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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gang Jun 12. 2020

여름의 맛

매운탕



 “오늘 저녁 메뉴 매운탕이야.”

 “와우!! 오케이!”

 “오늘은 안 돼. 나 야자(야간자율학습) 해야 행.”

 “나도 안 돼. 실험 끝나려면 10시가 넘어야 해.”

 “이미 샀는데?”

 “걍 오늘 해.”

 “나 그럼 야자 안 하고 집 간다! ㅋㅋ”

 “나도 실험이고 뭐고 걍 집으로? ㅎㅎ”


 가족 톡 방에 신선한 광어 서더리 사진을 올려놓았더니 그들 대화가 이 모양이다. 겨우 매운탕 한 그릇에 세 사람 반응이 기막히다. 남편은 그냥 끓이라 하고, 두 딸은 협박이다. 야간 자율학습도 안 하고 실험도 안 하고 오겠다는 엄포다. 장난 삼아 던지는 말이지만, 갓 끓여낸 매운탕의 진미를 제때 맛보겠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그만큼 신선한 매운탕의 풍미를 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날, 두 아이는 야자도 실험도 다 마치고 돌아왔고 매운탕은 모두가 모인 늦은 시간 끓일 수밖에 없었다.


 “캬! 엄마가 끓인 매운탕이 역시 최고야!”


 진심으로 하는 말이다. 아무리 맛이 없게 끓여내놓아도 최고라고 할 이들이다. 생선 비린내를 즐기는 그들이 빚어내는 마법 같은 시간이다.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빈 냄비에 가시만 수북하게 남았다. 식탁에서 일어서며 맛이 일품이었다고 고맙다고 모두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나를 가장 위대하게 만드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의 고향은 해운대다. 뱃일을 하는 아버지 덕분에 어려서부터 다양한 생선을 고루고루 먹어봐서인지 생선 맛을 안다. 생선이 들어간 요리는 무조건 다 좋아한다. 그중 생선회와 매운탕을 제일 좋아한다. 그에 못지않게 두 아이도 생선회와 매운탕에 목숨을 건다. 생일날 뭘 먹고 싶냐 물었더니 단번에 횟집에 가자고 한 것만 봐도 알만 하다. 초등학생의 입맛이 피자나 돈가스 집이 아닌 횟집이라는 거다. 그것도 아빠와 먹는 회가 제일 맛있다고 했다. 심지어 어느 날엔 회가 너무 먹고 싶어 눈물이 난다,라고 말했던 적도 있다. 더는 말할 여지가 없다.


 결혼 전 나는 회도 매운탕도 먹지 않았다. 비릿한 맛도 그러려니와 기름기 둥둥 뜬 붉은 빛깔의 국물과 고기비늘을 보는 것만도 비위에 거슬렸다. 더구나 비릿한 뒷맛 때문에 매운탕은 안 먹는, 아니 못 먹는 음식으로 제쳐 놓았다. 그런데 내가 매운탕을 먹게 된 계기는 예상 밖이다. 둘째를 임신하면서 지독한 입덧에 시달렸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시르죽던 어느 날 갑자기 매운탕이 먹고 싶어 졌다. 당장 매운탕을 먹지 않으면 죽을 것만 같았고, 매운탕을 먹고 나면 없던 기운이 솟아날 것 같았다. 평소 싫어하던 음식이 급작스럽게 당기다니, 믿기지 않는 상황이었다. 보다 못한 남편이 밤 10시가 다 된 시간 매운탕꺼리를 사서 근처 큰언니 집으로 가져갔다. 그날 나는 언니가 끓여준 매운탕을 옆 사람 눈치 볼 겨를도 없이 혼자 그것을 다 먹어치웠다. 도대체 어떤 물질이 내 몸속을 침투해 그런 이상한 반응을 일으켰는지, 비릿하면서도 매콤한 매운탕 국물 맛의 오묘함에 천지가 열릴 거 같은 기운을 맛보게 되었다.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그 순간은 인간이 넘나들 수 없는 신의 영역이라고 밖에 도리가 없었다. 한순간의 입맛 변화를 어찌 사람의 생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내 안을 침투한 DNA의 반란이 몸의 중심과 마음의 중심을 넘어 입맛의 중심까지 바꿔버리는 대참사가 일어났던 것이다.


