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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gang May 25. 2021

네 소원은 뭐니?

두려움을 버리고 소원을 이루게 하는 마법의 나무<오냐나무>

그림동화 <오냐나무>표지


 “진정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단 한 가지 방법은 ‘내가 원하는 그 일’에 생각을 집중하는 것이다. ‘만약’과 ‘그런데’는 금물이다. 마음속에 있는 긍정적인 생각이 긍정적인 것을 끌어당기고, 부정적인 생각이 부정적인 것을 끌어당긴다. 언제나 중심이 되는 단어가 키워드가 돼야 한다. 끌어당김의 법칙은 생각하는 것을 실현시킨다.” <시크릿>


 결혼식을 마친 후에 신혼집 살림을 채웠다. 보통은 가구와 가전제품을 넣고 살림 구조를 완벽하게 마무리 한 다음 잘 정리된 집에 입주하는 것이 순서이겠으나, 그러지 못했다. 4월 20일 토요일 부산에서 결혼식을 했고, 4월 25일 목요일 서울로 올라왔다. 그 사이 2박 3일 제주 신혼여행을 다녀왔고, 시가와 친정에서 각각 하룻밤을 보낸 후 트럭을 타고 상경했다. 트럭을 탄 이유는 있다. 친정엄마가 손수 만들어준 이불을 비롯한 신혼살림 김치 밑반찬 등등 그리고 내가 소장했던 책과 이런저런 물품들을, 거리상 또는 시간적 여유가 없어 미리 옮기지 못하고 결혼식을 마친 이후 운송했던 것이다. (그날 난 엄마의 젖은 눈빛 속에서 농도 짙은 쓸쓸함을 보고 말았다. 막내딸을 시집보내는 시원함보다 자주 볼 수 없는 먼 곳 서울로 보내는 아쉬움과 서운함이 슬픔으로 젖어 있었다. 둘이 안아보지도 못하고 헤어졌다. 엄마는 동구까지 나와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고 서 있었고, 나는 멈춰지지 않는 눈물에 애를 먹었다. 그때 엄마 한번 꼭 안아주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후회가 됐다.)

 입주 후에야 집 상태와 구조를 알게 됐다. 좁은 단칸방에 놀라지도 않았고, 그저 둘이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이 서울 땅에 마련되었다는 감동만 있었다. 그는 서울 나는 순천 결혼식은 부산. 환경은 미처 신혼집의 상황을 파악할 여력이 되지 못했다. 부족한 돈에 맞춰 겨우 얻어 놓은 전셋집이었다. 적은 돈(9백만 원)으로 우리가 거처할 방이 마련되었다는 것에 감사했다. 그리고 한 달 후 출근할 일터가 있음에 안도했다.


 그림동화 <오냐나무; 글 이효담 그림 강혜숙> 이야기를 하려던 참이었다. 2주 전엔가 원주 터득골북샵에서 건져 온 책이다. 책 이야기를 하려다 보니 당연 오래전 이야기를 끌고 올 수밖에 없었다. 핵심을 벗어난 이야기일 수도 있겠으나 결과적으로는 연결될 이야기이기에 또 그때 이야기로 시작한다.

