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창을 쭈르륵 내리면서 남편의 시선은 두 아이에게 가 있다. 둘이 의지하며 걷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도 목젖이 뜨끈해지나 보다.
회식자리에서 먹었던 음식이 가족을 생각하게 했던 모양이다. 며칠 전부터 남편이 그 집 이야기를 했다. 낯선 음식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나는 여간해서 선뜻 응하지 못한다. 특히 육고기일 때가 더 그렇다. 아이들도 난색을 표한다. 안 먹어 본 음식은 거부감이 먼저 인다고 말을 한다. 엄마를 닮았나 보다 생각한다.
우리 식구가 외식하는 집은 딱 정해져 있다. 주기적으로 돌아가며 찾아간다. 고깃집이 아닐 때는 새로운 곳도 괜찮지만 고깃집은 검증된 집이라야 한다는 것. 한 번 맘에 들면 이사를 하기 전 까지는 끝까지 그 집만을 고집한다는 것. 셋 다 심하게 거부반응을 보이는데도 남편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설득했다. 가기로 약속까지 해 놓고도 막상 나서기 직전까지 우린 꾸물댔다. 결국 언성을 높이며 남편이 소리쳤다.
“빨리 옷 안 입나? 식성을 모르고 가자고 하겠어? 일단 먹어보고 말을 해야지?”
고깃집은 다 만족했다.
“그럼 그렇지 아빠가 우릴 모르고 그랬겠어? 끝까지 설득한 이유가 있었던 거지.”
식사를 마치고 자동차에 오르며 작은아이가 한 말이었다. 만족에 겨워 표정관리가 안 되는 남편의 옆얼굴을 지켜보며 나도 한 마디 거들었다.
“그럼 30년을 살았는데, 예민한 옆지기 식성쯤은 완벽 파악한 자신감이었겠지?”
만족한 저녁식사와 만족한 포만감에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커피집에서 오랜 시간을 함께 할 수 없다는 이유로 테이크아웃을 하기로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에 정차를 하고 아이들은 건너편 스타벅스로 향해 걷는 중이었다. 건널목을 건너는 뒷모습, 또 커피를 사서 돌아오는 건널목 저편 신호등을 기다리는 모습, 다시 건널목을 걸어 돌아오는 다정한 자매 모습을 우리 둘은 끝까지 지켜봤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뭉클했다.
지난주 새로운 임지로 인사이동한 큰아이와 사회로 나가는 관문을 뚫기 위해 열공 중인 작은아이. 하나가 아닌 둘. 두 아이의 삶을 응원하는 차 한 잔과 케이크 한 조각. 가족이 모여 서로의 삶을 나눌 수 있는 고요한 시간. 모두가 흥뚱항뚱하지 않고 마음을 다하는 삶. 스스로를 위한 꾸준한 루틴이 있다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지 않아도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고 믿을 수 있는, 그러한 것을 지켜볼 수 있어서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