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nostalgia)가 깃든 라틴타악기
라틴아메리카의 음악은 원주민, 유럽, 아프리카 세 가지 문화가 독특하게 혼합되어 발달한 산물이다. 일종의 ‘퓨전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라틴음악을 생각하면 ‘사이먼 & 가펑클’(Simon & Garfunkel)이 부른 ‘엘 콘도르 파사’(El condor pasa)의 음률과 함께 안데스 산맥을 하강하는 콘도르가 떠오르며, 마치 한국의 아리랑에서 느껴지는 ‘한’과 같은 정서가 느껴지곤 한다.
라틴 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은 스페인 사람들이 도착하기 전에 수많은 종류의 드럼과 딸랑이, 마라카스, 거북이 등과 같은 타악기를 주로 종교적 용도로 사용했는데 샤머니즘적 전통이 강했으며, 마야, 아즈텍, 잉카문명에서는 관악기와 타악기의 정교한 오케스트라를 개발하기도 했다.
1492년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후 16세기 동안 스페인의 라틴아메리카 정복은 대량학살을 불러왔고, 로마 가톨릭의 전통음악을 식민지로 가져왔다. 선교사들은 원주민들의 음악을 이교도적인 것으로 간주해 제거하기를 원했고, 그들이 승인하지 않은 종교적 관습과 음악은 파괴의 대상이 되어 서양 음악으로 대체되었으며, 1522년에는 멕시코시티에 최초의 유럽 음악원이 설립되었다.
17세기 중반에는 대서양 노예무역이 시작되어 수백만명의 아프리카인들이 라틴 아메리카로 유입되었다. 아프리카인들이 노예로 끌려 왔을 때 그들이 고향에서 사용하던 수많은 드럼 등 타악기가 독자적인 진화를 이루며, 원주민의 음악과 유럽에서 유래된 음악이 함께 혼합되면서 발달하였다. 아프리카의 음악 전통과 대담한 리듬은 의심할 여지없이 라틴아메리카 음악에 큰 영향을 미쳤다.
대부분의 아프리카-카리브해 및 아프리카-라틴 아메리카 전통종교에서 드럼은 신성한 악기로 간주되며, 다른 많은 타악기들도 아프리카에서 유래된 것이다. 드럼을 치는 것은 아프리카 종교의식의 맥박이었으며, 신대륙의 아프리카 사람들에게서 있어 유럽의 정복자들로부터 빼앗기지 않은 몇 안 되는 권리 중 하나였고 순수한 기쁨의 원천이었다. 즉,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에게 있어 타악기는 삶의 기쁨, 고통과 슬픔뿐만 아니라, 고향인 아프리카에 대한 향수(nostalgia)를 불러일으켜 주는 매개체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영어로 라틴 퍼커션이라고 하는 것은 주로 쿠바계의 타악기를 가리킨다. 그 주된 것은 콩가(별명 툼바돌라. 몸통은 목제이고, 세로로 긴 통가죽의 북), 봉고(콩가를 작게 한 북. 2개가 옆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 팀발(몸통은 금속제이고 통가죽의 북 2개를 옆으로 연결하여 스탠드에 세운 것), 마라카스(과실 껍데기 속에 모래 같은 것을 넣고 자루를 단 것 2개를 양손에 쥐고 흔든다), 클라베스(딱딱이), 기로(눈금이 새겨진 나무 또는 과실 껍데기를 가는 막대기로 비빈다) 등이 있다. 손으로 직접 두드리는 핸드 퍼커션뿐만 아니라 스틱 등으로 두드리는 악기도 많이 있다.
라틴 아메리카는 아프리카에서 싹튼 타악기가 대륙을 옮겨 본격적으로 개화한 “제2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다.
1) 콩가(conga)
툼바도라(tumbadora)라고도 하는 콩가(conga)는 쿠바의 키가 크고 좁은 머리가 하나뿐인 북이다.
약 70센티미터 정도 깊이의 술통 모양의 울림통 윗면에 지름 20~30센티미터의 북면이 테두리 없이 조여 고정되어 있다. 종종 혼동되곤 하는 봉고와 마찬가지로 아프리카에서 중남미 식민지로 팔려나간 흑인 노예들이 지참하고 간 악기로 추정되며, 이름 때문에 콩고가 원산지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확실한 증거는 없다.
2) 봉고 드럼(bongo drum)
봉고는 중앙아메리카나 카리브해 식민지로 팔려나간 흑인 노예들이 지니고 간 것으로 추측되며, 쿠바 동부에서 발생한 타악기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일부 학자들은 봉고의 생김새와 연주법이 유럽과 아랍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쿠바 동부에서 발생했다는 사실 외에는 봉고의 기원에 대해서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봉고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19세기 말에 나타나는데 쿠바 동부에서 발생한 춤이자 음악 장르인 손(son)의 반주 악기 중에 봉고가 있다는 내용이다. 봉고는 중남미 민속음악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악기로 활용되고 있는데, 20세기 초 이래로 봉고는 쿠바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악기가 되었다.
