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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초연 Jul 28. 2023

세상의 모든 것이 마음에 의해 지어진 것이라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0, 불교 2편

 불교에서 보는 자아와 세계 간의 관계는 어떠할까? 우선 붓다에 의하면, 모든 것이 집착이고, 무지이며, 존재 자체가 없다고 한다. 먼저 자아에 대한 관점에 대해 짚고 넘어가자.


 불교에서의 자아는 '무아(無我)'라고 한다. 즉, 자아는 존재하지 않으며, 끊임없이 변화하고 흩어지고 모이는 임시 상태에 불과하다고 본다. 자아는 그저, 모래처럼 쌓여 있다고 하여, 자아의 구성 형상을 '온(蘊)'이라 하는데, 특히 다섯 가지 요소가 일시적으로 쌓여 있다고 하여 '오온'이라고 부른다.


 먼저 인간을 구성하는 물질적 요소인 '색'은 시간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 임시적 무더기, '육체'를 뜻한다. 나머지 네 개의 4온은 정신적 요소를 의미하는데, '수'는 감정·감각과 같은 오감이 일으키는 고통과 쾌락의 단순 감정을 의미하며, '상'은 마음속에 떠오르는 표상 작용인 심상이나 명상을 의미한다. 더불어 '행'은 수, 상, 식 이외의 모든 마음의 작용을 총칭하는 것으로, 특히 의지와 같은 잠재적 마음의 형태를 의미한다. 마지막, '식'은 모든 마음 작용을 일으키고, 종합하는 의식활동으로, 인식판단의 작용 또는 인식주관으로서의 주체적인 마음을 가리킨다.


 이 다섯 가지 요소는 모두 불변하거나, 고정된 상태가 아닌, 그저 조건에 의해 끊임없이 모이고, 흩어질 뿐이다. 그러나, 인간은 이에 대한 깨달음 없이 모르는 무지(無知)로 인해, 고정된 자아와 불변의 영혼에 대해 집착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나'라는 존재자체가 없는 것일 때, 붓다가 말하는 세계는 어떠할까?


 맞다. 세계 또한, 자아처럼 존재하지 않고, 그저 '연기'의 형태로 세계가 생겨나고 사라짐을 이야기한다. 모든 현상은 원인과 조건에 의해 생겨나고 사라질 뿐이라는 것이다. 연기의 개념을 사성제와 연결시키면, 고성제와 집성제와 관련된 존재와 삶이 발생하는 방향으로서의 연기, '유전연기'. 반대의 개념으로서, 멸성제와 도성제와 관련된 존재와 삶이 소멸하는 방향으로 발생하는 연기, '환멸연기'. 이렇게 두 가지가 연기의 형태가 된다.  즉, 사성제와 오온은 연기라는 세계관 위에 성립하는 핵심 진리인 것이다.


 다시 정리해 보면, 자아는 1개의 물질적 요소와 4개의 정신적 요소인 '오온'으로 일시적으로 형태를 구성하고 있고, 끊임없이 변화하고 흩어지고 모일 수 있으므로, 자아는 존재하지 않는다(무아無我)고 하였다. 이는 불교의 근본 교리인 '제법무아(諸法無我)'에 해당한다. 다시 말하면, 자아는 영원한 고정된 실체가 아닌 변화하는 형태라는 것이다. 아울러, 세계의 모든 현상은 잠시도 멈춰있지 않고, 계속 생멸하고 변화한다는 뜻으로,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 한다.  이러한 무아와 무상의 상태를 알지 못하고 고정된 실체에 집착할 때, 고통이 발생하지만, 반대로 이러한 무지를 깨뜨리고 연기를 이해할 때서야 우리는 마지막 ‘열반적정(涅槃寂靜)’에 도달하게 된다. 열반적정은 번뇌의 불꽃을 바람을 불어 꺼뜨리는 것으로, 평화와 고요함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 불교의 궁극적 목표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에 집착함으로써 고통을 얻는다. 불교의 교리에 따르면,  만물의 기원은 나의 심으로부터 나오니 무엇을 탓할 수도, 원인과 결과의 영향으로 고통받을 수도, 무아의 욕구에 집착할 수도 없다. 아와 상은 잠시 흩어졌다 사라지는 연기의 형태이니, 오늘도 집착을 내려놓고 팔정도를 따르라고 한다. 그러니 우리는 우주와 자아를 통합하여 앞으로 나아가며, 탈속과 세속사이의 무위를 그저 즐기다 사라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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