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수평적 소통의 성공에 대하여

윗사람의 경청과 배려는 왜 실패하는가

수평적 소통은 관료화ㆍ정치화된 조직을 되살리는 거의 유일한 길이다. 모든 경영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이고, 많은 리더가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 실패한다.


수평적 소통이 실패하는 이유는 소통의 노력(WHAT)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수평적이지 않은 소통(HOW)을 하기 때문이다.


오래전 "경청배려(傾聽配慮)" 문구의 액자를 소중히 갖고 다닌 임원 한 분이 있었다. 후배가 선물했다면서 자랑을 했다. 대체로 이런 선물은 존경의 뜻으로, 말하자면 평소에 경청과 배려를 잘했기에 선물을 했거나 혹은 경청이 부족하니 좀 챙기라는 조언의 뜻일 것이다. 액자 덕분인지 그 임원은 소통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직원들에게는 다른 임원과 특별히 다르지 않았다. 그 임원이 열심히 소통을 했음에도 결국 실패한 이유는 수직적 소통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수직적 상하관계의 소통은 윗사람의 판단에 따라 옳고 그름이 결정되기 때문에 아무리 깊은 경청을 하고 많은 배려를 해도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 소통하자고 해서 진지하게 얘기를 했는데 마지막에 윗사람이 자기 기준으로 판단하고 끝을 내버리면 허무하지 않겠는가?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건의 혹은 주장하는 것이라면 이른바 "계급장 떼고 맞짱 토론"을 해야 한다. 그래서 윗사람이든 아랫사람이든 스스로 잘못된 생각이었음을 납득해야 하고, 그때 소통이 성공된다. 통상 잘못된 방법으로 소통에 적극적이면 VDL이론에서 말하는 "내집단(In-Group)"이 형성되면서 조직이 정치화되는 부작용이 초래된다. 이와 같이 소통은, 특히 수평적 소통은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


일반적으로 난상토론은 정치권의 여야 토론처럼 쉽게 합의에 이르지 못하는데, 그 이유는 판단의 기준과 원칙이 없기 때문이다. 참고로 조직이 합의에 의한 의사결정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관료제다. 직위에 맞게 역할과 책임을 정해두는 것이다. 이 방법은 상명하복에 의존하며 수평적 소통은 불필요하다. 다른 하나는 미션과 같은 경영이념을 공유하는 것인데, 유기체적 조직을 지향하며 직장 민주주의 원리가 적용된다.


아무튼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또한 조직이란 여러 제약요인들이 있기 때문에 때때로 합리적이지 못한 결정이 불가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평적 소통을 원한다면 "옳고 그름에 대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합의도 되고 설득이 된다. 예컨대 이미 결정된 것이어도 기준과 원칙에 어긋난 것이라고 이의를 제기하면 바꿀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소통, 특히 수평적 소통을 성공시킬 수 있는 HOW다.


상명하복으로 일할 때 "옳고 그름에 대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은 매우 불편하고 번거롭다. 그래서 올바른 HOW가 가능하려면 반드시 WHY가 전제되어야 한다. "왜 수평적 소통을 하는가?"라는 고민에 대한 답이 WHY다. WHY가 견고하지 않다면 굳이 불편한 기준과 원칙을 견지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원래 WHY는 WHAT FOR와는 다른 개념이지만, 이해하기 쉽게 "목적"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결론적으로 수평적 소통의 성패는 그 이유와 목적이 어느 정도로 올바르고 절박한가에 따라 결정된다. 그래서 수평적 소통을 시도한다면 우선 WHY를 명확히 하고, WHY에 적합한 HOW를 선택한 이후에, HOW를 성공시킬 수 있는 WHAT을 실행해야 한다.


한편, 혁신이 필요한 심각한 상황의 조직이 아니라면 조직의 미션이나 핵심가치와 같은 경영이념이 바로 HOW라고 봐도 된다. 공기업의 경우는 설립목적 혹은 존재이유 등이 HOW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경영이념이 명확하지 않거나 혹은 의사결정의 기준이 되지 않는 상황이라면, 말하자면 혁신 혹은 경영이념 재정립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반드시 WHY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런 상황임에도 만약 쉽게 생각해서 일상적인 지시로 소통을, 특히 수평적 소통을 지시한다면 거의 실패한다고 단언할 수 있다.


P/S;

WHY는 경영이념이나 경영방침에 관련된 것이므로 아무나 정할 수 있는 사소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만약 누군가 내게 "수평적 소통이 왜 필요하냐?"라고 묻는다면, "아랫사람이 답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답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자성(自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