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것'에 대한 갈증과 자유

퇴사를 마음먹은 이유는 단지 그것뿐이었다

by 숲 이야기집

이전 글에서도 밝혔듯 나는 자발적 백수 실험을 하는 중에 어플 제작을 도와주신 대표님과 인연이 닿아 도시재생 제안서 쓰는 일을 했다. 어플을 만든 후 그다음 행선지를 찾고 있었던 내게 대표님은 이제 막 시작하는 회사에 인턴이 필요하다며 혹시 도시재생 쪽에 관심이 있는지 물어보셨다. 신기하게도 도시재생 일은 내가 해보고 싶던 일 중 하나였다. 내 관심사, 대표님의 제안, 타이밍이라는 삼박자가 딱 맞아떨어져 별다른 고민 없이 도시재생 제안서를 쓰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관심만 가지고 있었을 뿐, 실제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잘 몰랐다. 3개월 동안 맨 땅에 헤딩하는 격으로 온갖 자료들을 뒤져가며 제안서를 완성했다.


일의 난이도와는 상관없이 어딘가에 소속되어 다시 일을 하는 건 꽤나 큰 안정감을 주었다. 하나의 제안서를 만들기 위한 공부와 자료를 찾는 시간도 일하는 시간으로 포함이 되고, 점심 식대도 지원이 됐다. 입출금 내역에 월급이 따박따박 찍히는 걸 보는 것만으로 안심이 됐다. 나 그래도 사람 구실은 하고 있네, 적어도 1인분의 몫은 하고 있네.. 하는 작은 위안. 무언가를 살 때 통장에 잔고가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하지 않고서도 그냥 살 수 있는 것에서 월급이 주는 안정감을 실감했다. 대표님 밑에서 일하면서 배우는 것도 많았다. 제안서를 구성하는 방법이나, 일의 본질은 결국 같다는 깨달음, 일에 대한 태도까지. 그러나 제안서 작성이 끝나고 나는 다시 퇴사를 했다. 별다른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단지 나는 나의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는 걸 확실히 알아버렸기 때문이었다.


사실 내 일을 하고 싶다는 갈망을 느낀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2017년 겨울 즈음에 작은 마케팅 대행사에서 일해본 이후로 '나의 것'에 대한 갈증을 처음 느꼈다. 일을 할 때 내 일인 것처럼 워라밸 구분 없이 아이디어를 짜내고 밤을 새웠지만 결코 '내 것'이라 할 수 없었다. 그저 내 노동력과 월급을 교환한 것뿐이었다. 그리곤 다른 브랜드를 위한 콘텐츠를 만드는 것처럼 내가 나를 위한 콘텐츠를 만들면 될 텐데 하는 약간 거만한 생각이 들었다. 그건 내가 해보고 싶다고 생각한 일을 하는 와중에도 똑같았다. 조바심이 일었다. 어서 나를 위한 콘텐츠를 쌓아야 하는데! 조바심이 생기니까 자리에 앉아 있어도 계속 딴생각이 났다. 창가에서 바라본 바깥 햇빛은 어찌나 따사로워보이고 점심시간에 잠시 나가 맞은 바람은 어찌나 기분 좋게 살랑이던지. 모든 게 다 퇴사를 위한 빌미가 되었다. 어쩌면 그걸 그토록 바랐던 것인지도 모른다. 나를 위한 일을 하면서 따사로운 햇빛과 살랑이는 바람을 누리는 것. 자유로움 또는 살아있음. 자유가 다른 게 아니라 저런 걸 누릴 수 있다는 게 바로 자유가 아닐까. 허세 또는 치기 어린 생각보다도 그게 나의 가장 솔직한 욕망이자 퇴사를 하고자 한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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