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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강에 한가한 유람선은 없다

나의 아가야

by leegang


이 강에 한가한 유람선은 없다. 거스를 수 없는 흐름에 이끌려 폭풍과 무풍과 침묵과 고독의 바다를 지나온 배들이 저마다 할당된 정박지에 다다른다. 엔진이 멈추고 돛이 접히면 기묘한 변화가 일어난다. 한 줄로 늘어선 인부들의 숙소와 대형 창고의 검은 벽들을 배경으로 갑자기 어수선한 굴뚝과 우뚝 솟은 돛대들이 어울리지 못하고 두드러져 보인다. 등 뒤로 바다와 하늘이 어우러지게 펼쳐진 전망도 사라지고 팔다리를 뻗을 넉넉한 공간도 이제는 없다. 마치 날갯짓하며 솟구쳐 오르다 발목이 붙잡혀 마른땅에 묶인 생명체의 모양새로 배들은 그 자리에 억류된다.

바다가 불어주는 소금기에 코를 벌름대며 템스 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배들을 지켜보기란 더없이 흥분되는 일이다. 대형 선박부터 작은 배, 낡은 배부터 화려한 배, 인도에서 러시아에서 남아메리카에서 오는 배,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오는 배, 침묵과 고독과 위험을 건너온 배들이 눈앞을 지나 항구로 귀향한다. 그러나 일단 닻을 내리고 기중기의 상하좌우 움직임이 시작되면 모든 낭만은 거기까지다. 정박한 배들을 지나 런던 시가지 쪽으로 방향을 돌리면 세상에서 가장 음울한 전망이 눈앞에 펼쳐진다.


<버지니아 울프, 런던 부두>





그래, 이 강에 한가한 유람선은 없어. 폭풍과 무풍과 침묵과 고독의 바다를 지나 런던 부두에 정박하기까지. 우리 삶이 그런 거지. 우리가 지금 각자의 저녁을 맞이하고 있다는 것도 어쩜 같은 선상이겠지. 폭풍과 무풍과 침묵과 고독의 바다를 지나 우리 네 식구도 여기에 섰다는 것. 각자의 처소에서 각자의 저녁을 맞이하는 요즈음의 우리. 아마 우린 각자 살아온 날들을 생각하고 있을지도. 내가 그러하니 아마 우리 모두 같은 마음 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 본다. 돛을 접은 이 저녁 모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니. 침묵과 고독과 위험을 건너온 배들, 런던 부두에 정박한 배들처럼 말이야.


나는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는 걸까?

“아직 오지 않은 나를 할머니라 부를 그 아이들…. 그런 일들에 대해 요즘 자주 생각한다”라고 지난 글에서 언급했었어. 그 이유는 나도 모르게 한 기도가 있었거든. 몸도 마음도 정결하게, 새 생명을 품을 거룩한 몸과 마음을 만들 수 있도록. 그리되도록. 내가 그런 기도를 하고 있었어. 나도 모르게 말이야. 그러던 차 들려온 새소식에 감격할 수밖에. 우리 모두 한 마음이 되어 맘껏 기뻐할 수 있었던 것 같아. 이보다 더한 기쁨이 어디 있겠니. 눈물로 이미 우린 만났네. 새생명과 말이야.


이제 너의 몸은 생명을 잉태한 거룩한 몸이 되었으니, 행동도 생각도 잘 가다듬는 그런 모체가 되기를. 이 기쁜 마음을 이 기쁜 소식을 나는 감히 누구에게도 말할 수가 없었어. 이 사실이 너무나 소중하고 감격스러워서. 너무나 성결하고 거룩해서. 행여 소모되기나 할까 봐. 이 정결한 소식을 어디에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 품고 있었던 거지. 3주가 지나고서야 비로소 여기에 글을 쓸 수 있게 되었어.

그리고 나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너를 잉태했던 그때를 오래오래 생각했어. 시간은 흘러 할머니와 엄마, 그리고 너에게로 이어진 세대. 우린 벌써 그런 세대를 건너가고 있구나. 지금 너는 세상의 모든 삼라만상이 고귀하게 보이진 않니? 작은 풀꽃도, 그 씨앗마저도, 작은 풀벌레조차도, 심지어 모퉁이의 작은 돌멩이까지도 말이야. 너를 품었던 그때 나도 그랬거든. 20대 젊은 부부는 새벽예배에 갔어. 내 몸은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생명의 모체라는 사실에 감격해서 말이야. 아빠와 나, 같은 마음이었을 거야. 그때 했던 기도 제목들을 생각해. 그러고 보니 그때 했던 기도들, 깨알같이 써서 나눴던 기도 제목들.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 그러나 때때로 격랑의 바다는 앞을 가로막았다는 것, 어찌 좋은 날만 있었겠니? '낭만은 거기까지. 정박한 배들을 지나 런던 시가지 쪽으로 방향을 돌리면 세상에서 가장 음울한 전망'이 눈앞에 펼쳐진다잖아. 우리 삶이 그렇다는 것이지. 그럼에도 행복했던 순간들이 더 많았던 것 같아. 감사하는 삶은 아무리 힘들어도 윤택해지더라고. 매일 큐티하며 신앙으로 그 모든 순간들을 이겨내고 품어왔다는 것. 그렇게 너를 잉태하고, 품고, 안고, 기다리며. 지금 여기까지 우리 걸어왔노라고 말하고 싶다.


세대와 세대를 거쳐 여기까지 우리 걸어왔구나, 생각하니 참 벅차다. 한 세대는 건너가고 또 한 세대로 이어지는 삶, 그런 인생. 우리 그렇게 건너오고 건너가고 있구나. 기뻐. 너무 기뻐. 그런데 말이야 그 기쁨 너머 알싸하게 건너오는 이 야릇하고 아픈 기분은 뭘까.


‘우리는 자기 몫의 격랑의 바다를 한 척의 배처럼 건너갈 것이지만, 가족은 그 건너가는 한 척의 배를 그이보다 더 격렬한 고통으로 바라보는 이들이다.’라고 문태준 시인께서 이미 표현했더구나. 엄마는 이 문장을 좋아해. 외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너희를 바라보는 마음이 꼭 이 같거든. 우리는 가족,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족, 우리 넷. 아빠 엄마 서정 서현. 아, 다섯이구나 민ㅇ이. 그리고 곧 여섯.


여기까지 잘 와줘서 고맙고, 앞으로의 삶도 그러하리라 믿어. 높이와 넓이와 길이를 잘 조율하고 확장하며 풍요롭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길 바란다. 사랑한다, 나의 딸. 나를 할머니라 부를 나의 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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