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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달희 Dec 04. 2016

알아차림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생의 심리학 03_Gestalt 심리치료 중심으로


이달희 사진

"알아차림 그 자체가 바로 치료적일 수 있다.”


게슈탈트 심리치료의 창시자인 프리츠 펄스(Fritz Perls)의 말이다. 요즘 심신수련, 종교, 자기계발, 심리치료 등 여러 방면에서 두루 쓰이고 있는 ‘알아차림’이란 용어는 일반적으로 통찰, 이해, 자각, 공감, 지각 등의 개념과 혼용되어 사용되고 있다. 명상을 과학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심리학은 ‘알아차림’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알아차림이란, 하나의 경험적 활동으로서 개체가 신체감각, 정서적, 인지적, 활동적 측면에서 개인적, 환경적 장(場)에서 발생하는 가장 중요한 사건들과 ‘깨어서 접촉’하는 과정이다(Yontef).

알아차림이란, 개체가 자신의 삶에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중요한 내적, 외적 현상을 방어하거나 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지각하고 체험하는 행위이다(김정규).


무엇을 알아차리며 어떻게 바라보고, 알아차림을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활용의 장(場)에 따라 방법은 다를 수 있으나 그 효과, 목적하는 바는 같다. 지금 여기 현존하는 현재의 나, 현재의 내 몸과 마음의 상태는 내 지나온 삶, 내 과거의 거울이란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알아차림은 우리 의식이 방어적인 저항을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하고 심리적 방어기제로 나를 옥죄던 무장을 해제하고 무의식의 문을 여는 때, 그리고 판단이라는 이성의 작용이 개입하지 않는 의식집중의 순간, 무엇인가에 몰입하고 있을 때에 온다.


게슈탈트 이론에서의 알아차림은 그 대상을 기준으로 볼 때, 크게 ‘현상 알아차림’과 ‘행위 알아차림’으로 나뉘어진다. 현상 알아차림은 신체감각, 욕구, 감정, 환경, 상황, 내적인 힘에 대한 알아차림 등으로 나눌 수 있으며, 이들은 상호밀접한 관계에 있으며 어느 한 영역에 대한 알아차림은 다른 영역의 알아차림을 증진시켜 준다고 한다. 그러니 몸, 마음, 내적인 힘에 대한 알아차림이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많은 경우에 있어서 욕구를 직접 자각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통해 자각하므로 감정을 알아차리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또한 감정을 알아차림으로써 해결되지 않은 마음 속의 과제를 해소할 수 있다.


이런 알아차림이 내 일상의 모든 순간에 이루어질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그것은 훈련에 의해서 가능하지만 너무 애쓰지 말기를 바란다. 집착하고 조바심 내며 안달할수록 나로부터 멀어지는 게 바로 이 알아차림이니까. 나의 관습적인 분별과 판단, 나의 의도가 개입되면 알아차림이 아니라 나의 인지작용, 그저 내 생각일 뿐이다. 멈추어 바라보면 내 눈을 가리고 있던 장애와 안개가 사라지고 본 모습이 보이게 된다. 대상과 하나가 되지만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알아차림은 자기 스스로가 ‘나’의 객관적인 관찰자가 되는 것이다. 내가 나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어보는, 패러다임 전환의 체험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체험은 명상이나 심신수련, 그리고 종교적인 의식을 치르면서 기도에 몰입 할 때에 가끔 만날 수 있다. 잠이 들기 전과 잠에서 깨어나기 바로 전, 조용한 길을 한가롭게 산책하거나 공원벤치에 편안하게 앉아 쉬고 있을 때와 같이 일상에서도 체험가능한 일이다. 또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알아차림으로 인도되거나 생명이 위급해지는 극한상황에서 체험하기도 한다. 알아차림의 채널은 그처럼 몸과 마음이 평온해지면서 이완 되었을 때, 그리고 모든 세포가 한계에 직면하게 되는 극한상황에서 주파수가 맞춰진다. 편안한 호흡과 적절한 자세는 마음의 문을 여는데 도움을 주는 보조열쇠다.


이때가 자기를 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다. 아직 젊으니까, 잘 나가고 있으니까, 두려울 것 없어, 난 해도 돼, 이 정도쯤이야 괜찮아 하면서 학대하며 돌보지 않았던 내 몸이 들려주는 신음소리를 들을 수 있다. 몸이 건강하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을 때에는 내 몸의 소중함을 잘 모른다. 몸은 언제나 큰 일이 벌어지기 전에 대비할 것을 미리 알려준다. 내 몸이 보내주는 신호, 그 경고의 메시지에 귀기울여야 한다.


그것은 내 속마음, 

나의 겉마음과 현재 내 몸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는 문제의 뿌리이자 본질과의 만남이다. 


그동안 내 삶에서 풀리지 않고 헝크러지고 응어리 진 채 있던 그 과거의 문제들과 지금의 내가 하나라는 생각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즉 ‘탈동일시(脫同一視)’가 알아차림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크나큰 선물이다. 그것이 우리가 가고자 하는 궁극의 지향점, 이른바 몸과 마음을 닦아 일상적인 몸과 마음의 상태를 초월한 ‘절대자유’를 얻는 ‘깨달음’이고 ‘해탈’의 첫걸음일 수 있고, 그렇게까지 높이 올라가지는 못하더라도 내 건강을 해치는 잘못된 생활습관을 바로 잡을 수는 있으니 얼마나 소중한 체험인가. 



http://somaticpsychotherapy.modoo.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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