 영주 토르핀을 한 명의 인물로 설정함으로, 게르만 신앙과 기독교 간의 충돌을 다루기도 한다. 물론 웰스의 작품이 더넷의 작품보다 약 30년 일찍 공개되었고, 토착종교가 켈트 계열인지 게르만 계열인지 세부적 차이는 존재하지만, 이러한 해석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역사 문맥 안에서 검토해보면서, 현대에 미치는 시사성을 탐구한다. 더넷의 작품은 『맥베스의 대사를 제목으로 인용한 소설이지만, 웰스의 〈맥베스〉는 원작의 대사와 서사를 거의 그대로 사용했음에도, 몇 개의 수정만으로 작품에 완전히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하지만, 단순히 이 각색만으로 웰스를 음험하다 부르고 싶지 않다.


영화는 3명의 마녀가 맥베스를 상징하는 듯한 작은 점토 인형을 만들면서 시작된다. 원작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 부두 인형은 바로 관객에게 두 개의 다른 상상을 떠올리게 만든다. 영화 외적으로는 웰스 본인을 유명하게 만든 〈"부두" 맥베스〉와의 연결성이 자리를 잡고, 작품 내적으로는 맥베스에게 곧 일어날 파멸의 원인에 있어 맥베스 본인이 예언을 듣고 내리는 잘못된 선택의 결과보다, 그에게 실제로 악의가 서려있는 저주가 걸리면서 일어났다는, 통제 불가능한 상황을 암시한다.


점토로 만든 부두 인형, 〈맥베스〉(1948) [출처: FILMGRAB]


부두 인형의 등장은 이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 맥베스가, 단순히 주인공 맥베스일 뿐만이 아니라, 〈"부두" 맥베스〉를 창작한 오슨 웰스라는 20세기의 창작자임을 명시한다. 현대 연기 이론을 정립한 콘스탄틴 스타니슬랍스키의 시스템을 할리우드에 도입했던 리 스트라스버그가 주창한 "연기를 하는 인간은 (배역의) 삶을 살아가는 인간이어야 한다"는 명제에 날리는 조소가 아닌가. 웰스는 극의 시작부터 '이 작품은 오슨 웰스가 재해석한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다'라고 선언을 한다.


한편 이 부두 인형의 등장은, 맥베스의 비극이 어디서 기원하는지에 대한 해묵은 질문을 순식간에 일소한다. 분명 원작 『맥베스의 매력은 그의  파멸을 노래한 마녀의 예언이, 과연 일어날 미래를 알려주었을 뿐인지, 아니면, 그를 들었기 때문에 자기실현의 예언으로 작용하였는지에 대한, 미래 인지의 숙명적이고 모순에 가득찬 고민이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극의 시작부터 (심지어 제목 화면이 등장하기 전부터) 부두 인형이 등장한다면 원작의 서사를 이끌어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 질문 자체가 무용해진다. 당연히 맥베스 본인의 통제를 벗어난 주술 섞인 저주가, 웰스가 한정된 예산과 23일이라는 빠듯한 촬영 기간 내 세트장으로 재창조해낸 영화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그는 짧은 촬영 기간 내 이 복잡한 작품을 완성해내기 위해서 원작에서 가장 중요한 독백을 후반 작업에서 더빙을 하는 등, 영화를 완성하기 위해 타협과 희생이라는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그렇다면, 〈"부두" 맥베스〉로 할리우드의 젊은 영웅으로 데뷔한 웰스가, 〈시민 케인〉의 개봉 이후 〈위대한 앰버슨 가〉의 최종 편집권을 잃게 되면서 자신이 원하지 않았던 형태로 영화를 공개하게 되고, 당시 부인이었던 리타 헤이워드와 함께 주연을 했음에도 결국 감독권과 편집권을 잃은 〈상하이에서 온 여인〉(1947)을 공개한 이후, 자신을 신동으로 떠받들었던 세계의 영화 수도가 자신을 내팽개치고 있다는, 일련의 저주와 같은 감정을 느꼈다고 추측해 본다면 확장해석일까. 바쟁이 인터뷰에서 〈상하이에서 온 여인〉에 대해 질문하자, 웰스는 "제작 과정 모든 상황에서 내 손에서 폭력적으로 강탈당한 작품이다"라고 일축한다. 그렇다면 바로 이듬해에 개봉한 〈맥베스〉에 웰스가 지난 7년간 느껴왔던,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시대 비극이 반영되었다고 읽어볼 만하다고 주장하고 싶다.


웰스가 연출하고 연기한 맥베스는 두 종교의 거대한 세력 싸움 사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는 악마의 저주에 사로잡힌 채로 극을 시작하지만, 성직자의 기도에 무릎을 꿇는다. 하지만 마녀의 저주는 그의 머리에 왕관을 선사하자마자 그를 빼앗으려 하고, 한때 그의 동료였던 장군들은 십자가를 들고 그의 목을 노린다. 만약 이 인물을 〈"부두" 맥베스〉를 연출한 오슨 웰스가 연기하는 맥베스로 인지한다면, 이 작품은 본인이 영화계에서 당하는 대우를 역사 배경을 차용해 연출한 자조적이고 냉소가 섞인 농담이다. 왜냐면, 바쟁과의 인터뷰에서 여러 번 내비쳤듯이, 웰스는 자의로 영상예술의 전인미답 지역을 찾아 나섰고, 그런 창작자가 모두에게 내쳐진 결과는 굳이 '저주'라거나 '비극'과 같은 주술 섞인 이유를 들어 부연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맥베스〉에는, 창작자 본인은 자신의 의도로 인하여 놓인 처지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음에도, 극 내에서 배우를 지배하는 저주라는 주술적이고 통제 불가능한 상황으로 연출을 하면서, '알지만 어쩔 수 없다'라고 어깨를 으쓱 올려 보이는 완고한 천재의 반응이 담겨있다.


하지만, 웰스의 〈맥베스〉가 음험한 이유는 지극히 자기의식적이면서도, 같은 수준으로 자기기만적이기 때문만도 아니다.


웰스의 〈맥베스〉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아마 원작 1막 7장부터 2막 4장까지의 내용을 10분이 넘는 롱테이크로 촬영한 숏이 아닐까 생각된다. 원작에서 암살 계획의 순서는 던컨 왕이 저녁을 먹고 침실에서 곯아떨어진 상황을 확인한 맥베스 부인이 남편에게 알리자, 맥베스가 마지막 순간에 주저하고, 그런 남편을 힐난하는 부인, 그리고 부인의 종용에 못 이겨 던컨 왕의 침실로 다가가는 맥베스가 "단검의 환영"을 보는 독백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웰스는 "단검의 환영"을 가장 먼저 배치하고, 그로 인하여 맥베스가 암살 계획에 주저하도록 순서를 바꾸어 이후에 남편을 힐난하는 맥베스 부인(지네트 놀란), 그리고 암살을 하고 나오는 맥베스가 다음 날 아침 성으로 들어오는 맥더프(댄 오헐리히)와 조우하는 순간 까지를 하나의 긴 롱테이크로 촬영한다.


맥베스(오슨 웰스), 〈맥베스〉(1948) [출처: FILMGRAB]


바로 이 부분이 웰스의 천재적인 음험함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지점이다. 화면 상의 시간 흐름과 실제 시간의 시간 흐름이 어긋나면서 조성되는 위화감, 원작의 순서를 뒤바꾸고, 원작의 씬을 이어버리거나, 시간축을 흔들어버린다. 바로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재구성하는 그의 방약무인한 태도, 원작 대하는 경건한 존중심은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선포하는 대범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창작과 연출, 편집에 대한 거침없는 자신감이 오슨 웰스의 〈맥베스〉 전반을 지배하고 있다.


이 세계는 닫힌 세계다. 심지어 토착종교와 기독교의 갈등과 같은 배경 장치마저도 역사 고증을 위해 쓰이고 있지 않다. 카메라 밖의 현실 세계와 연결되는 유일한 통로는 웰스가 연기하는 맥베스 본인이다. 바깥의 세계가 예술가에게 존재가치의 당위성을 물어오자, 질문이 던져지는 순간 대답을 위해 임의로 성립된 세계다. 이렇게 거대하고 확신으로 가득 찬 대답이 또 있을까.


