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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솜 PD Aug 26. 2021

<100일 글쓰기> 03. 작은 것부터 시도하기

완벽해지려다 아무것도 될 수 없었던 시간들

'완벽주의'라는 말은 얼핏 들었을 때 좋아 보인다. 일단 '완벽'이라는 단어에서부터 성실함과 완결성이 느껴지지 않는가. 그러나 이 '완벽'을 따지다가 정작 시도부터 하기 전에 포기하거나, 때가 되지 않았다고 차일피일 미루거나, 결과물이 '완벽'하지 않다며 쉽게 그만두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그렇다.


이런 내 문제를 알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내가 지닌 완벽주의는 게으름과 한 끗 차이, 아니 어쩌면 완벽주의보다는 게으름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완벽주의에 풍부한 상상력이 더해지니 달성해야 할 목표는 한없이 높아져만 갔고 아이러니하게도 꿈을 꾸면 꿀수록 나는 그 꿈과 멀어졌다. 


그중 하나는 바로 외주 플랫폼에 내가 팔 수 있는 일을 등록하는 거였다. 완벽주의를 고치는 방법으로 흔히들 아주 작고 사소한 것부터 시작하라고 조언한다. 그리하여 나도 마음을 먹고 아주 작고 사소하게 플랫폼 홈페이지에 들어가 회원가입을 했다. 그리고 컴퓨터를 껐다. 몇 주 뒤, 플랫폼에 올라온 여러 서비스를 둘러보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자신을 홍보하고 상세페이지를 제작했는지 살펴보았다. 그리고 컴퓨터를 껐다. 그 뒤는 언제나 똑같다. 


해야지, 해야지, 해야 되는데.... 


차라리 안 할 거라면 깔끔하게 떨쳐내기라도 하든가. 막연하게 '해야 되는데'라는 생각만 마음 한구석에 찝찝하게 남겨둔지 몇 달이 지났을까. 드디어 각을 잡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기실 정말로 '해야겠다.'라는 의지와 필요성을 느껴서라기 보다는 그 찝찝한 마음을 당장 치워내고 싶어서였다. 어쨌든 다른 사람 페이지도 참고하고 어떻게 나를 포장할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하며 서비스를 만들었다. 심사 요청을 하고 나니 마치 엄청난 일을 한 듯 뿌듯했다. 그래. 이 맛에 새로운 시도를 하는 거지. 그러나 이틀 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확인한 건 서비스 신청이 반려되었다는 알림 메시지. 가이드라인을 꼼꼼히 확인하며 다시 페이지를 수정해나갔다. 그리고 드디어 서비스가 승인되었다.


그래서 그 외주 서비스로 돈을 벌었냐고?


한 푼도 못 벌었다. 혹시나 알림을 놓친 건 아닌가 싶어서, 서비스를 올린 뒤 3일 동안은 매일 홈페이지에 들락날락거리고 어플을 다운로드하여 알림 설정도 다시 해봤다. 하지만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다. 사실 올릴 때부터 긴가민가 하기는 했다. 내가 제공하는 서비스는 카테고리에조차 없어서, 그나마 비슷해 보이는 [상담] 카테고리를 비집고 들어갔고 각종 심리상담, 취업상담, 타로카드 상담 등이 가득한 페이지에 내 서비스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그래도 크게 아쉽거나 들인 시간, 노력이 아깝지는 않았다. 어쩌면 정말 내 목적은 '돈을 벌어야겠다.'가 아니라 '그 플랫폼 나도 한번 이용해보자.' 였던 것 같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2주 전에 첫 의뢰가 들어왔다. 이 역시 아침에 메시지를 확인했다. 전날 밤 누군가 내 서비스를 결제했다는 알림. 구매자로부터 온 채팅.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진짜였다. 첫 서비스인 만큼 꽤 열심히 했다. 정해둔 분량을 초과해서 이것저것 내용을 담아 결과물을 발송했다. 내게 남은 건 수수료를 떼고 나니 커피 한 잔 값, 그리고 감사하다는 리뷰. 애초에 돈을 벌 생각이 아니었어서 그런가? 이걸로도 나는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작은 것부터 시도하라.'는 교훈을 깨달은 일화는 여기서 끝이냐고? 이제 시작이었다.


처음 내 서비스를 구매하신 분께 며칠 전 연락을 받았다. 지금 사업을 하는 중이 시고, 이번에 준비 중인 상품에 내 전문지식이 필요한데 일을 맡아줄 수 있겠냐고. 처음 받아보는 제안에 손이 떨리고 메일을 답장하는 사소한 일부터 내가 스스로 내 일에 가치를 매기고, 견적을 내는 것까지 모든 게 새롭고 조심스러웠다. 그러는 와중에 메일을 회신하며 내 sns 주소를 첨부했다. 나는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을 운영 중이고 글 작성부터 사진, 영상 촬영/편집이 가능하니 홍보가 필요하시다면 협찬해드릴 수 있다고. 보내고 나서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다. 너무 당돌했나? 내게 맡긴 업무랑은 전혀 관련이 없기는 했지. 돈을 너무 밝힌다고 생각하는 거 아냐? 메일을 보내기 전에도 고민을 꽤 많이 했으나, 내게 용기를 불어넣어 준 건 며칠 전 봤던 유튜브 영상이었다. '누워서 돈 벌기' 채널의 허니 블링님과 '챌린지유' 채널의 챌린지유님은 프리랜서로 일하기 위해 나를 알리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하셨다. 그 말만 믿고 대뜸 링크를 보낸 거다. 인플루언서에 비교하면 팔로워도, 투데이도 턱없이 적은 내 계정을. 그리고 기쁘게도 긍정적인 답을 받았다. sns 마케팅 역시 내가 직접 콘셉트와 견적을 짜서 보내달라 하셨다. 좀 더 시간을 달라 말씀드렸고, 이 역시 처음 해보는 일이라 걱정되지만 오히려 그만큼 내 자율성이 높고, 스스로 아이디어를 낼 수 있고, 공부하고 시도하고 실패하는 과정에서 성장할 수 있다는 생각에 좋다.


다음 날은 또 다른 연락을 받았다. 론칭 준비 중인 건강 플랫폼에 올릴 전문 칼럼을 작성하고 이후에도 큐레이터로 활동하는 일이었다. 칼럼이라니. 말만 들어도 설레는 단어다. 단번에 수락했고 추후에 메일로 더 자세한 안내를 받기로 했다. 


이 모든 일이 아직 신기하고 현실감이 없다. 나는 플랫폼에 간단한 서비스를 올렸을 뿐인데 이렇게 다른 기회로까지 뻗어나간다는 것이. 그리고 회사라는 매개체가 없어도 내 지식과 능력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지금 하고 있는 일과 내가 최종적으로 원하는 일의 괴리, 요즘의 관심사, 아직 '사소한 것'도 두려운 분야 등 고민거리는 여전하다. 이는 <다능인의 성장 기록>이라는 주제의 글에서 더 자세하게 풀겠다. 마지막으로,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런 일을 겪고 나서 읽으니 참 와닿았던 문장. 






좁거나 넓게 보다는 '가볍게'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가볍게 시도해 보고, 거기서 배운 게 있다면, 그걸 적용하기 위해 또 다른 시도를 해보는 거다. 거기서 또 뭔가를 깨달으면 다시 시도해 보고, 그러다 보면 시도하기 전과는 다른 환경이 만들어진다고 믿는다. -윤성원, <인디펜던트 워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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