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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달희 Jun 15. 2017

제주에서 만난 노랑, 그리고 노자

-제주 남이섬 노랑 축제

물은 낮은 곳에 머물면서 만물을 이롭게 한다.
―노자 도덕경     

창조의 컬러 코드노랑


창조란 무엇인가를 행동으로 보여주던 ‘몽상적 실천가’ 남이섬 강우현 대표가 4년 전에 제주도로 옮겨 무슨 일을 꾸미고 있다는 정보가 입력되었다. 기대와 호기심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가 벌인 일을 확인하고 싶었다. 제주로 떠나면서 날 것으로서의 정보를 얻기 위해 제주 관련 SNS에 ‘노랑 축제 어떤가요’ 하고 현지인들에게 물었다.     


“꼭 다녀오세요. 저도 이 주 연속 다녀왔습니다. 너무 좋습니다. 아기자기하고 아직 시작이지만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좋습니다.” 

“노랑꽃과 예술가들이 만든 축제입니다. 정말 감성이 풍부한 축제입니다.”     


정말을 다섯 번이나 강조한 응답에 망설임 없이 그가 ‘탐나라공화국’이라 이름 붙인 제주 남이섬(제주시 한림읍 금악리 81-9)으로 바로 떠났다. 6월 11일이었다. ‘대자연으로부터 오는 노랑 상상의 모든 것’을 주제로 올해 처음으로 열리는 노랑 축제는 6월 2일부터 한 달간 열린다. 여느 문화관광축제와 달리 150개 민간단체가 힘을 합치는 민간인의 협업, 즉 품앗이로 이루어지는 이 축제에서 탐나라공화국은 판을 깔아주는 역할이다. 형식적인 이벤트도 없고, 축제를 알리는 홍보물도 없고, 입장료도 없다. 하지만 노란색 조끼를 입은 스태프들에게 다가서자 모두 밝은 미소와 머뭇거리지 않는 친절함에서 살아있음이 느껴졌다. 그건 ‘자발적인 참여에서 오는 역동성’이었다.     

제주 남이섬 강우현 대표와 함께

그런데 왜 노랑이지? 노랑이란 색에 의미를 부여한 축제의 타이틀은 여름을 알리는 노란색 꽃들인 금계국과 루드베키아가 이 일대에서 군락을 이룬 데서 따왔다고. 이것은 ‘색(色)’을 잘 아는 아티스트 강우현 대표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노랑은 심리적으로 자신감과 낙천적인 태도를 갖게 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도록 도움을 주는 색채이면서 풍요로움을 나타내기도 한다. 또한 검은 현무암 속에서 노랑은 시선을 강렬하게 끄는 안전색채(安全色彩)라는 점은 제주 남이섬과 강우현 대표를 바로 ‘아하’하고 이어주는 맥락적 이해의 컬러 코드(color code)이기도 하다.    

   

제주 남이섬 밑그림무위자연

세 개의 오름이 주위를 에워싼 언덕배기 들판 약 3만 평의 탐나라공화국(아직 홈페이지도 없는)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빙글 돌게 만든 길은 반듯하게 낸 직선이 아니라 화산의 섬 제주, 그 땅의 주인인 검은 현무암 바위들의 사이로 난 구불구불한 길이다. 제주도의 독특한 자연이 창조한, 그 거칠고 투박한 스카이 라인을 인간의 관점과 편의를 위해 훼손시키지 않고 잘 살렸다. 구석구석 몽상적 실천가 강우현 대표의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손길이 안 닿은 곳이 없었다.      


길이 없어 길을 내고, 산이 없어 산을 만들다.
물이 없어 하늘 빗물 연못에 담다.
여기 생명이 깃들다.     

 

입구에 세워진 표지 글에 새겨진 이 말에 그동안 여기서 그가 했던 일들이 무엇인가 그대로 담겨있었다. 4년 전 가평 남이섬에서 직원 5명이랑 같이 내려와 포클레인으로 온종일 온 직원이 땅만 팠다. 크고 단단한 바위를 피해서 팠더니 고부랑 길이 됐다. 파낸 흙은 옆 언덕에 차곡차곡 쌓았다. 그렇게 제주 남이섬에는 길과 산, 계곡과 연못들이 생겼고, 꿈틀거리는 용을 발견했다. 현무암을 녹여 도자기를 만들고 기념품을 만들었다.    