망설임 없이 원작을 뒤섞고, 대사를 삭제하거나, 씬을 들어내면서 질주해가는 〈맥베스〉를, 혹은, 17년 후 개봉할 〈심야의 종소리〉에서 셰익스피어의 역사극 『헨리아드 4부작을 하나의 영상 작품으로 편집해 자신의 인생 역정을 이야기하는 풍선처럼 살이 찐 웰스의 모습을 보고 있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감탄사를 내뱉는다. '그 양반 살아도 아주 예술로 산다'라고.


저스틴 커젤, 오스트레일리아-스코틀랜드

저스틴 커젤 감독 [출처: MIFF]


영화인에게 있어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연출하겠다는 결정은 일종의 선언이다. 로열 셰익스피어 극단 출신으로, 셰익스피어 연출과 연기에 있어서는 존 길구드와 로렌스 올리비에의 계보를 잇는다고 평가되는 케네스 브래너 마저도 〈헨리 5세〉(1989)와 〈헛소동〉(1993)을 흥행시키는 데 성공했지만, 이후의 작품들은 대부분 박스오피스에서 참패하였다. 즉, 21세기에 와서 셰익스피어 극을 영상화한다는 의미는 흥행에 대한 기대를 어느 정도 접고, 그에 따라 함께 줄어든 한정된 예산과 자원 안에서, 자신의 연출력을 한계까지 밀어붙인다는, 감독(과 제작진)의 외로운 도전처럼 보이기도 한다.


당장 오슨 웰스만 하더라도 연극계와 라디오계에서 셰익스피어 연출로 대중의 인기를 구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로 〈맥베스〉와 〈오셀로〉, 〈심야의 종소리〉를 제작하기 위한 투자 유치와 예산에 고생을 했다. 〈맥베스〉는 23일 안에 촬영을 끝내야 했고, 〈오셀로〉는 3년이란 시간 동안 뜨문뜨문 기회가 될 때마다 투자를 유치해가며 촬영했다. 〈심야의 종소리〉의 촬영을 위해서는 스페인 출신의 제작자에게 루이스 스티븐슨의 『보물섬』을 연출하면서 남는 예산으로 〈심야의 종소리〉를 만들겠다고 거짓말을 해야 했다.


[사족. 웰스는 제작자를 속여가며 결국 『보물섬을 연출하지 않았지만, 몇 년 후, 천연덕스럽게도 다른 감독의 영화 〈보물섬〉(1972)에 롱 존 실버로 출연하게 된다.]


저스틴 커젤 감독은 오스트레일리아 남부에서 일어난 실제 살인사건을 주제로 한 트루 크라임 〈스노우타운〉(2011)으로 장편영화에 데뷔했고, 미국과 유럽에서는 독립영화로 제한 개봉을 하면서 흥행에서는 재미를 보지 못했으나, 깐느 영화제를 비롯해 오스트레일리아의 각종 인디 영화제에서 상을 휩쓸면서 소기의 비평적 성공을 거두었다. 2015년, 〈맥베스〉 개봉 후 진행한 『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커젤은 〈스노우타운〉 촬영에 돌입하기 직전 자신의 부친이 세상에 떠났던 비화 및, 데뷔작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18개월 동안 차기작으로 기획했던 스릴러 영화가 투자 유치에 실패했던 상황을 회상한다. 그때 영화제에서 〈스노우타운〉을 인상 깊게 보고 커젤과 교류를 나누었던 배우 마이클 패스벤더가 〈맥베스〉(2015) 연출직을 제안하고, 커젤은 데뷔작에서 협업했던 오스트레일리아의 젊은 촬영감독 애덤 아카파우와 함께 제작에 착수했다.


아카파우는 〈스노우타운〉에서 오스트레일리아 남부의 한적하고 지루해 보이는 지역 환경에서 일어나는 끔찍한 살인사건을 담담하게 카메라에 담아내면서 자국의 각종 영화제 촬영상 후보에 올랐다. 흥미롭게도 아카파우는 똑같이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인 데이비드 미쇼 감독의 트루 크라임 〈애니멀 킹덤〉(2010)으로 장편영화 촬영감독에 데뷔했고, 이듬해에는 커젤 감독의 트루 크라임  〈스노우타운〉을 작업한 이후, 4년 만에 〈맥베스〉로 커젤과 재회한 상황이었는데, 다시 4년 이후에는 미쇼 감독과 재회해 셰익스피어의 《헨리아드》 시리즈를 각색한 〈더 킹: 헨리 5세〉(2019)를 촬영한다. 이로써 2010년 이후 데뷔해 전 세계 영화팬들에게 큰 인상을 남긴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두 젊은 감독과 트루크라임과 셰익스피어를 한 번씩 작업해보았다는 독특한 이력을 가지게 되었다.


커젤과 아카파우 파트너십이 두 작품에서 공통으로 다루고 있는 주제가 있다면 장소, 혹은 더 넓은 의미의 지역과 환경이 인물에게 미치는 영향이다. 〈스노우타운〉은 개봉 이후 『오스트레일리아 인문학 리뷰 (AHR)와 같은 학술지면을 통해 시드니나 멜버른과는 달리, 발전과 개발에서 소외된 아델라이데 지역 특유의 무기력하고 척박한 환경이 어떻게 극도로 폭력적이고 반사회적인 사건을 조장했는지에 대한 사회 질문을 던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커젤 감독은 다양한 인터뷰에서 〈맥베스〉를 꼭 스코틀랜드에서 로케이션 촬영을 하고 싶었다고 밝히면서, 영화에 담긴 장소, 나아가서는 카메라가 위치한 장소에 천착하는 연출론을 드러낸다.


더 나아가서, 연출의 기원을 장소에 두는듯한 감상까지 든다. 커젤 감독이 아카파우 촬영감독과 마이클 패스벤더, 마리온 코티야르 두 주연배우와 협업을 이어간 차기작인 〈어쌔신 크리드〉(2016)는 원작이 된 비디오 게임 특유의 애니머스 설정(현대에서 자신의 조상이 경험한 과거를 가상현실로 재생하는 기계기술) 때문에 영화에서도 현대와 과거를 정신없이 오가는데, 존재하지 않는 현대의 장소에서 존재하지 않는 과거의 장소를 구현해낸다는, 맹렬하게 비-장소적인 설정 때문인지 〈맥베스〉에 대한 호평이 무안해질 만큼 심난한 작품을 연출해버렸다. 이후 심기일전해 연출한 〈켈리 갱〉(2019)을 통해 오스트레일리아의 황야(아웃백), 나아가서는 장편영화 자체의 기원성에 대한 고민을 담은 포스트모던-펑크 역사극을 선보인 행보로 보아, 커젤 감독의 영화는 장소, 더 정확히는 실재하는 지역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지 않나 짐작된다. 커젤 감독은 다양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맥베스〉를 연출하기 위해 스코틀랜드라는 장소가 왜 중요했는지를 여러 번 강조하고, 땅의 거친 모양새가 어떻게 코맥 매카시의 소설 작품에 등장하는 미국 남서부의 황야와 유사하게 폭력성을 조장하는지를 논한다.


(左) 〈스노우타운〉(2011), (中) 〈어쌔씬 크리드〉(2016), (右) 〈켈리 갱〉(2019) [출처: IMP Awards]


『덴오브긱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그는 카메라와 배우들이 위치한 장소가 어떻게 인물을 조형하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라이언 램비, 『덴오브긱』: 셰익스피어 영화는 어떨 때는 친밀하고 아늑하게 느껴집니다. 이미 내용을 알고 있고, 학교에서 교육받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당신의 〈맥베스〉는 시각, 연기가 모두 강렬합니다. 중요하게 생각한 설정인가요?