 하성란의 단편 ‘여름의 맛’에서 맛 여행을 기획하고 연재했던 김이라는 여자는 맛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깨달은 게 있다면 맛은 맛이기 이전에 한 개인의 추억이라고 설명했다. 레시피보다 음식에 깃든 개인의 추억을 재현하는 데 공을 들인 이유는 개개인의 사연에 얽힌 이야기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추억의 음식으로 백 명이 자장면을 꼽는다 해도 그 이유는 백 가지로 다 다를 것이라는 거다. 자장면에 관한 추억은 지극히 사소하고 개인적인 기쁨일 거라고. 정말 그렇다. 그가 매운탕을 먹으며 떠올릴 그림과 내가 매운탕을 먹으며 떠올릴 그림은 판이하게 다를 수 있다. 그만이 건져 올릴 수 있는 이야기로 추억 속 매운탕은 넘실댈 것이고, 나 또한 요란한 입덧을 종식시킨 그날의 매운탕 맛을 떠올리며 풋풋한 서른의 젊은 날을 추억하고 노래할 수 있으리라. 그가 느낀 그날과 내가 느낀 그날은 다를 것이지만 궁극적인 것은 거기에 변하지 않는 풋풋한 젊음이 살아있고 행복이 묻어있다는 것이다. 가족이라는 이름 안에서 말이다.


 훗날 우리 네 식구가 함께 기억할 매운탕의 맛은 어떻게 윤색되어 펼쳐질까. 각자의 느낌과 생각 그리고 맛과 색채, 기억하는 스토리는 어쩜 서로 다르게 윤색되어 더 아름답고 뭉클한 그림으로 빛날 것을 믿기에 나는 그저 열심히 매운탕을 끓여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매운탕 재료 사진에 획기적인 반응을 보일만큼은 아니지만 요즘은 나도 매운탕을 즐긴다. 그래서 온 가족이 모일 수 있는 날에 맞춰 정기적으로 매운탕 재료를 찾아 나선다. 나는 그들의 입맛 때문에 매운 고추 송송 썰어 넣고 나만의 기막힌 매운탕 맛을 살릴 수 있게 되었다. 나만이 낼 수 있는 맛의 비법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맛을 추구하는 그들의 끈질긴 미각이 있었기 때문이고 즐거워하고 행복해했기 때문이다.


 음식의 맛이 맛이기 이전에 한 개인의 추억이라는 명제 아래 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그림은 입덧 중인 나를 위하여 큰언니가 끓여주었던 그 초여름 밤에 맛보았던 시원한 매운탕 국물 맛이다. 그날의 밤공기와 미동도 없이 흔들렸던 노란 금계국, 금곡동 어느 골목길에 키를 한자나 세우던 접시꽃 꽃망울의 자태를 잊지 못한다. 몇 날을 굶고 토하기를 반복하던 내가 그 매운 국물 맛에 빠져 정신없이 흡입하고 바라본 그들의 놀란 표정도 지워지지 않는다.


 과거 조상들은 '생선은 고유한 향기가 있어 고추장에 끓이면 향기를 모르게 되므로 맑은장국에 끓이는 것이 좋다'라고 했다. 맵고 자극적인 고추장이 들어간 매운탕은 1970년대 이후 한식에서 탕요리의 대명사가 되었다고 한다. 음식의 맛과 변화, 시대적인 음식의 변천으로 보면 요즘 아이들의 입맛은 많이 달라졌다. 퓨전과 서양식 요리 패스트푸드의 일반화 등으로 어른과 아이의 거리감이 음식에서부터 나눠지고 있는 추세지만 매운탕으로 마음을 모을 수 있는 가족 음식이 존재한다는 것에 감사한다. 일반적으로 매운탕은 술안주용으로 알고 있다. 술도 마시지 않는 아이들이 매운탕의 진미를 느낄 수 있는, 그 작고 사소한 음식 하나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꽃 피울 수 있는 것은 달밤에 노루가 마시던 옹달샘 물이 흘러와 가슴에 고이는 것만큼이나 느꺼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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