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책
정신(psyche)이란 마음(spirit), 영혼(soul), 관념(idea)의 조합이다.
-Carl Jung
분석심리학의 창시자 칼 융(Carl Gustav Jung)은 인간이 직면하고 있는 정신적 현실은 의식적, 무의식적 내부 과정의 합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인간의 정신활동이 이루어지는 내적 세계는 신체의 생화학적 과정에 영향을 주고, 본능에 영향을 끼치며, 개인의 외부 현실에 대한 지각을 결정한다. 사람이 무엇을 지각하는가는 그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서 결정된다. 그래서 정신은 바로 그 사람의 실체를 의미한다. 융의 이런 이론에 대해서 아직 반론은 없다.
그렇다면 한 개인의 실체를 규정하는, 그러한 정신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을 미국의 신경과학자 캔다스 퍼트(Candace Pert)가 그의 저서 <Molecules of Emotion : Why You Feel the Way Feel>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뇌의 신경세포에서 분비되는 전달물질인 뉴로펩타이드(neuropeptide)가 혈액을 통해 온 몸으로 흐르면서 신체의 각 부분과 소통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생각과 감정 그리고 뇌는 면역체계와 신경체계와 내분비 체계, 즉 우리 몸 전체의 기관과 직접 연결되어 있다. 또한 이러한 체계들이 편의상 분리되어 있기는 하지만 결국에는 하나의 체계를 이루는 부분들이다. 따라서 자궁, 난소, 백혈구, 심장이 뇌와 똑같은 화학물질을 만들어낸다면 ‘정신은 우리 몸의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에 ‘정신은 우리 몸 전체에 있다’라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이론적 전제에 합의를 하고 있는 필자는 이 책의 제목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에 끌려서 책을 단숨에 읽었다. <세포에게서 배우는 포용과 선택>이 바로 그 책이다. 원제는 <세포의 비밀 : 몸에 있는 내면의 지혜를 찾아서 Secret of Your Cells_Discovering Your Body’s Inner Intelligence>. 지은이인 손드라 배릿(Sondra Barrett)은 생화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캘리포니아 의대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면역학과 혈액학을 연구했고, 표현예술치료와 기공과 정신세계를 연구해오고 있다. 지은이의 웹사이트(http://sondrabarrett.com)에 들어가 보니 와인의 세계에도 깊이 빠져 있다. 표지를 펼치자 이런 안내의 글이 호기심을 불러일으켜주었다. 바로 내가 찾고 있는 바로 그것이었다.
“이 책은 생물학을 다룬 책이 아니다. 이 책은 우리가 세포 여행을 통하여 세포가 생명을 담는 그릇이고, 세포 하나하나에도 마음이 있으며, 진정한 나 자신이 누구인지를 밝히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현미경을 통해 볼 수 있었던 존재함의 미시적인 차원의 세계에서 우주적인 대자연의 법칙을 발견한 지은이는 서문 첫 줄에 ‘나에게 생물학적 세포계와 정신계를 연결시켜준 여행은 나의 자아와 신념을 계속해서 깨뜨려 나가는 길고 고된 여정이었다’라고 쓰고 있다. 이 말에 몸을 통해 아픈 마음에 다가가 온전한 존재로의 회복을 촉진하는 통합적인 치유작업을 하는 필자는 마치 동지를 만난 듯 기뻤다. 그리고 지은이는 치료자로서 병원 감염으로 생명의 치명적인 위협을 받으며 극적으로 삶의 방식을 바꾸며 생명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진지하게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절박한 상황에서 직면한 고통의 여정 속에서 참된 것, 그 본질과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세포는 우리의 몸을 이루는 기본 단위다. 세포는 생명을 유지하고, 끊임없이 분화하면서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내기를 반복한다. 즉, 생명의 그릇이면서 나를 이루는 최소한 생명체 단위가 세포인 것이다. 그러한 세포를 관찰하면 ‘나’를 볼 수 있다. 끊임없이 분열하고 죽고 나기를 반복하는 세포로 이뤄진 내 몸의 변화를 관찰해 보라는 것이다.
그가 세포를 통해 발견한 것은 신성(神性)이었다.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세포의 분자들은 포옹(molecular embrace)하면서 연결되어 서로 끼워 맞춰지며 견제와 균형, 밀고 당김, 협력과 대화라는 섬세하게 설계된 생명의 교향곡을 펼친다는 것이다. 그것으로 볼 때, 세포에는 ‘지성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하다고 느꼈다. 그와 함께 ‘우리가 서로 포옹하는 것은 우리 분자들의 포옹하는 바로 그 본성과 능력 때문이다’라는 예수회 신부이자 생물학자였던 피에르 드 샤르뎅(Pierre Teihard de Chardin)의 말을 인용한다.
“우리의 세포는 신으로부터 신성한 불꽃을 부여받은 분자들의 친밀한 포옹으로 형성되어 있다. 그들은 신성한 사랑을 담는 성스러운 그릇이며, 지금 여기에서 연결을 추구한다.”