커젤: 그런 듯합니다. 제가 본 『맥베스』의 연출 작품은 대부분 거리감이 느껴집니다. 보이는 형태에 있어 인조 무대 위에 있는 경우가 많고 때문에 몇몇 작품에는 감정 몰입하기 힘들었습니다. … (중략) … 그래서 친밀감 구현, 예컨대 어떻게 관객을 사로잡을 수 있을지에 집중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 (중략) … 그리고 이는 인물 묘사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제가 영화를 스코틀랜드에서 촬영하기로 결정하고, 지역의 풍경을 영화 안에 담자, 배경이 인물의 심리 변화에 맥락으로 작용하는 형태가 흥미로웠습니다.


『더 가디언의 대니 리와 진행한 인터뷰에서는 마리옹 코티야르가 스카이 섬에서 촬영하던 중 늪지에 빠지고, 강풍에 촬영 스태프가 날아갈 뻔한 일을 회상하기도 한다.


커젤: 혹독한 환경이었습니다. 하지만, 저 개인에게는 익숙한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백인으로 살아간다는 경험은 자신이 정복할 수 없는 광활한 환경에 매몰되어 있는 상황인데, 때문에 항상 두려움을 느끼게 되죠. 산 한가운데서 실종되거나, 어느 순간 땅으로 꺼지지 않을까 상상을 하고는 합니다. 그리고 비슷한 경험을 스코틀랜드에서 했습니다.


『인디와이어와의 인터뷰에서는 스코틀랜드의 척박함을 담아내는 장소성이 연극과는 달리, 영화 〈맥베스〉를 지배하는 주술 섞인 분위기를 조성하는지 논하기도 한다.


나이젤 M. 스미스, 『인디와이어』: 큰 규모의 영화를 짧은 기간 내 촬영했습니다. 심지어 야외 촬영이 대부분입니다. 혹시 만드는 과정이 지옥 같았나요?

커젤: … (전략) … 이 작품을 영화로 연출하고, 스코틀랜드 현지에서 촬영하는 과정의 미학이 있습니다. 관객은 두려운 풍경을 보면서 실제로 주술 사건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믿게 되지요.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인 저는 여기에 큰 관심이 있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도 광활함과 척박함에 있어 스코틀랜드에 뒤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환경은 무척 매력적입니다. 환경이 어떻게 인물을 형성하는지 생각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커젤 감독의 〈맥베스〉를 논하기 위해서는 연극이 아닌 영화로 기능하는 맥베스, 무대나 작품의 미신 섞인 명칭이 아닌 현실에 존재하는 공간 배경으로의 스코틀랜드, 그리고 임의가 아니라 구체적이고 명료하게 촬영 장소로 실재하는 스코틀랜드에서 시작함이 마땅해 보인다. 장소성과 어울리는 원작 『맥베스의 대사, 그리고 묘하게도 커젤이 본인의 〈맥베스〉 영화에서 대담하게 잘라내 버린 대사가 떠오른다.


사악한 무언가 이 길로 오네

장례식,〈맥베스〉(2015) [출처: FILMGRAB]


저스틴 커젤 감독이 원작 『맥베스를 각색한 방법은 명대사라고 여겨지는 다양한 대사들을 잘라버린 축약뿐만이 아니다. 그는 안 그래도 셰익스피어 작품 중 가장 짧은 축에 속하는 『맥베스의 대사를 잘라버리면서까지, 본인의 새로운 설정을 영화에 추가한다. 심지어, 영화 자체가 원작에 존재하지 않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영화는 소년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어린아이의 장례식과 함께 시작된다. 비탄에 찬 맥베스 부인(마리옹 코티야르)이 다가가 아이 가슴 위에 꽃을 올리고, 곧이어 맥베스(마이클 패스벤더)가 아이의 눈에 돌을 올려놓으면서 맥베스 부부의 아이임이 암시된다. 평온해 보이는 아이의 얼굴에는 외상, 혹은 사고의 흔적이 없다. 아마, 스코틀랜드의 추운 겨울을 이겨내지 못하고 죽지 않았을까 추측할 뿐이다.


시체가 올려진 단상에 불이 붙자, 멀리서 광경을 바라보는 세 명의 여인이 카메라에 담긴다. 이들은 오슨 웰스의 〈맥베스〉(1948)의 마녀들과는 달리, 평범한 스코틀랜드 여인처럼 보이며, 맥베스를 위한 기묘한 예언도 건조한 목소리로 읊조린다. 여기서부터 셰익스피어의 『맥베스가 시작된다. 화면이 암전 되고, 검은 배경에 피로 쓴 듯한 붉은색의 글씨가 스크롤업 되면서 스코틀랜드의 내전 및, 맥베스의 활약을 간단히 설명하고, 글씨와 같은 붉은색으로 물든 스코틀랜드의 풍경을 배경으로 한 인물이 서 있는 숏이 글씨를 따라 스크롤업 되고, 곧 바람이 안개를 밀어내는 높은 산을 담은 풍경 숏으로 두 번 컷 전환한다.


노르웨이-아일랜드 연합군의 전투를 앞두고, 전쟁터가 될 안개가 자욱한 평원으로 스코틀랜드 전사들과 맥베스, 뱅쿠오(패디 콘시딘)가 담담하게 걸어 들어온다. 이들은 오슨 웰스의 〈맥베스〉에서 그려졌던, 우르르 몰려다니는 인간의 형상을 한 무대장치에 가까운 군인들도 아니지만, 한편, 멜 깁슨의 〈브레이브 하트〉(1995)에서 묘사되는 용맹하고 호전스런 전사들도 아니다. 많아봐야 약 40-50명 정도 되어 보이는 베테랑 전사들은 추위에 코를 훌쩍이며 부들부들 떠는 젊은 스코틀랜드 전사들과 만나 전투를 앞둔 준비를 돕는다. 최근에 아이를 잃은 맥베스는 한 무명의 젊은 병사의 얼굴에 전투 화장을 바르며 부성애가 섞인 희미한 미소를 짓는다. 이 모든 과정에는 곧 다가올 전투를 위한 응원, 의도적 호기가 모두 생략되어 있다. 단순히, 당연히 겪어야 할 삶의 한 과정과도 같다. 영화가 시작되면서 보았던, 스코틀랜드라는 지역에서 살아간다는 행위만큼이나 자연스럽고 무의식에 기반한 행동이다. 적군을 마주하고, 돌격하기 직전의 고취를 위한 연설도 없다. 전투에 돌입하기 직전 한번 크게 함성을 지르고, 돌진한다.


스코틀랜드 - 노르웨이-아일랜드 연합군 전투, 〈맥베스〉(2015) [출처: FILMGRAB]


두 군대가 부딪히기 직전까지의 모습을 와이드 앵글로 담은 슬로 모션과 실제 속도의 액션을 교차로 편집한 스코틀랜드 대 노르웨이-아일랜드 연합군의 전투는 두 개의 시간축, 그리고 양 군대가 충돌하는 순간까지 긴장감을 팽팽하게 당긴다. 군대가 서로와 마주치는 순간, 무기끼리 부딪히는 금속 마찰음, 무기가 가죽 갑옷을 짓이기는 둔탁한 충돌음, 죽어가는 이들의 신음, 아직 죽지 않은 이들의 함성 굉음을 포함한 오만가지 소음이 합주를 시작한다. 피아를 구분할 수 없는 전쟁터에서 이들을 이끄는 본능은 원인을 찾기 힘든 분노뿐이다. 이 스코틀랜드 병사들의 분노가 적을 향해 있는지, 아니면 세상의 끝에 태어나 생명을 무심하게 유린해가는 자연을 향해 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전투가 끝나고, 맥베스는 자신이 돕던 젊은 병사의 시체를 바라보며 허무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본다.


곧 씬이 전환되면서 원작의 1막 2장, 즉 던컨 왕(데이비드 듈리스)에게 전투의 결과를 보고하러 온 전령의 등장으로 이어지고, 이후부터 커젤의 〈맥베스〉는 원작과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서사를 전개한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만약 원작을 무대에서 관람한 이들이 있다면 어떤 위화감을 느낄 수 있는 각색들이 존재한다.


