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심리학 12_대한민국은 지금 전 국민 정신의 위기상황
정신이 없다, 머리가 멍해요, 정신을 못 차리겠어요, 얘가 정신을 어디다 두고 다니는 거니. 내 정신 좀 봐. 요즘 이런 말들을 많이 한다. 이처럼 정신이 없는 사람들이 많다. 참기 힘든 지난여름의 무더위에 잇달아 최순실 게이트, 박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진 국내외 뉴스의 토픽들이 정신을 혼란스럽게 만든 스트레스 요인들로 작용했기 때문일 게다.
사고에 직면해서 두려움에 몹시 놀라거나,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이나 큰 일을 겪고 난 뒤 깊은 슬픔과 상실의 아픔, 또는 우리 사회 이 곳 저곳에서 분노를 일으키게 만들고 피해자의 아픔에 공감하게 하는, 세월호 침몰과 같은 빅 이슈의 사건들이 터질 때 우리는 이렇게 정신이 잠시 나간 상태가 된다.
마음은 광화문 광장에 나가 있고, TV 뉴스가 연일 속보로 내보내고 있는 이야깃거리에 눈이 머물고 있으니 영화나 책과 같은 문화 향유를 위해 눈을 돌릴 시간이 없고, 앞으로 정치적인 상황의 급변에 따라 경제가 어떻게 변동될지 모르니 주머니는 꼭 닫아 투자나 소비를 위한 지출은 거의 스톱 상태인 요즘이다. 이렇게 정신이 혼란스러우니 이런저런 크고 작은 사고가 많이 생기고, 실수도 다른 때 보다 많이 하게 된다. 서민들의 한숨소리는 깊어만 가고 있다.
최근 SNS에 지인이 '한 순간의 실수로 40만 원을 날린 남자의 이야기'라고 올린 글이 그런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나는 오늘 주유소에 갔습니다. 근데 요즘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온갖 사건들을 곰곰 생각하다가 경유차에 그만 휘발유를 넣고 말았습니다. 그 사실을 깨닫고 주유소 옆 카센터에 처리를 맡겼는데 처리비가 무려 30만 원, 휘발유값, 경유값 포함하여 무려 40만 원 가까운 돈을 순식간에 날렸네요. 아,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겠습니다."
도대체 정신은 어디에 있길래 가끔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우리를 정신없게 만드는 걸까? 우리 인간에게 정신의 실체는 무엇인가. 그에 대해서 의학적 논의보다는 오히려 철학적 논의가 오래되었다. 정신분석가인 칼 융(Carl Jung)은 ‘정신(psyche)이란 마음(spirit), 영혼(soul), 관념(idea)의 조합이다’라고 정의했다. 그는 정신적 현실을 의식적, 무의식적 내부 과정의 합이라고 보았다. 융에 따르면, 이러한 인간의 정신활동이 이루어지는 내적 세계는 신체의 생화학적 과정에 영향을 주고, 본능에 영향을 끼치며, 개인의 외부 현실에 대한 지각을 결정한다. 사람이 무엇을 지각하는가는 그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서 결정된다는 것이다. 정신은 바로 그 사람의 실체를 의미한다는 뜻일 수도 있다.
정신을 신체와 분리된 것으로 보지 않는 동양의학의 전통에선 인체를 전일적인 개체로 보고 그 원동력을 정기신혈(精氣神血)로 규정하고 있어서 보다 합리적인 접근을 하고 있다.
정(精)은 신장의 정액,뇌와 척추를 흐르는 척수액,뼈 속의 수액 등 인체를 이루는 가장 기본이 되는 미세한 물질로 부족해지면 빨리 늙고 머리가 어지럽고 다리가 무겁고 뼈가 약해진다. 기(氣)는 생명 활동을 영위하는 무형의 근원적 에너지다. 정이 물질적 개념이라면 기는 무형적이며 인체 변화를 일으키는 보이지 않는 힘이다. 부모로부터 받은 선천의 기, 자연과 음식물에서 얻어지는 후천의 기로 나뉜다. 신(神)은 기에서 비롯된 생명의 정화로서 '정신'을 의미한다. 혈(血)은 기의 작용에 의해 생체를 순행하면서 영양분을 공급하는 유형의 물질로 주로 음식물에서 얻어진다. 혈은 서양 의학의 '피'에 한의학의 '정' 개념이 혼합돼 있다.
