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소풍 가기 좋은 날

한낮의 광장, 무대로 바뀌다

by 끌림씨


공휴일에 늘 출근하던 남편이, 모처럼 쉬는 날이었다.

“오늘 뭐 하고 싶어?”

내가 묻자 기다렸다는 듯 인쭈가 외쳤다.

"호수공원!"

인쭈는 벌써 신이 난 얼굴이었다.


피크닉 가방에 이것저것 챙겨 다 같이 공동 현관을 나서는데, 칼국숫집 아저씨가 환하게 웃으며 말을 건네신다.

“공주님 안녕~ 어디 놀러 가는구나!

소풍 가기 좋은 날이다.”

언제나처럼 기분 좋은 인사에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공원 광장에 들어섰다.

시원한 분수 소리 사이로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돗자리를 펴고 앉아 여유롭게 휴일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인쭈야, 어디로 갈까?"

“저기, 저번에 앉았던 자리!”

둘이 손잡고 걸어가면서 흥얼흥얼 노래를 불렀다.

“오늘은 소풍 가기 좋은 날~♪”


초여름 오후,

잔디밭 위로 뜨겁게 내리쬐는 햇볕.

검은 장우산을 파라솔 삼아 만든 그늘에 몸을 숨긴 채, 시원하게 몰아치는 바람을 맞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경쾌한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더니 키 큰 아저씨 한 분이 나타나 반짝이는 박스 앞에 서서 뭔가를 준비하고 있었다.


“잠시 후, 길거리 공연이 시작됩니다.”


“인쭈야! 공연 하나 봐. 앞으로 가서 볼까?”

우리는 오징어 굽는 맥반석처럼 뜨끈해진 광장 관중석에 접은 돗자리를 깔고 앉았다. 한낮의 광장은 순식간에 무대로 바뀌었다.


저글링, 모자 던지기, 외발자전거 타기.

아저씨의 열띤 묘기에 웃음과 탄성이 터져 나왔다.


공연 도중, 아저씨가 쓰고 있던 동그란 펠트 모자가 벗겨졌다. 땀에 젖은 고슬고슬한 머리카락이 드러났다.


어느새 한 시간의 공연이 끝났다.

아저씨는 묵직한 책가방을 어깨에 메고 외발자전거와 캐리어를 양손으로 끌면서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말끔히 정리된 광장 앞에 서서 생각했다.

아무것도 없는 무의 공간을 무대로 바꾸고 웃음과 감동을 만들어내는 건, 아저씨가 오랜 시간 홀로 쌓아온 보이지 않는 노력의 힘이라는 걸.


자신이 가진 것을 단단히 다듬어,

누군가에게 즐거움을 전할 수 있다면⋯

그렇게 살아갈 수 있다면 정말 멋질 거야.


광장은 다시 비워졌지만, 마음속에 오래 남을 무대가 하나 생겼다.




#작은공연속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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