예를 들면, 원작에서는 독백으로 명시되어 있는 대사들을, 실제 배우가 연기하는 환영에게 말을 걸도록 연출한 결정이다. 예컨대, 2막 1장에서 "단검의 환영 (Dagger of the Mind)"을 보는 맥베스의 독백은 직전의 전투에서 사망한 젊은 스코틀랜드 병사(스콧 그리넌)가 들고 있는 형태로 연출된다. 단순히 병사를 자리에 세워둠으로 독백의 대상으로 설정하는데 그치지 않고, 맥베스는 화면 위 실물성이 존재하는 환영에게 다가가 손을 들어 그를 만지려 하고 가까이서 병사의 눈을 바라보며 말을 건다. 그런가 하면, 5막 1장에서 이미 광기에 정신이 나가버린 남편과 함께, 본인도 정신착란을 보이는 맥베스 부인이 자신의 손에 묻었던 피를 상상하며 소리치는 "사라져라, 빌어먹을 얼룩아! (Out, damned spot!)" 독백은 영화의 처음 시체로 등장했던 죽은 아들의 환영에게 말을 거는 형태로로 연출이 된다.


맥베스와 부인을 상징하는 독백이, 그들이 스코틀랜드에게 잃은 자식, 혹은 자식과 같은 인물의 물질적(corporeal) 환영에게 건네는 허망한 고백으로 연출된 각색은, 가만히 살펴보면 커젤 감독이 그려내는 세계가 스코틀랜드여야만 한다는 초기의 명제와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 영화 내내 스코틀랜드의 무심하고 광활한 자연 풍광이 지속해서 카메라에 담기면서, 커젤 감독은 이 작품에서 카메라 밖의 세계가 실재하고, 세계가 관객이 사는 세계임을 주지 시킨다. 커젤 감독은 『인디와이어와의 인터뷰에서 맥베스의 영화 제작, 즉 연극 무대 바깥으로 이동과, 무대를 현실의 스코틀랜드로 지정한, 두 개 결정에 일련의 의미를 부여하는 듯한 대답을 했는데, 이는 촬영 장소에 관계없이, 편집실을 미장센이 완성되는 위치로 생각한 오슨 웰스의 〈맥베스〉와 상극이라고 부를 수 있는 지점에서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바라보고 있는 시선이다. 과장을 섞어서 말하면, 커젤 감독은 스코틀랜드라는 실제 장소 자체를 공동 연출가로 인정하는 어조로 장소의 물질성에 의미를 둔다.


그런데 더욱 흥미로운 부분은, 웰스와 커젤 감독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에서 내린 상반된 연출 결정이다. 웰스는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차용하여 예술가가 그를 상대하는 세계에 맞서 당도한 교착 상태와 그로 인한 점진적 파멸을 그렸고,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이렇게 지극히 개인적인 예술론을 펼치기 위하여 도용하는 형태는 추후 리어왕을 각색하여 연출한 구로사와 아키라의 〈란〉(1985), 장 뤽 고다르의 〈리어왕〉(1987)에서도 이어지기도 했다. 커젤 감독도 인터뷰 등지에서 〈스노우타운〉 촬영 직전 부친을 떠나보냈던 경험이 본인의 〈맥베스〉의 각색 방향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고백하며, 작품 내 맥베스와 맥베스 부인의 행동은 혈육의 상실이라는 기원을 통해 해석할 수 있다는 요지의 대답을 한다. 그와 함께, 오스트레일리아 남부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시골 동네인 골러에서 태어나 대자연이 얼마나 살벌할 수 있는지 피부로 느껴온 커젤의 성장 배경이 존재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웰스의 〈맥베스〉는 닫혀 있는 세계로, 커젤의 〈맥베스〉는 열려 있는 세계로 환원되면서 영화를 구축해간다.


맥베스(마이클 패스벤더), 〈맥베스〉(2015) [출처: FILMGRAB]


커젤의 〈맥베스〉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이라면 아마 던시네인으로 넘어오는 버넘 숲의 연출 방법이 아닐까 생각된다. 웰스의 버넘 숲 이동은 웰스의 닫힌 세계 안에서는 가까스로 용인이 가능한 수준으로 연출이 되었고, 구로사와 아키라의 〈거미집의 성〉에서는 자욱한 안개를 뚫고 숲이 움직여 성 앞으로 다가오는, 눈으로 보고 있음에도 인지를 거부하는 장엄한 규모의 신화적 이동으로 현실 세계에 주술이 존재한다 믿고 싶어지는 장면을 화면에 담아냈다. 커젤 감독은 숲을 움직이는 대신, 말콤과 맥더프가 버넘 숲에 불을 질러 화염과 연기가 던시네인 언덕을 뒤덮는 각색을 선보였고, 이 연출 결정은 많은 평론가들에게 영리하면서도 시각적으로 몹시 인상 깊은 영상을 만들어냈다는 평을 받는다. 숲의 나무를 모조리 베어 병사들이 나뭇가지를 들고 움직이는 연출과 비교했을 때, 불을 지르는 방화 전술이 더욱 현실적으로 버넘 숲이 던시네인으로 이동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 씬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단순히 창의적 변주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맥베스의 광기로 인하여 불과 피로 젖어가는 스코틀랜드를 시각적이고 직관적으로 표현했고, 그와 동시에 붉은 세상이라는 초현실의 분위기로 인하여, 지금까지 담담하게 연출해왔기에 진위를 판단하기 어려웠던 마녀의 저주가 현실과 혼재되는, 마술적 사실주의 효과를 함께 구현해냈다.


하지만, 커젤의 〈맥베스〉의 스코틀랜드를 붉게 물들인 이 화염에 대해 조금 더 깊게 생각을 했던 계기는 영화 개봉 후 약 4년이 지난 2019-2020년, 오스트레일리아를 뒤덮은 산불 때문이었다. 화마는 오스트레일리아 전역을 종말론을 연상케 하는 적색으로 물들였고, 광경을 뉴스를 통해 목도하면서, 코로나바이러스-19와 더불어 세상이 어느덧 멸망을 향해 가고 있지 않나 하는, 다분히 미신 섞인 의심이 자리 잡음을 느낄 수 있었다. 실제로도, 2020년 오스트레일리아 전역을 뒤덮은 산불 이후로, 재난에 가까운 환경에 매일같이 노출되고 있는 국민들의 정신 피로도에 대한 경고가 주류 언론을 통해 공론화되기도 했다. 『타임의 제이미 두샴은 2014년 학술 논문을 인용하면서, 173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2009년 '검은 토요일' 산불 이후, 산불이 발생한 지역의 인구 중 15%에 달하는 응답자가 불에 관한 PTSD를, 13%는 우울증을, 25%에 가까운 응답자는 알코올 의존증을 호소했다고 밝혔다.


2019-2020 오스트레일리아 밀림 산불 [출처: Wikimedia Commons]


과거에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보편적인 이유는, 즉 웰스가 같은 『맥베스로 19세기의 아이티 독재자, 20세기의 고집불통 천재 예술가의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기본적으로 닫혀있는 구조, 외부와 독립된 에코스피어와 같은 자생이 가능한 생태계이기 때문이 아닐까 고민해본 적이 있다. 다시 말하면, 『맥베스가 스코틀랜드가 아니라, 전국시대 일본이라도 같은 수준의 감정 공명을 일으키는 데 성공하는 이유는, 작품이 성립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재료가 이미 작품 내 준비되어 있다는, 프로그래밍적으로 부트스트래핑(bootstrapping)이 가능한 작품이라는 의미다.


그런데 커젤의 〈맥베스〉는, 미신이 도사리는 비이성적인 기원의 원작을, 무대 외부, 실재하는 스코틀랜드에 배치함으로, 카메라 바깥의 세계를 인식하고, 인지하며, 적극적으로 세계의 징후를 수용하고 있다. 영화를 먼저 만들기 시작하고 과정에서 영화의 완성형을 찾아가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때문에, 무대의 밖, 카메라 외부에, 관객이 직접 방문할 수 있고, 만져볼 수 있는 이성 세계의 스코틀랜드가 존재함에도, 이 작품에 일렁이는 묵시록의 주술을 구현해낸 결과물은, 실제 부두 인형을 등장시켰던 웰스의 맥베스보다 더욱 도취적인 종교 체험을 제공한다. 피와 화염으로 뒤덮인 위험하고 척박한 세상을 둘러보니, 왠지 사악한 무언가가 이곳을 향해 스멀스멀 다가오고 있다고 믿고 싶어 진다.


