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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gang Aug 20. 2021

"그 완고함을 소중히 지키도록."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자네는 부드러운 얼굴을 하고 있지만 의외로 완고하니까.”
  웃음을 머금고 선생님이 말했다.

  “그 완고함을 소중히 지키도록.”


  차가 헤어핀 커브에 들어서고 있었다. 나는 대답을 할 수 없어서 가능한 한 선생님 몸이 좌우로 흔들리지 않게 핸들을 신중하게 돌렸다. 커브가 끝난 지점에서 겨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죽기 살기로 억지 부리는 사람은 얼마 없어. 대단한 탁견이 있는 것도 아니고 누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남이 이렇게 생각하니까, 세상이 이런 것이니까, 그런 정도의 생각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이야. 그런 사람들은 이쪽이 각오만 섰으면 밀어붙일 수가 있지. 물론 어디까지나 자기 아집을 관통시키려는 사람도 있어. 그런데 건축가로서의 신념이 문제가 되는 거야. 그 자리에서 자기 생각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는가는 평상시 어떻게 해왔느냐의 연장선상에 있어. 여차하면 저력을 발휘할 생각으로 있어도 평상시 그렇게 하고 있지 않았으면 갑자기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네.”


 <마쓰이에 마사시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상사에게  애정 어린 조언을 들어본 적 있는가.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를 읽으며 많은 밑줄을 그었다. 그 많은 밑줄 중 내가 으뜸으로 여긴 문장이 이것이다.

  첫 직장에 들어갔을 때는 정신없이 일을 배우고 익히는 데 주력하다 보니 이러한 조언을 들을 여유도, 들었다고 해도 기억하지 못할 만큼 바쁜 나날을 보냈던 것 같다.  결혼 이후 이동(이직)한 곳에서 이런 비슷한 조언을 내게 하시던 원장님이 있었다. 그땐 인사이동 개념이 아니라 동종의 다른 병원으로 이동한 것이었는데 경력직으로 들어갔다.

  그 은근히 나를 괴롭히는 동갑내기(호적상 동갑이지 실은 내가 한 살 더 많다. 난 호적에 1년 늦게 올려졌다.)의 직원이 있었다. 사수라고 해야 하나?(그녀는 먼저 입사했을 뿐 경력은 내가 더 많다.) 사수라고 말할 수도 없는 모호한 관계였다. 종일 그녀와 대치하다 퇴근하면 온몸에 피로가 몰려왔다. 대치라고 말할 수도 없을 것 같긴 하다. 그녀가 일방적으로 신경을 건드렸고 괴롭혔으니까. 에너지가 부족한 나는 일언반구 대꾸도 하지 않았다. 묵묵히 듣기만 했다. 그저 내가 해야 할 일만 뒤탈 없이 완벽하게 마무리하는 게 목적이었다. 그것이면 된다고 생각했다. 어찌하든 그녀는 날 괴롭혀야 할 사람이었으므로.


  어느 날 퇴근 후 저녁짓는 것도 잊은 채 넋 놓고 앉아 있었다. 퇴근한 남편이 깜짝놀라 눈으로 물었다.

  "왜그래?" 

 그만 울음이 터져버렸다. 영문도 모른 채 나를 안은 남편의 품에서 꺽꺽 더 서럽게 울었다. 내막을 안 남편은 당장 그만두라고 소리쳤다. 당장 때려치워라, 그 말이 그렇게 위로가 될 줄 몰랐다. 그녀는 결혼 전이었고 나는 결혼을 했으므로. 그녀에게 없는 남편이 나에게 있었다. 그것이 엄청난 뒷배가 됐다. 그 이후 나는 그녀의 괴롭힘이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다. 그녀와 적당히 화합했고 그녀의 딴지에 내색하지 않았다. 그저 나의 패턴으로 정직한 시간을 채워갔다. 그런 나를 지켜본 원장님은 출산휴가에 들어가는 나를 불러 놓고 어떤 제안을 하셨다. 개인 종합병원이었고, 중요 직책이었다. (그때 원장의 제안은 생각해보겠다 했지만 결국 거절했다. 나의 부족함을 내가 너무 잘 알기에. 주위사람들은 아까워했지만 나는 미련두지 않았다.) 그때 원장님께서는 무라이 선생이 주인공 ‘나’ 사카니시에게 조곤조곤 조언했던 저 문장의 비슷한 말을 내게 해 주셨다.



  “자네는 부드러운 얼굴을 하고 있지만 의외로 완고하니까.”

  “그 완고함을 소중히 지키도록.”



  나는 부드러운 얼굴을 하고 있지만 의외로 완고한 사람이다. 고집, 나의 일에 대한 완고한 그 무엇이 있다는 말이다. 의료보험청구(심사) 일을 할 때도 그랬고, 수업을 할 때도 그랬고,  지금 문학 활동을 하면서 관계되는, 일종의 일의 측면을 간과하며 적당하게 타협하지 않는다. 그랬기에 어떤 단체에서 최근 탈퇴했다. 정정당당하게 나의 말을 했다. 나는 그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 정직하고 성실한 나의 패턴을 지키며 살고 싶다.  


  이번 주부터 둘째가 신입사원 교육(재택교육)에 들어갔다. 큰애는 5년 차 직장인이다. 내가 내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도 바로 이 문장이다.



  “그 완고함을 소중히 지키도록.”



  그 자리에서 자기 생각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는가는 평상시 어떻게 해왔느냐의 연장선상에 있다. 여차하면 저력을 발휘할 생각으로 있어도 평상시 그렇게 하고 있지 않았으면 갑자기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 대단한 탁견이 있는 것도 아니고 누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남이 이렇게 생각하니까, 세상이 이런 것이니까, 그런 정도의 생각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인 세상에서 그래도 나의 완고함이 지켜지도록 지켜질 수 있도록 나를 브랜드화하며 살아내기를 바란다. 자기의 생각이나 철학도 없이 그저 남이 이렇게 생각하니까 세상이 이런 것이니까 나도 적당히 따라가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 책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았더니 지인이 빌려달라 했다. 그러나 내가 읽은 이 책은 빌려주기 싫었다. 아니 빌려줄 수가 없었다. 너무나 많은 밑줄을 그은 것도 있고 사이사이 메모를 해 놓은 곳도 많았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책이 내게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만 같아서였다. 사실 우리 집에 방문해서 책을 빌려 간 이 치고, 또는 이 책 너무 좋다 읽어봐라, 고 자진해서 빌려 준 책 치고 내게 다시 돌아온 책은 거의 없었다. 이 책도 빌려주면 돌아오지 않을 것만 같아 빌려주지 못했고 자진 도서관에 신청해서 빌려드렸다. 이 책에 대한 애정의 정도가 그렇다는 것이다.


 

올여름 휴가 중 머물렀던 숲속 휴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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