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세 걸음 이상 다가오지 않아 준 배려 깊었던 친구들을 떠올리며, 나에게 세 걸음 이상 물러나지 않아 준 한결같았던 친구들을 떠올리며 혼자서 설레어한다. 세 걸음 이상 다가가지도 멀어지지도 않는 것으로 누군가에게 우정을 다하는, 아직 만나본 적 없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설레어한다."
<김소연, 시옷의 세계>
무심하다, 도도하다, 차갑다, 이기적이다…는 말을 가끔 들을 때면 적응이 되지 않는다. 이 모든 것들은 나와는 거리가 먼 성품이라 확신하며 나는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말을 듣게 되면 나 아닌 다른 누군가가 내 안에 있나? 황당하고 억울하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봉착한다. 왜 이런 소릴 듣게 될까 곰곰이 생각해 본 것은 최근이다. 나는 표현에 서툰 사람이었고, 현재도 그러하다. 내 마음속 나는 타인에 대한 시선이 따뜻하고 세심하고 이타적이고 지극히 순박하다 여기는데, 그걸 마음속으로만 생각하고 표현하는 데에는 지독하리만큼 서툴다는 것이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적극적이지 못하고 지극히 소극적이다 보니 그에 대처하는 몸짓이나 표정도 딱 오해받기에 마땅한 것 같다. 내가 나를 봐도 이해할 수 없고 못마땅한데 타인이 바라보는 나는 오죽할까. 그러나 좀 더 깊이 나를 들여다보고, 조금만 더 기다려줄 줄 아는 사람은 나를 그렇게 판단하지 않는다.
김소연의 <시옷의 세계> 머리글인 저 문장을 읽고 무릎을 쳤다. 그래 맞아 바로 저거야. 내가 바라고 원하는 모습은 세 걸음이었어. 세 걸음 이상 다가오지 않아 준, 세 걸음 이상 물러나지 않아 준 한결같은. 그런 사람들! 그 세 걸음의 철학을 이해했던 사람들은 나를 따뜻한 사람으로 바라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던 것.
며칠 전, 린넨 핀턱원피스를 하나 장만했다. 나를 위한 선물이라고 우기며 기어이 샀다. 온라인 공구 매장에서 직접 제작한 원피스였다.(인터넷 구매옷을 이렇게 비싸게 구입한 건 처음있는 일)내가 최종 구매결정을 한 이유는 판매자가 쓴 문장 때문이었다.
"막 구석구석 예쁜데 막상 입고 나가려면 어쩐지 좀 과할까? 튀나? 그런 고민되는 옷들도 많잖아요. 핀턱원피스는 한눈에 쨍하게 예쁜 그런 옷은 아니에요~ 하지만 언제 어느 자리에 입고 나서셔도 그 자리에 전혀 어색함 없이 잘 녹아드는 매력이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잘 녹아드는 매력, 그런 옷이라니! 이런 스탈 원피스를 입어본 적 없지만 잘 소화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던 건 옷에 대한 상식도 없이 바로 이 문장 때문이었다. 믿을 수 있겠는가. 신기하게도 나는 쉽게 그러했다.
언제나 뜨뜻미지근해도 변함없는 사람이 있다. 훅 다가서지 않고 세 걸음 밖에 있지만 천천히 스며드는 그런 사람. 그런 사람이 오래간다는 걸 이 나이쯤 되어보니 알겠다.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은 알맞은 그 반쯤의 온도, 그런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