조엘 코엔, 영화-연극

2007년 칸 영화제, 에단 코엔, 조엘 코엔 [출처: Wikimedia Commons]


코엔 형제가 장편 영화 〈블러드 심플〉(1984)로 데뷔 후, 37년 만에 처음으로 조엘 코엔은 영화 연출을 계속하고, 에단 코엔은 연극 무대로 향해 각자의 독자의 예술 활동을 시작한다고 발표했을 때, 머릿속에 가장 처음 떠오른 생각은 뜬금없게도 "그러면 위키피디아나 『브리태니커 페이지는 어떻게 하지"라는, 다소 실없는 질문이었다. 아니, 추가로 부연하자면, 굳이 백과사전이 아니더라도, 워낙 코엔 형제와 그들의 작품 세계를 좋아하는지라, 그들에 관한 기사나 감독론을 자주 찾아 읽어보고는 하는데, 보통 둘의 활동을 별도로 표기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이 상황이 종종 기이하게 느껴졌다. 분명히 두 사람인데 하나의 개체로 취급받는다는, 굳이 따지자면 백과사전의 편집 철학, 분류학 혹은 범주화에 속하는 질문이었는데, 추측을 해보자면 두 사람을 분리해서 정의할 경우, 중복되는 항목이 많아서라는 어떤 편의상의 이유가 아닌가 싶었다.


이 쓸데없는 의문점에 매몰되어 가면서, 만약 둘의 항목을 분리한다면 어떠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코엔 형제 항목에 둘의 34년의 협업 작품 목록을 관통하는 어떠한 연출 경향이 있다면 아마 세간에서 자주 회자되는 키워드인 데드팬 유머, 블랙 코미디라던가, 부조리극처럼 느껴지는 인물 간의 심리적 부정 교합이 심화되면서 신체 폭력으로 심화되는 과정, 2000년부터 시작된 조지 클루니 어릿광대 만들기 프로젝트 등이 포함될 듯하다. 그리고, 2021년 이전에는, 둘의 개별 항목에는 각각의 가정사 정도와, 굳이 왜 초기 영화에서는 조엘 코엔이 감독으로, 에단 코엔이 제작자로 기재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을 기재하지 않을까. 그리고, 〈맥베스의 비극〉은 두 형제의 작품 목록 중, 조엘 코엔의 항목에만 등재되는 첫 번째 영화가 될 터이다.


조엘 코엔, 프란시스 맥도맨드, 〈맥베스의 비극〉(2021) [출처: Alison Rosa/Courtesy of Apple]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맥베스의 비극〉을 관람하기 전, 잠깐 묘한 호기심이 들었다. 코엔 형제의 작품을 경외하는 애호가 입장으로, 조엘 코엔이 창작자로 처음으로 단독 연출한 본 작품에 대해 '이 작품이 무엇이냐'라는 질문보다 오히려 '이 작품이 무엇이 아니냐'라고 물어보면서, 이 전의 작품까지, 조엘과 에단이 담당하던 역할을 분리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이런 생각을 하면 영화를 제대로 즐길 수 없기에, 최대한 이전 작품과의 비교를 하지 않고, 화면에 집중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런데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문득 그런데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가 아닌가라는 깨달음이 도래했고, 심지어, 그의 작품 중 가장 영상화가 많이 되었고, 개별 영상 작품들의 평가가 후한 편인 『맥베스 각색이다. 셰익스피어 원작을 기반으로 한 작품을 온전히 작품으로만 관람한다는 명제가 가능하기나 한지, 이상한 자승자박에 빠져버렸다.


일종의 역설이다. '조엘 코엔이 처음으로 연출한 작품으로 (에단과는 구분되는) 그만의 특색을 찾아볼 수 있다'와,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과거의 모든 영상 작품에게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는다'라는 두 명제는, 코엔 형제 영화들의 계기가 되는 부정교합처럼 미묘하게 어긋나 있다. 『더 가디언의 피터 브래드쇼와의 인터뷰에서 조엘 코엔은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해 모두 답한다.


피터 브래드쇼, 『더 가디언』: 어떤 이유로 『맥베스』를 연출하기로 결정했나요?

조엘 코엔: 과거 프란(조엘 코엔의 부인인 프란시스 맥도맨드)은 뉴욕 연극계에게 셰익스피어 연극에 적합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평가가 바뀌었습니다. 프란이 제게 혹시 연극 무대에서 맥베스를 연출해볼 의향이 있냐고 물어봤고, 저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대답했지요. 그래서, 프란은 저 없이 혼자서 출연을 하기로 했습니다. 약 7, 8년 전, 샌프란시스코에서 배우 콘리스 힐, 대단한 감독 댄 설리번과 함께 맥베스 부인을 연기했죠. 작품을 관람하고서, 그녀에게 아마 『맥베스』는 영화로 만들 수 있을 듯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조엘 코엔: 셰익스피어 작품은 많이 읽었고, 다양한 연출작을 봤습니다- 로렌스 올리비에의 작품들이나, 오슨 웰스의 〈심야의 종소리〉를 포함해서요.


피터 브래드쇼, 『더 가디언』: 이 모든 과정을 에단 코엔 없이 진행한 경험은 어땠나요?

조엘 코엔: 이상한 기분입니다. 보고 싶었고요. 아마 그 정도가 아닐까 싶네요. 당연히 보고 싶죠. 35년이 넘게 함께 작업을 했고, 만약 세트장에서 문제가 있다면, 가장 먼저 서로를 바라보았지요. 하지만, 이 영화는 에단의 관심을 끌만한 작품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이 작품에 개인적인 관심이 있었고, 에단은 없었지요.


그러니까, 만약 조엘 코엔의 개인 백과사전 항목이 생성된다면, '2020년대 이후 활동' 아래 쓰일만한 '조엘 코엔은 60대 중반의 나이에 연극계로 떠난 에단 코엔과 독립하여, 첫 홀로서기를 위해, 셰익스피어라는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 아마 역사상 가장 유명한 연극이라고 부를만한 『맥베스를 원작으로 한 영화를 연출했다'라는 명제에는, 코엔 형제의 지난 영화에서 익숙하게 찾아볼 수 있는 잠재적인 역설이 숨어있다. 그리고, 이는 원작 『맥베스를 지배하는 불길한 기운의 재료 중 하나인 역설에 대한 집착과 묘한 대칭을 이루고 있다.


소리와 격정으로 가득 차, 아무런 의미도 없네

마녀(캐스린 헌터), 〈맥베스의 비극〉(2021) [출처: YouTube @ Apple TV]


『맥베스는 글로만 읽어도 인상적이다. 사람마다 『맥베스를 좋아하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마녀의 대사의 역설적인 표현들이 자아내는 불안함, 그리고 이 비논리의 명제들이 맥베스의 행적을 지배하게 되는 대사와 극의 구조의 통일은 보편적으로 포함되지 않을까 싶다. 저주를 들어서 맥베스가 파멸에 이르렀는지, 파멸로 달리는 맥베스에게 다가올 미래를 이야기해주었는지, '달걀이 먼저인가 닭이 먼저인가'라는 작품을 관통하는 질문이, 마녀의 입을 통해 매번 다른 형태로 반복되면서 역설이 강화되는 서사에는 눈을 뗄 수 없는 기묘한 매력이 있다.