밑그림 없이 시작한 일이 하다 보니 없음(無)에서 있음(有)이 탄생한 것이다. 무와 유의 사이에는 길, 그러니까 도(道)가 있었다. 노자가 떠올랐다. 노자(老子)는 우주 만물이 이루어지는 근본적인 이치가 곧 ‘도(道)’라고 했고, 진리인 도의 길에 도달하려면 자연의 법칙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이 ‘무위자연(無爲自然)’ 사상이다. 중국 허난(河南) 성에 있는 노자의 고향으로 달려갔다. 허난성 노자 연구원장이 “노자 도덕경 5천 자를 다 외우는 학자들도 한 글자를 못 써먹는데 노자를 모른다는 강 선생은 세 글자나 쓰고 있다”며 놀랐다. 내친김에 제주도에 노자 예술관을 짓겠다고 하니까 선뜻 노자 관련 서적과 노자의 고향 허난성의 항아리며 도자기 파편들을 기증했다. 그렇게 해서 제주 남이섬에는 노자 예술관이 지어졌다. 

“강우현 대표는 문화적인 고집이 뛰어나신 분입니다. 제주의 속살을 보여주자며 생명을 가진 풀들과 돌들을 그대로 내버려두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시려고 합니다. 잠도 안 자고 4년째 직원들과 손으로 돌을 쌓고 있습니다. 위대한 자연을 조각하는 예술활동이므로 우리는 노동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전직 산업디자인 교수 출신으로 깊은 내공이 엿보이는 안내를 해준 백발의 직원 구 아무개 씨의 말이다.     


스토리텔링버려진 것에 생명을 불어넣다

제주 남이섬의 시설물의 70%는 재활용품들이다. 주거용 집을 지으면 허가가 나지 않는다고 낡은 집들의 목재와 기와로 집 모양과 누각을 만들어 볼거리로 만들고, 지자체에서 버린 장식등, 극장에서 버린 객석 등으로 공간을 꾸미면서 버려진 것들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이야깃거리가 되게 해서 살아 움직이게 했다.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꽃씨를 가져와 뿌리게 했다. 그것이 제주 남이섬에서 만나는 풍경들이 낯설지 않고 친밀감이 느껴지는 이유다.      

“상상을 그저 생각으로만 가둬두면 공상, 망상, 환상과 같다. 그러나 상상을 실천으로 옮기면 현실이 된다. 김칫국부터 마실 수 있어야 자신의 상상을 끝내 현실로 만드는 용기도 나온다. 제주가 관광으로 경쟁력을 더 높이려면 부족한 것을 가져와서 채워놓아야 한다. 제주를 앞으로 '삼안도(三安島)'로 만들면 어떨까. '안녕', '안심', '안전'이다. 이 땅이 어떻게 변할지는 나에게도 미스터리이지만 토론을 행동으로, 자존심을 자신감으로, 방관을 관심으로 방향을 바꾸면 꿈을 이룰 수 있을 것.”     


‘제주경제와 관광포럼'에서 그가 한 말이다. 그런 그에게 제주 남이섬을 어떻게 하면 잘 즐길 수 있을까요 물었더니 이렇게 짤막하게 답했다.      


“편안한 마음으로 머물다 가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제주 남이섬과 강우현을 잇는 주제어이자 컬러 코드가 왜 노랑인가를 떠올린다. 거짓도 많이 하면 현실이 된다는 그의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있는지는, 그에게도 여전히 미스터리다. 그래서 그의 행동은 끊임없이 궁금증을 유발하고 사람을 놀라게 만든다. 작년 마지막 날 그는 비석을 세워 유언을 적었다.      


“상상과 땀방울로 버무린 손끝 자연 탐나라 땅은 오늘과 영원을 잇는 유산이다. 이미 죽은 몸이니 홀가분하다. 더 마음껏 놀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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