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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솜 PD Aug 25. 2021

<독서> 장류진-일의 기쁨과 슬픔

<다소 낮음>의 결핍된 노스텔지어




주인공 장우는 밴드에서 기타를 치고 노래를 하는 뮤지션이다. ‘뮤지션’이 직업이지만 먹고살 정도로 돈을 버는 것은 아니며 소속사가 있지도 않다. 장우는 기타 레슨을, 여자친구 유미는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하며 근근이 살아간다. 평소와 같은 날, 장우는 자신이 첫 자취를 시작할 때 아버지가 선물로 주셨던 커다란 냉장고 앞에 서 있는 유미를 보고 즉흥적으로 노래를 만들어낸다. 기타 줄을 튕기며 불렀던 엉성한 노래 ‘냉장고송’이 유튜브를 통해 순식간에 유명해진다. 장우 역시 주목을 받으며 꽤 이름있는 소속사와 계약 직전까지 같지만, 소속사에서 제시한 계약 조건이 장우가 추구하는 음악의 방향과 맞지 않아 거절한다. 유미는 그런 장우를 더는 못 견디겠다며 떠났다. 두 달 치 기타 레슨비를 털어 데려온 강아지도 아파서 죽어버렸다. 장우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단지 우스꽝스러운 가사와 허접스러운 유튜브 영상 때문에 유명해진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장우는 아직도 음악을 앨범 단위로만 듣는 사람이었다. 장우에게 앨범은 첫번째 트랙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생명력을 지니는 하나의 작품이었다. 심지어 장우의 가방에는 아직도 씨디 플레이어가 들어 있었다. 물론 휴대폰으로 듣는 일이 더 많았지만 그럴 때에도 장우는 무조건 앨범 전체를 다운받아 들었다. 





 음악을 대하는 장우의 신념은 꽤 확고하다. 장우가 유명해지기 시작하며 걸려온 수많은 캐스팅 전화 중 유미는 평일 공연을 거절했지만 장우는 그게 못내 아쉬웠다. 관객이 적다는 평일 공연에서 제 노래에 집중하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것 역시 좋아했기 때문이다. 유미를 만났던 것도 그 평일 공연이었으니 변해버린 여자친구가 낯설기만 하다. 확고하고 정직하지만 아둔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이런 신념은 결국 계약을 망쳐버리기도 한다. 냉장고송은 장우가 생각하는 진짜 음악이 아니어서, 디지털 싱글은 책을 몇 짱만 찢어 읽는 것처럼 ‘말이 안 되는’ 일이기 때문에….



 자신이 하는 일에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중요하다. 더군다나 장우처럼 하나부터 열까지 제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한테는, 이런 신념이 흔들리지 않는 중심축이 되어줄 거로 생각한다. 그러나 책장을 넘길수록, 이 중심축이 발을 디딘 곳은 현실이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다. 빠르게 변하고 가끔 내 생각과 다를 수 있지만 결국 내가 살아가야 하는 곳, 내 중심축이 발을 디디고 있을 곳은 현실이다. 하지만 허상에 축을 세운 장우는 자신을 현실의 땅으로 부르는 유미와 소속사 대표의 말을 무시한 채 고집을 부리다 결국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 정우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소설에서 정우는 괴로운 감정을 토로하지도 않고 크게 후회하지도 않기 때문에 얼핏 보면 달라진 게 없어 보이나 실은 가장 중요한 것을 잃었다. 자신을 신뢰해주는 존재. 음악을 택하며 아버지의 신뢰를 잃고, 계약이 불발되며 유미를 잃고, 종국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반려견 보리를 잃었다. 심지어 회복할 기회마저 제 손으로 날려버렸다. 아버지를 설득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고, 뒤늦게 걸려온 유미의 연락에도 돌아오라는 말을 하지 않았으며, 이전부터 아팠던 보리를 빨리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다. 이런 점들이 장우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조금씩 장우를 현실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 같다. 



누군가는 이렇게 물을 수도 있겠다. 이상을 좇으면 안 되나요? 장우가 원하는 행복이 다른 형태일 뿐이잖아요. 장우는 성공을 원하지도 않았고 돈을 많이 벌고 싶어 하지도 않았으니까, 어쩌면 장우가 지금 발 딛고 서 있는 그곳이 장우에게는 현실일 수도 있지 않겠냐고. 이런 생각에는 나도 어느 정도 동의한다. 장우가 불행하리라 판단하는 것은 멋대로 장우의 인생을 재단하는 일이다. 그렇지만 장우가 원하는 건 확실하다. 반려견 보리를 데려올 때 ‘저 개가 분명히 자신을 원하고 있다는 이상한 확신이 들었다. (...) 아무런 조건 없이 그냥 네가 너여서 좋다는 그 눈빛.’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보면 장우는 누군가의 조건 없는 믿음과 사랑을 바라고 있다. 얼마나 이기적인 생각인가? 아버지와 여자친구가 장우에게 멋대로 기대를 품은 것은 물론 장우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었고, 그들의 자유다. 그들의 기대를 저버린 것 또한 장우의 자유고. 자신이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들의 기대를 산산조각 내버렸다면 그들의 신뢰 또한 잃을 준비를 했어야한다. 나는 마지막으로 장우에게 남겨졌던 보리마저 장우가 선택했던 최후의 도피처라 느껴진다. 잘 길러주기만 하면 무한한 신뢰와 애정을 주는 존재로 반려견을 택한 것이 괘씸하다. 장우는 앞으로도 그럭저럭 살아갈 것이다. 굶어 죽지 않을 정도로 돈을 벌고, 좋아하는 음악을 하고, 어쩌면 또 누군가를 만났다가 헤어지면서. 


그러나 장우가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는 결핍감은 결국 현실에 발을 디뎠을 때 채워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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