조엘 코엔의 〈맥베스의 비극〉은 연극무대의 조명등이 켜지는 듯한 효과음과 함께 시작되면서, 판화를 연상케 하는 흑백의 화면에 선과 면으로만 이루어진 기하학의 세트만을 사용해 맥베스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프로덕션 디자이너인 스테판 데샹이 구축한 세트는 20세기 초반에 셰익스피어 연극 무대 미술로 유명했던 에드워드 고든 크레이그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는데, 크레이그는 단순화된 천막과 조명, 선과 면, 명암등을 사용해 배경을 추상화시켜 꿈의 일부처럼 보이는 연출 효과로 유명했다. 코엔과 데샹, 그리고 촬영감독 브루노 델보넬은 〈맥베스의 비극〉에서 크레이그의 방법론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델보넬과 〈인사이드 르윈〉(2013), 〈카우보이의 노래〉(2018)에 이은 3번째 협업으로 호흡을 맞춰온 조엘 코엔은 인조 세트를 비추면서 발생하는 명암 대비 자체를 일종의 건축물처럼 사용해 사이를 움직이는 배우들의 동선과 연기로 이러한 명암에도 물질성이 부여되는 듯한, 몽환 세계를 창조해낸다. 이 인위의 꿈은 1.37:1과, 살짝 둥글게 굴려진 모퉁이라는 무성영화 시대의 화면이 떠오르는 프레임 안에 갇혀, 우리가 악몽에서 종종 느끼고는 하는 폐쇄성 혹은 감금의 기분을 유발한다.


에드워드 고든 크레이그의 〈햄릿〉(1911) [출처: Wikimedia Commons]


기존의 맥베스 작품들과 비교해보면 거의 원작에서 편집되거나 변경된 대사가 없다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로 셰익스피어 원작에 충실한 서사를 영상화하였다.


조엘 코엔 감독이 유의미하게 원작에서 변경한 대사는 여러 인터뷰에서도 직접 밝힌 내용으로 1막 7장에서 던컨 왕의 살인 계획 직전, 맥베스(덴젤 워싱턴)가 망설이는 모습을 보고 부인(프란시스 맥도맨드)이 그를 다그친 직후의 대사다. "실패하면 어떻게 하지요?"라고 묻는 맥베스에게 부인은 "그러면 실패하는 거지요! 하지만 당신이 용기를 내고 붙들 수 있다면, 우리는 실패하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한다. 맥베스는 새삼스럽게 자신의 부인의 결단력에 놀라움을 표한다.


남자아이들만을 데려오너라!
당신의 의연한 패기를 보아하니
남자만 낳겠구려.


물론, 표면 상으로는, 강인한 남성, 부드러운 여성이라는 다소 구시대의 이분법 반응이지만, 잠시 대사에 잠겨있는 구태의연함을 차치하고, 이 대사의 문맥과 상황을 살펴보자. 맥베스 자신이 "의연한 패기"를 남자아이와 연결 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암살작전의 멱살을 잡고 끌고 가는 인물은 맥베스 부인이며, 이는 작품을 쓴 셰익스피어를 비롯해, 본 작품을 각색한 모든 영상물에서도 공통으로 드러나는 감상이다. 여기에도 어떠한 역설이 잠재되어 있다. 분명히 부인의 계획과 추진력에 끌려가면서도, 맥베스는 그런 성정을 가진 부인이라면 남자아이를 낳으리라고 감탄하고 있다. 대화의 내용과 화자의 성별이 반전되어 있다.


초현실의 공포로 해석되는 본 작품에서, 이 상황만큼은 주인공 부부가 가진 서로에 대한 신뢰와 연대를 보여주기도 하며, 중대한 계획을 앞두고 갑작스럽게 아이를 낳아달라고 하는 상황에는 부부간의 성적인 끌림도 잠재되어 있다. 공포와 긴장감이 조장하는 성적인 에너지는 할리우드 공포영화의 역사만큼이나 해묵은 주제이다. 때문에, (유튜브의 셰익스피어 네트워크에서도 관람이 가능한) 40년 전, 왕립 셰익스피어 극단(RSC)에서 공연한 트레버 넌 감독 연출 〈맥베스〉(1979)의 맥베스(이안 맥켈런)와 부인(주디 덴치)의 대화도, 저스틴 커젤 감독 연출 〈맥베스〉(2015)의 맥베스(마이클 패스벤더)와 부인(마리옹 코티야르)의 대화도, 젊고 야심 찬 부부가 곧 다가올 권력에 취해 서로를 탐닉하는 장면으로 묘사된다.


조엘 코엔의 〈맥베스의 비극〉에서 주인공을 연기하는 두 배우, 덴젤 워싱턴과 프란시스 맥도맨드는 이미 60대를 넘어, 손주를 보아도 크게 이상하지 않은 나이다. 조엘 코엔 본인도 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이 작품을 "폐경기가 지난 맥베스 (post-menopausal Macbeth)"라고 부른다. 그렇기 때문에 위의 대사가 어울리지 않는다라고 느낀 듯하다.


남자아이들만을 데려오너라!
당신의 의연한 패기를 보아하니
남자만 낳았겠구려.


원문인 영어에서는 단 하나의 단어 "should"만이 "should've"로 변경되었다. 한국어 번역에서도 "낳겠구려"에 단 하나의 글자를 추가해 "낳았겠구려"로 변경함으로 유사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대사는 다음과 같은 문맥으로 변경된다. 환갑이 넘은 나이에, 어느덧 젊은 시절의 야망이 사그라든 맥베스는 사악한 존재인 마녀의 예언을 통해 잠깐 왕위를 꿈꾸었지만, 계획의 시간이 다가오자 노인의 신중함이 돌아오면서 갈팡질팡한다. 그런 그의 마음을 다잡는 부인의 배짱을 보면서 새삼스럽게 자신이 젊은 시절 부인과 사랑에 빠졌던 이유, 그녀에 대한 존경심을 다시 한번 떠올린다. 과거의 열정에 잠시 불이 오른 맥베스는 불현듯 "남자아이들만을 낳아달라"라고 중얼거리지만, 말이 흘러나오는 순간 이미 나이가 들어 아이를 낳지 못하는 자신과 부인의 상태를 깨닫고는, 만약 젊은 시절에 아이를 낳았다면 남자아이만 낳았으리라고 탄식한다.


맥베스(덴젤 워싱턴), 맥베스 부인(프란시스 맥도맨드), 〈맥베스의 비극〉(2021) [출처: YouTube @ Apple TV]


관람 중 이 변경점을 포착할 수 있다면, 표면적으로는 연기를 하는 배우들의 나이를 감안해 적용한 수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곱씹어볼수록 앞서 말한 이 특정 상황에 대한 모순뿐만이 아니라 (대화 내용과 화자 성별의 반전), 극 전체에 대한 역설성이 강화됨을 깨닫는다.


1막 7장 시작에서 맥베스는 "그가 묵는 집의 주인이 되어, 그에게 다가오려는 암살자에게 문을 닫아야 하는 내가, 칼을 든다니"라고 후회하고 있는데, 이는 자신의 집에 묵는 손님에 대한 폭력은 신화시대부터 내려오는 가장 큰 금기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즉, 맥베스와 부인의 계획은 사촌지간의 살해라는 존속살인, 군신관계의 살해라는 역모 살인, 그리고 집주인과 손님 관계의 살해라는 불문율의 파괴라는, 모든 인륜을 저버리는 행위로 간주된다. 만약, 이들이 왕위를 물려줄 아이가 있거나,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나이라면, 이는 후대를 위한 행위로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맥베스의 비극〉의 맥베스 부부는 이미 인생의 황혼에 접어든 나이로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상황이고, 이러한 계획이 가져다 줄 권력을 즐길 여유도, 왕위를 물려줄 후손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맥베스가 암살을 실행한다는 사건 자체가 극이 시작될 때 보이는 미묘한 부정교합 상태를 더욱 악화시켜가는, 역설성의 심화로 이어진다.