사회적인 존재인 인간이 서로 연결되어 살아가는 것처럼 우리 몸의 모든 세포들도 연결되어 존재한다. 세포들을 역동적으로 연결하는 연결망은 서로 반대로 작용하는 장력과 수축의 균형을 통해 스스로 안정시키고 지지하는, 거미줄과 같은 ‘텐세그리티(tensegrity)’ 구조로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구조적 원리가 우리 몸을 구성하는 미세 요소들과 우리 의식 모두에 작용할 수 있다는 생각은 놀라운 발견이었다. 텐세그리티의 도움으로 세포들은 형태를 바꾸고, 움직이고, 자라며, 무엇을 할지 ‘선택’한다. 그들은 긴장과 이완을 통해 우리를 관리한다. 지은이는 과도하게 지속되는 긴장으로 발생하는 몸과 마음의 문제를 풀기 위해 ‘이완’을 통한 치료적 개입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세포를 통해 각자 내재된 영적 잠재력을 일깨우면 몸에 활력이 일어난다고 하면서 이렇게 인도한다. 이러한 탐구와 성찰의 인도가 매 장마다 곁들여서 내 몸의 세포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해주는 것도 이 책의 특징 중 하나다.
“약 5분 정도 시간을 투자해서 편안한 자세로 앉아 ‘내가 내 몸의 세포’가 되어본다고 상상해보라. 그리고 내 몸의 어떤 부분을 이루는 세포가 되고 싶은지 생각해보라.”
지은이는 삶의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해서 세포의 속성을 잘 이해하고 적합한 접근법이 무엇인가를 알게 이끌어준다.
집착을 놓아 버리는 법을 배울 때 우리는 정신적 여정에서 성숙해진다. 그것은 우리의 세포들도 마찬가지다. 어떤 것에 더 집착하고 더 긴장해 있을수록, 우리는 똑같은 것들을 더 많이 만들어 낸다. 똑같은 실수를 하고, 똑같은 프로그램, 몸, 그리고 세포를 만드는 것이다.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똑같은 오래된 것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스스로를 옭아매는 집착을 완전히 놓아버릴 때, 아마도 우리 세포들은 더 이상 실행할 필요가 없는 프로그램을 놓아 버릴 수 있을 것이다.
손드라 배릿은 치유와 성장을 위해 세포의 속성을 빌어 그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
인간의 학습은 ‘신경세포의 공동체’ 안에서 일어나고, 기억은 세포 에너지 연결망에 존재한다. 우리의 감각 채널은 특정한 경험들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면서 각각의 기억 정보들은 우리 몸 전체에 파동으로 저장된 홀로그램(hologram)―실제와 똑같이 입체적으로 재현되는 영상―으로 존재한다고 한다. 몸과 마음이 연결되어 있는 세포들은 학습할 때 감각적 조건들이 연결되는데 심리학자 어니스트 로시(Ernest Rossi)는 이를 상태 의존적 학습이라고 부르고, 신경심리학자인 칼 프리브램(Karl Pribram) 교수는 홀로그램이라고 부른다. 냄새, 소리, 느낌, 감각 등 마음속에 있는 다차원의 그림으로부터, 이전 경험과 연관된 홀로그램의 감각 상태를 만든다. 어떤 감각이든 경험 전체를 불러오는 방아쇠가 될 수 있다. 홀로그램의 이론처럼, 그는 어떤 기억을 놓아버리려고 할 때 파동들이 나를 떠나는 것을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의 마음은 우리 몸에 있는 모든 세포 하나하나에 존재한다. 만일 한 개의 세포가 마음을 바꾸면 서로 홀로그램의 파동으로 연결되어 있는 나머지 세포도 함께 움직여 공명할 것이다. 이를 근거로 존재함의 근원인 대자연의 신성과 인간 개체인 나 자신 그리고 내 몸의 모든 세포들의 연결이 잘 이루어지도록 도울 수 있는 방법은 ‘심상화(心象化, Imaging)’라고 강조한다. 이것은 내가 이루고 싶은 현실, 변화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내 몸과 마음의 상태 치유와 성장의 그 상태를 온전하게 온몸과 마음으로 체감하며 시각적인 이미지로 떠올려 이것이 나의 현실이다라고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지은이는 세포를 통해 인간과 자연, 생명의 생성과 소멸, 포용과 선택을 말하고 있다. 내 몸과 마음이 힘들어 온전함을 잃은 취약한 상태일 때 필요한 것은 ‘쉼’, 그것은 바로 긴장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이완’이다. 내 몸의 모든 세포들에 생명의 에너지가 약동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집착을 놓아버리는 것’, 그리고 세포의 언어인 이미지는 우리 몸과 마음에 치유의 힘을 키워준다. 지금 질병과 여러 가지 어려움에 직면한 사람들은 이 책을 통해 어떻게 삶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할 것인가 세포들을 통해 많은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세포에게서 배우는 포용과 선택. Sondra Barrett지음. 김용환 ․ 원민정 공역. 학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