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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초연 Jul 16. 2023

나의 실체, 치우치지 않음으로써의 중도를 이해한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0, 불교 1편

내 앞에 드러난 현상 세계가 내 마음이 지어낸 것임을 깨달을 때, 우리는 비로소 세상에 휘둘리지 않고 욕망에 집착하지 않으며 그로써 자유로워진다.
p.381


 불교의 핵심 교리는 고·집·열·도의 사성제(四聖諦)와 정견·정사·정어·정업·정명·정근·정념·정정의 팔정도(八正道), 두 가지라고 해도 무방하다. 사성제는 고와 집, 열과 도의 네 가지 진리를 말하니, 고와 집은 고통의 원인이요, 열과 도는 고통이 사라지는 원리이다. 아울러, 팔정도는 불교에서 깨달음의 경지인 열반에 이르게 위해 수행해야 하는 여덟 가지 덕목이라 할 수 있다.


 먼저 사성제의 '고성제(苦聖諦)'는 고통으로 가득 차 있는 세계가 기본 상태임을 아는 것이다. 인간은 태어나서 늙고, 병에 걸리며, 죽는다. 이것이 4고 생로병사(生老病死)이며, 인간의 근원이다. 이에 더해 사랑하는 자들과 헤어지거나 이별하는 고통인 애별리고(愛別離苦), 싫어하는 이들과 함께 있어야 하며, 만나야만 하는 고통 원증회고(怨憎會苦), 본인 뜻대로 추진하지만, 그만큼 되지 않아 생기는 고통 구부득고(求不得苦), 인간으로 태어나게 된 오온*이 성하는 고통 오온성고(五陰盛苦) 넷을 더하여, 다시 불교에서는 인간의 모든 고통을 8고라 한다.


* 오온: 다섯 가지의 시간에 따라 끊임없이 변하는 영원하지 않은 자아의 현 상태


 두 번째, '집성제(集聖諦)'는 고통의 원인을 제시하며, 이는 집착을 의미한다. 인간은 오감을 통한 쾌감을 추구하려는 욕구 애욕(愛慾)과 영원한 생명을 추구하려는 애착 유애(有愛), 니힐리즘과 같이 허무주의와 삶을 포기하여 존재하지 않음을 추구하려는 집착 무유애(無有愛)라는 세 가지의 집착을 가지고 있는다고 하였다. 이 집착을 그치지 않는다고 하여, '갈애(渴愛)'라고 명명했다. 아울러 또 다른 고통의 원인은 '무명(無明)', 무지를 뜻하는 것으로 통용되고 있다.


 8고를 타고난 인간이 무명과 갈애를 더하여 고통을 받음에 대해 안타까워하며, 이를 떨쳐내고 온전히 평안한 상태에 이르고자 하니, 이를 '멸성제(滅聖諦)'라고 한다. 고통의 원인을 해소하면, 결과가 소멸될 것이고, 집착하지 않으면, 괴로움도 없을 터이니, 우리는 이를 통해 깨달음의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


 이러한 열성제의 상태에 이르기 위해서는 '도성제(道聖諦)', 즉 방법으로서의 팔정도(八正道)를 취해야 하니, 이는 바르게 보고(正見), 바르게 생각하고(正思), 바르게 말하고(正語), 바르게 행동하고(正業), 바르게 목숨을 유지하고(正命), 바르게 노력하고(正精), 바른 신념을 갖고(正念), 바르게 마음을 안정시키는(正定) 것이다. '바르다'라는 개념은 불교를 조금 아는 사람은 눈치를 챘을 터이지만, '중도'를 뜻한다.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올바른 길을 선택하는 진실한 도리. 불교에서는 이에 더 나아가, 유(有)와 공(空)에서도 치우치지 않는 공명한 길로서 설명하고 있다. 즉, 중도 사상은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니고,' '태어난 것도, 죽은 것도 아니다.'


 우리는 이렇게, 붓다의 핵심 가르침인 '사성제'와 '팔정도'를 알아보았다. 인간은 8고를 통해 고통을 타고나, 무명과 갈애를 현실세계에서 겪게 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팔정도를 통해 만물을 중도로 다스려야 하며, 그로써 열반의 경지, '열성제'에 이를 수 있다 하였다. 다음 편에서는 불교에서 자아와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확인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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