원작 『맥베스에 등장하는 역설은 대부분 세명의 마녀의 입을 통해 전달된다. 조엘 코엔은 작품을 각색하면서, 세 명의 마녀를 한 명의 마녀(캐스린 헌터)로 압축했고, 그녀의 존재야말로 바로 〈맥베스의 비극〉을 지금까지 앞에 왔었던 다른 어떠한 영상 작품들보다 독특하게 만들어낸다. 극이 시작하면서, 몸을 기괴하게 비틀면서 3명의 마녀의 대사를 목소리를 바꿔가며 발성하는 캐스린 헌터의 연기는 영화, 또는 연극적인 연기라기보다는, 현대무용에 가깝다는 인상을 줄 정도로 육체성이 강하다. 실제로 이미 60세 중반인 헌터의 신체는 나이를 믿기 어려울 정도로 기괴하게 뒤틀리고, 늘어나거나, 줄어드는데, 영화계 밖에서는 신체극(physical theatre)의 대가로 유명하다. 캐스린 헌터는 이 작품에서 한 명이자 세 명인 마녀를, 인간형태이자 동물 형태(까마귀)인 존재를, 여자(마녀)이자 남자(노인)의 역할을 동시에 맡으면서 하나의 대상에게 상반되고 대비되는 개념을 자신의 신체에 담아낸다. 걸어 다니는 역설(walking paradox)이라고 부름이 어울린다.


마녀(캐스린 헌터), 〈맥베스의 비극〉(2021) [출처: YouTube @ Apple TV]


『맥베스의 1막 1장을 상징하는 대사는 마녀 3명의 "Fair is foul, and foul is fair" 합창이다. 한국의 권위 있는 출판사에서는 "아름다운 것은 추한 것, 추한 것은 아름다운 것" (권모숙 번역, 열린책들), "고운 건 더럽고 더러운 건 고웁다" (최종철 번역, 민음사)로 번역된 이 대사는 두 번역 중 무엇이 더 좋다고 판단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하게 해석이 가능한 중의를 지니고 있다.


"Fair"는 "아름답다, 곱다"를 포함해 "보기 좋다, 밝다, 선하다, 공정하다"와 같은 긍정의 의미를, "Foul"은 "추하다, 더럽다"를 포함해 "보기 싫다, 고약하다, 악하다, 반칙이다"와 같은 부정의 의미를 내포한다. 가장 직접적인 번역을 고민해보자면, 이 두 단어가 다시 역설적으로 등장하는 상황을 보면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등장하는 장면은 1막 3장으로, 전투에서 막 승리한 맥베스와 뱅쿠오가 전장을 둘러보다 마녀를 발견하기 직전에 맥베스가 내뱉는 감탄사다. 맥베스는 "So foul and fair a day I have not seen"이라 말한다.


온전히 원작만을 기반으로 상상을 해보자면, 전투가 승리로 끝난 직후, 온통 병사들의 시체로 덮여 있는 상황이다. 바로 이전 장면에 전령이 왕에게 "기진맥진한 두 수영선수가 목을 조르며 익사하는 상황이었다"라고 보고한 만큼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음직하고, 그렇다면 스코틀랜드군의 대승으로 적군이 전멸해 그들의 시체가 전장에 즐비하더라도, 아군의 피해 역시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승리는 아름답지만, 아름다움은 시체로 이루어진 산더미로 인해 성립하고 있다. 그렇다면 "아름답지만 추하고, 추하지만 아름답다"라는 역설의 명제가 성립할 수 있다.


커젤의 〈맥베스〉과 유사하게, 조엘 코엔의 〈맥베스의 비극〉은 이 명제를 영상에 직접 표현하려 노력한다. 날씨는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서정적이고 신비로운 풍경을 연출하지만, 안개는 한편 어떤 불길한 존재를, 이를테면 치열한 전투가 끝난 직후의 전장에 무심하게 서 있는 마녀를 숨기고 있다. 승리로 인하여 상서로운 날이지만, 승리의 잔재에는 앞으로 다가올 저주가 도사리고 있다. 그렇다면 "밝지만 어둡고, 어둡지만 밝다"라는 역설의 명제도 성립된다.


그런가 하면, 마녀의 예언의 내용은 어떤가. "글라미스 영주 맥베스", "코더 영주 맥베스", "곧 도래할 왕 맥베스"를 찬양한 후, 뱅쿠오(버티 카벨)에게 돌아서서, 그를 위한 예언을 내뱉는다.


맥베스보다 초라하고, 위대하다.
불행하지만, 더 행복하다.
왕을 자녀로 두지만, 왕이 되지 못한다.


세 가지 예언은 굳이 해석이 필요 없을 정도로 아주 고전적인 역설이다. 때문에 마녀가 떠난 후, 맥베스와 뱅쿠오는 이 예언을 어떤 환영이나, 고약한 우스갯소리로 생각하면서 서로 "자네 자식이 왕이 될 거라는데", "자네가 왕이 된다잖아"라고 농을 친다. 이 역설이 힘을 얻게 되는 시점은 직후에 왕의 전령이 와서, 마녀가 맥베스를 부른 두 번째 호칭이자, 첫 번째 예언인 "코더 영주 맥베스"를 현실화시킨 후이다. 맥베스와 뱅쿠오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사라져 있고, 다가올 미래에 대한 번민이 시작된다.


주술 섞인 역설의 아바타인 마녀를 연기한 캐스린 헌터만큼이나, 현실의 축에서 역설의 아바타를 연기하고 있는 인물은 원작에서는 조연에 가까운 로스(알렉스 해슬)로, 다양한 매체에서 〈맥베스의 비극〉이 원작에서 가장 크게 벗어난 부분을 주조연에 가깝게 역할이 확대된 로스로 평가한다. 로스를 연기한 알렉스 해슬은 가장 최근인 2015년 왕립 셰익스피어 극단(RSC)의 무대에서 헨리 5세를 연기했던 경력으로 유명하다. 단순한 무대 경력으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셰익스피어 작품을 오랫동안 공연해왔던 올드빅 극장을 위시한 기타 왕립 극장, 그리고 1960년대 창립된 RSC의 무대에서 헨리 5세를 연기한 배우들은 대부분 영화와 연기 역사에 남을만한 대배우로 성장했다. 1937년 올드빅의 로렌스 올리비에, 38년 드루리 레인 왕립극장의 아이버 노벨로, 55년 올드빅의 리처드 버튼, 56년 스트랫퍼드 셰익스피어 페스티벌의 크리스토퍼 플러머, 72년 알드위치 극장의 티모시 달튼, 85년 RSC의 케네스 브래너 등의 배우들은 본격적으로 유명해지기 전, 청년 시절에 헨리 5세로 발탁되어 연기력을 인정받고 세계적인 배우, 또는 연출가로 대성했다.


로스(알렉스 해슬), 〈맥베스의 비극〉(2021) [출처: YouTube @ Apple TV]


2015년, RSC 라이브를 통해 공연실황이 발매된 〈헨리아드〉 4부작에서 할 왕자부터 헨리 5세로 성장하는 과정을 모두 연기해 극찬을 받은 해슬이, 〈맥베스의 비극〉의 로스라는 조연으로 캐스팅된 상황은 표면적으로만 본다면 그의 연기력이나 카리스마의 낭비로 볼 수도 있지만 (실제로 영화 시작 전에는 캐스팅을 보면서 당황했었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해슬의 로스는 원작의 로스가 있으면 안 되는 장면에도 등장해, 심지어 대사가 없이도 인물에 새로운 해석을 더한다. 로스는 던컨의 전령, 맥베스의 동조자, 뱅쿠오 암살자, 말콤의 첩자, (아마도) 맥베스 부인 살해자, (스코틀랜드의 미래 왕이라고 예상되는) 플리언스의 구원자라는 다채로운 역할을 오가면서, 한 명의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주군에게도 통제받지 않는, 1인 세력(pièce de résistance)으로 활동한다. 로스의 역할 확대는 자칫하면 이미 너무나도 유명한 작품을 영상화했을 시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기시감에 긴장감이 풀릴 수 있는 지점에 위화감을 조성하고, 영화가 끝나는 순간까지 관객이 그의 목적을 의심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그러한 효과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로스도 걸어 다니는 역설이어야 했다.