정기신혈은 따로따로가 아니다. 정으로부터 기가, 정과 기로부터 신이, 정ㆍ기ㆍ신으로부터 혈이 생기는 관계가 있다. 따라서 정신의 실체라고 할 수 있는 신(神)은, 우리의 정신 사유 활동을 담당하고, 가장 차원이 높은 세계이지만 우리의 몸과 마음의 전반적인 균형과 조화의 상태에 따라 상태의 변화가 실제 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모든 것이 균형 잡힌 조화로운 상태에 있을 때 정신은 최적의 신체적 활동과 함께 더욱 안정되어 공고하게, 그리고 정묘하게 창조적 활동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서양 의학자들은 정신의 실체에 대해서 언급을 피하고 있다. 보이지 않고 확인할 수 없는 '과학적으로 입증 불가능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서양 의학자 중에도 정신의 실체에 대해서 이렇게 용감하게 말하는 이도 있다.
미국의 신경과학자 캔더스 퍼트(Candace Pert)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뇌의 신경세포에서 분비되는 전달물질인 뉴로펩타이드가 혈액을 통해 온 몸으로 흐르면서 신체의 각 부분과 소통을 한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생각과 감정 그리고 뇌는 면역체계와 신경체계와 내분비 체계, 즉 우리 몸 전체의 기관과 직접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체계들이 편의상 분리되어 있기는 하지만 결국에는 하나의 체계를 이루는 부분들이다.
따라서 자궁, 난소, 백혈구, 심장이 뇌와 똑같은 화학물질을 만들어낸다면 "정신은 우리 몸의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에 "정신은 우리 몸 전체에 있다"라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Molecules of Emotion : Why You Feel the Way Feel, New York : Scribner, 1997
여기에 동의하는 미국의 산부인과 의사인 크리스티안 노스럽(Christiane Northrup, M.D)도 그녀의 책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Woman's bodies, Woman's wisdom))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제 정신을 뇌나 지능으로 한정시켜 편협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정신은 우리 몸을 이루는 모든 세포 속에 존재한다. 우리 몸의 세포는 모든 생각, 우리가 느끼는 모든 감정에 대해서도 그에 상응하는 생화학 물질을 갖는다."
따라서 이제 '정신은 어디 있는가'라는 물음에 이렇게 답할 수 있을 것이다.
정신은 나의 현존재의 영역에서 생명과 함께하는 우리 생명의 본질 그 자체이며 실체이다. 정신은 뇌의 어느 영역 또는 심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몸을 이루는 모든 세포에 우리의 정서적 결과물과 함께 존재하거나 또는 깃들어 있다.
충격적인 세월호 침몰 사건 이후 전 국민이 TV를 생중계로 지켜보면서 슬픔에 잠겼고 깊은 우울에 빠졌다. 구조 과정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사건 전말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채 음모론이 무성하면서 정권과 국가조직, 그리고 사회적 시스템에 대한 신뢰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었다. 이제 탄핵을 맞은 대통령의 자질과 리더십에 대한 배신감, 그를 이용하고 그이에게 달라붙어 온갖 비리와 부정에 연루되어 농단을 서슴지 않은 '정신 나간 자'들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정신은 우리 몸의 모든 세포에 깃들어 있고, 정신작용은 인간의 온전한 건강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고 한다면 지금 정신이 혼란스럽고 넋이 빠질 정도인 대한민국 전 국민의 위협적인 불건강 상태는 도대체 어떻게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이러한 국민 화병이 초래할 개인과 집단의 총체적인 불건강 상태는 어떻게 치유될 수 있을까. 국가적인 위기상황이며, 전 국민의 정신 위기상황이다. '위기가 기회'라는 말이 있듯이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할 텐데 이러한 정신적 혼란은 아무래도 오래갈 듯싶다.
https://www.youtube.com/watch?v=YwkX3y8IFp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