크기는 제작사나 만드는 지역과 국가에 따라 미묘하게 다르지만, 대체로 들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작게 만든다. 라틴타악기에서 가장 작은 드럼이며 일부 모델은 직경이 15센티미터(6인치)에 불과하다.
초기 봉고는 무릎 사이에 끼우고 연주하는 한 개짜리 북이었으나, 화려하고 리드미컬한 연주를 할 수 있도록 기존의 북에 새로운 북 하나를 더해 줄로 묶어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1940년~1950년대에는 맘보 음악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봉고는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고, 1970년대는 살사(salsa) 음악이 크게 유행하면서 다시 한번 인기를 끌었다.
3) 팀발(Timbales)
팀발(Timbales 또는 pailas)은 금속 케이스가 있는 얕은 단일 헤드 드럼이다. 20세기 초 쿠바에서 클래식 팀파니의 대안으로 개발되었으며, 나중에 라틴아메리카와 미국 전역에 퍼졌다. 팀발은 때때로 맨손으로 사용하지만 말렛으로 두드린다.
4) 마라카스(maracas)
중앙아메리카와 카리브 일대의 섬에서 유래한 타악기이다. 야자열매의 일종인 ‘마라카’의 속을 파낸 후, 잘 말린 씨를 집어넣고 흔들어서 소리를 내던 것에서 이름을 따왔다. 영어로는 셰이커(shaker)라고도 하는데, 문자 그대로 악기를 흔들어서 소리를 낸다.
5) 클라베스(claves)
길이가 약 20~25cm(8-10인치)인 짧은 나무 막대기로 구성된 타악기이다. 지름이 약 2.5센티미터(1인치)이다.
나무로 만든 윷가락 비슷한 모양의 막대기 두 개로 구성되고, 한 손으로는 막대를 몸과 수직이 되게 가볍게 쥐고 다른 한 손으로 움켜쥔 막대를 맞부딪혀 소리 낸다. 소리는 작은 우드블럭과 비슷하게 메마르고 날카로운데 음높이는 좀 더 높은 편이다.
6) 카혼(cajon)
카혼은 젬베와 더불어 최근 어쿠스틱 밴드의 리듬악기 투톱이라고 할 수 있다. 카혼은 남미, 특히 페루 지역에서 유래된 리듬악기로써, ‘Cajon’이라는 이름은 말 그대로 ‘상자’를 의미한다. 카혼, 까혼, 까존 등의 이름으로 불린다. 나무로 된 상자 내부에 스네어의 역할을 하는 금속이나 나이론 줄을 달아두고 소리가 빠져나올 수 있도록 뒷면 또는 측면에 홀이 존재한다.
카혼의 유래에 대해서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항구에서 일하고 과일을 나르는 사람들의 상자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스페인이 노예들의 음악을 금지하자 이를 피하기 위해 상자를 악기로 위장해 사용했다는 설도 있다.
어떻게 보면 이 두 가지는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흑인 노예들의 음악과 종교의식에서 드럼은 무엇보다도 중요한데, 그들이 고향에서 사용하던 것과 똑같은 드럼을 만들어 사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대단히 어려웠고, 식민 당국은 아프리카의 음악과 종교의식을 금지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흑인 노예들은 수출품을 선박에서 싣고 내리던 포장상자를 악기로 많이 사용하였다. 연주를 할 때는 빈상자를 깔고 앉아 그 앞을 두드리고, 식민 당국에서 감시를 할 때는 그냥 의자에 앉아서 쉬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감시를 피하기 안성맞춤이었을 것이다.
카혼은 쿠바와 페루에서 발달했는데, 악기 이름은 같지만, 생김새와 연주법은 서로 달랐다. 이렇게 주로 라틴아메리카에서 사용되던 카혼이 본격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페루의 카혼과 플라멩코라는 장르의 결합이었는데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페루인들은 2001년 카혼을 국가 문화유산으로 지정할 정도로 카혼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데, 2008년에는 수도 리마에서 국제 카혼 축제를 개최한 이후 매년 4월이면 같은 도시에서 축제를 이어가고 있는데, 2009년에 처음으로 1,000여 명의 연주자가 모여 함께 연주했고, 2015년에는 2,000여 명이라는 엄청난 사람들이 모여 연주함으로써 기네스 기록을 경신하였다.
* 국제 카혼 축제
7) 레인스틱
본래는 남미 원주민 언어로 "palo de lluvia"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으며, 원주민들이 가뭄을 겪을 때 비를 부르기 위한 기우제 의식을 치르는 도구였다. 기우제 진행 동안에 제사장은 비의 신과 소통하기 위한 도구로써 이 레인스틱을 흔들어서 빗소리를 냈다.
레인스틱은 내부 표면에 나선형으로 배열된 작은 핀이나 가시가 있는 작은 자갈, 쌀 또는 콩으로 부분적으로 채워진 길고 속이 빈 관이다. 막대기를 뒤집으면 자갈이 튜브의 다른 쪽 끝으로 떨어지며 내부 돌출부에 튕겨져 내리는 비를 연상시키는 소리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