〈맥베스의 비극〉을 보다 보면, 특유의 기하학 세트로 인하여 선과 면으로 환원된 건축물들의 디자인 때문에 소실점이 도드라지게 드러나는 숏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소실점이 화면의 정중앙에 위치해, 1명의 인물을 소실점에 배치하거나, 또는 카메라가 정면을 향해 달리인(dolly in)하는 형태로, 공간의 모든 요소가 정중앙에 위치한 인물, 또는 오브제를 향하는 원포인트(One-Point Perspective) 숏 구성이 무척 인상적이다. 예시로 던컨 왕이 잠들어있는 객실로 다가가는 맥베스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문의 중앙에 위치한 손잡이는 조명 때문에 마치 단검처럼 보이면서, 맥베스의 "단검의 환영" 독백에 실물성을 부여한다. (인터뷰에서 작품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를 무척 꺼리는 조엘 코엔의 성향 때문이라도) 스탠리 큐브릭 감독도 즐겨 사용했던 원포인트 숏이 개별 작품에서 어떠한 의도로 사용되었는지 짧은 문장 내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맥베스의 비극〉에서는 역설의 명제들과 인물들, 갈 곳을 잃은 주인공들의 폭주가 만들어낸 난장과 난장 사이, 찰나의 명료성을 생성해내고 있지 않나, 짐작해본다. 등장인물들의 심리 변화와 동일하게, 끊임없는 의심과 추측, 공포로 지배되어 있는 이 영화 세계 안에서, 아주 잠시 동안 세상이 논리적으로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그리고 순간들은 도래했던 돌차간만큼이나 순식간에 손아귀에서 빠져나간다.


원포인트 숏 예시, 〈맥베스의 비극〉(2021) [출처: YouTube @ Apple TV]


아마도 조엘 코엔의 〈맥베스의 비극〉이 그전에 시도되었던 수많은 프로덕션과 비교해 확실히 차별되는 지점이 있다면,  "폐경기가 지난 맥베스"를 위한 각색을 제외하고는, 원작 『맥베스』의 내용을 일련의 논리로 재해석하려는 시도의 부재 혹은 성공에 가까운 은폐가 아닐까 생각된다. 웰스의 〈맥베스〉도, 커젤의 〈맥베스〉도, 심지어 폴란스키의 〈맥베스〉도, 나름의 논리에 기반한 변주로 셰익스피어의 세계를 관객에게 전이시키기 위해 바닥부터 구축하려는 시도가 꽤나 뚜렷하게 보이는 편이다. 하지만 조엘 코엔의 〈맥베스의 비극〉은, 적어도 관객의 입장에서는, 세계의 이해나 해석보다는 체험이라고 부르면 어울릴듯한 관람을 하게 된다.


코엔 형제의 작품 중에는 가장 좋아하는 영화(자주 바뀐다)와 가장 자주 관람한 영화가 다른데, 후자는 〈번 애프터 리딩〉(2008)으로 결말의 대화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지독하게 꼬여가던 극 중의 모든 사건이 허무하게 종결되고, CIA의 상관(J. K. 시몬스)에게 상황을 보고하러 온 파머 디베이키 스미스 요원(데이비드 라쉐)은 상관과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눈다.


CIA 상사: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배웠나, 파머?
파머: 잘 모르겠습니다.
CIA 상사: 빌어먹을 나도 모르겠네. 아마 다시는 하지 말자라는 교훈을 배웠나 싶군.
파머: 그렇습니다.
CIA 상사: 근데 빌어먹을 뭘 했는지도 모르겠네.
파머: 그렇습니다. 어…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코엔 형제 영화(특히 그들의 코미디)의 서사 진행을 무척 명료하게 표현하는 대사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리고 코엔 형제 작품이 끝나고 그들의 영화를 생각하다 보면 느끼는 감정이다. 하나의 장면과 사건 내의 등장인물들의 의도, 그들의 행위로 인한 다음과의 사건의 인과관계는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능한데, 이러한 개별 사건들이 포개지고, 새로운 사건에 침입하면서 극의 클라이맥스에 도달해서는 영화 내 세계가 팽창의 한계에 이르러 파열한다. 마지막에 가서는 왜 이러한 일이 발생했는지 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는 이가 (관객을 포함해) 단 한 명도 없다.


예컨대, 〈맥베스의 비극〉은 영화의 시작과 동일하게, 무대의 조명등이 암전 되는 효과음으로 끝난다. 이 순간, 우리가 보고 있었던 장소가 무대였으며, 역설로 가득 찬 몽환 세계를 떠나 현실로 돌아가라는 손짓을 본 듯한 느낌이 든다. 또는 연극 무대로 떠난 에단 코엔에게 보내는 윙크일 수도 있다. 혹은, 4세기 전 글로브 극장을 기대에 찬 관객으로 가득 채웠던 셰익스피어의 원작에 대한 경외가 담긴 아주 미세한 끄덕임이 아닌가. 아니면, 부인을 떠나보낸 맥베스가 중얼거린 대사에 답이 숨어 있을까.


우리는 고작 걸어 다니는 그림자, 가여운 배우 같아서
무대에 등장하고는 내내 조바심 내고 실수하다가
어느 순간 퇴장해 버리는구나. 삶이란 마치
광대의 이야기와도 같아 소리와 격정으로 가득 차
아무런 의미도 없네.


그러고 보면, "소리와 격정으로 가득 차, 아무런 의미도 없다"라는 역설의 명제는 조엘 코엔의 영화와 어울리는 감상이다. 소리와 격정은 살아있음을 증명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는데, 한바탕 아수라장이 끝나고 순간과 멀어지면서, 마치 우리는 모래 위에 글씨를 쓰고, 바닷물이 밀려와 글씨를 휩쓰는 파도를 필사적으로 막는 어린아이가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마침

맥베스가 부인을 잃고 삶에 대한 허무함에 도취되어 내뱉는 "sound and fury"는 추후, 윌리엄 포크너의 소설의 제목, 『The Sound and the Fury로 차용되면서 의미를 어떻게 번역할지에 대한 논의가 갈렸다. 동서문화사에서는 포크너의 작품을 『음향과 분노로, 문학동네에서는 『소리와 분노로 번역이 되어 출판됐다. 개인적으로는 '소리와 격정' 정도가 가장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음향'에 함유된 멜로디는 어울리지 않는다. 두 출판사에서 공통으로 '분노'로 번역했지만, '분노'라는 단어에 함유된 '화'는 광대의 이야기와 어울리지 않는다. 그는 감정에 고조되어 온 몸을 이용해 이야기를 전달한다. '격정'이 훨씬 어울린다.


저명한 영문학자인 조지 T. 라이트는 셰익스피어의 작품, 특히 『햄릿에 등장하는 다양한 수사학 표현들, 정확하게는 66개의 표현을 "헨디아디스(hendiadys)"로 해석한다. "헨디아디스"란 언어학에서 두 단어를 연결하는 등위 접속사(예시: and, not, but)를 종속적(예시: of, after, because)으로 사용, 의도적으로 위화감을 조성해 강조하는 기법이다. 한국어에서도 어느 정도 느슨하게는 사용 가능한데, 침대가 '가구가 아니라 과학'이라고 주장하는 한 가구회사의 카피를 생각해보면 결국은 가구라는 정의를 완전히 부정하기 위함이 아니라, '과학적인 가구'라는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은 의미임을 깨닫게 된다. 다만, '가구가 아니라 과학 (science, NOT furniture)'이라고 주장함으로, '과학적인 가구'라는 실제 의미에서 '과학'에 훨씬 큰 무게를 싣고 있다.


『맥베스의 "sound and fury"를 헨디아디스라는 수사학 기법을 통해 이해한다면, "격정적인 소리"로 번역이 가능하다. 4세기 전, 글로브 극장에서도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관람하던 이들도, 20세기의 셰익스피어 신동 오슨 웰스와 21세기의 저스틴 커젤, 조엘 코엔, 심지어 브로드웨이, 디즈니+의 〈해밀턴〉을 관람하는 우리도, 무대 위에서 들려오는 격정적인 소리에 마술처럼 사로잡혀 사이에서 창작, 각색, 관람, 해석, 비평이 어쩌면 무의미함을 알면서도, 의미를 찾아 헤맨다.


(끝)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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