 <오냐나무>는 ‘론다 번의 <시크릿>’를 연상하게 했다. 그렇기에 <오냐나무>는 어린이용 <시크릿>이라 말할 수 있겠다. 잊고 있었던 내 안의 어둠과 부정의 생각을 몰아내는 기회가 됐다. 다시금 시크릿을 되뇌었고, 희망이 천천히 스며들었다. 구하고 믿고 받는(바라는). 긍정적인 결과를 끌어당김으로 또 그렇게 될 것임을 믿는 것이다. 내가 기도했던, 내 생각이 머물렀던, 좋은 삶을 끌어당길 내 안의 감정을 정화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오래전부터 나만의 ‘오냐나무’를 키우며 살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미 ‘론다 번의 <시크릿>’도 차근차근 실행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가난했지만 성경 히브리서의 말씀을 품고 살았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2)’ 구하고 믿고 바라는 것에 앞서 이미 나의 생각창고에는 가난했지만 저택을 꿈꾸는 씨앗이 꿈틀대고 있었던 것이다. 누가 뭐라고 말을 한 것도 아니고 의식적으로 구했던 것도 아니고 나도 모르게 내 안에 생겨난 것들이었다. 오냐나무 아래의 준이와 수리처럼. 오냐나무 아래에서 배가 고픈 준이와 수리가 ‘샌드위치가 먹고 싶어’, ‘목이 말라’, 생각만 했을 뿐인데 나무 아래 멋진 식탁에 샌드위치와 물그릇이 놓여있었던 것처럼 그렇게 자연스럽게. 나의 삶은 그러했다. 욕심을 부리지 않았어도 생각만으로 하루하루는 감사했고 감사함으로 순간순간 어려움은 비켜갔다. 가난도 비켜갔다.


  그때, 예정된 한 달 전업주부에 집중하고 있을 때였다. 한 달 후 일터로 가야 하는 그 한 달은 황금 같은 날들이었다. 그런데 제동이 걸렸다. 5월 27일 첫 출근하기로 되었던 병원에서 일방통보가 왔다. 입사가 취소되었다고. 이런 난감할 데가? 가난한 우리가 빨리 돈을 벌어 빚도 갚고 집도 넓혀가야 하는데 출근 정지라니? 이전 병원에서의 노조활동이 문제였다. 내 이력에 빨간 줄(?)이 따라다녔던 것이다. 살짝 마음의 부담이 왔지만 긍정적인 생각이 앞섰다. 쉴 때 편하게 푹 쉬자. 언제 또 이런 날이 올까. 남편도 쉴 때 푹 쉬고 천천히 일자리를 찾아보자 했다. 내가 가는 길을 그(God)가 인도하시리니, 나를 불쌍히 여기는 그분께서 가만 내버려 두지 않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남편과 함께 새벽기도를 시작했고 매일 <생명의 삶/두란노>으로 QT를 했다. 말씀이 나를 이끌었고 기도가 나를 위로했다. 그저 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일터를 위한 기도가 우선이었다. 5월 24일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출근하라’는 것이 아니라 27일부터 ‘출근해줄 수 있느냐’는 부탁하는 말투였다. 나는 여유를 부렸다. 27일은 어렵고 한 주 후쯤 출근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병원 측에선 나의 노조활동 경력이 마음에 내키지 않았으나 경력자 후임을 그때까지 구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분의 뜻이려니 감사했다. 집에서 걸어서 출근할 수 있는 거리였고, 애당초 그 병원에 출근할 생각으로 그곳에 집을 구했던 까닭이기도 했다.  나는 정직했고, 성실하게 일했다. 신임도 얻었다. 내 안의 <오냐나무>덕분이었다.


 동화에서 끌어당김의 법칙은 소원을 들어주는 별, 마법의 콩, 요정들이 전담한다. 영화에서는 강력한 힘이나 절대 반지 같은 것들이 법칙을 지배한다. <알라딘>의 경우엔 램프의 요정 지니가 나타나서 모든 소원을 이루어 주었다. 지니와 강력한 힘, 절대 반지 그리고 시크릿. 그렇다면 나의 강력한 도구는 ‘감사하기’이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미 가진 것에 감사하고 얻게 될 것에 감사하고 그리고 삼라만상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다는 것. 그것이 해답이다.

     


“무서워하는 것도 이루어져.”

숲 속 친구들은 안절부절못했어요.

“어두워지고 있어.”

“무서워.”

“떠올리지 말라니까!”

“저절로 떠오르는 생각을 어떻게 하란 말이야?”

무서운 생각은 점점 더 또렷해졌어요. 오냐나무숲은 순식간에 무서운 동물들의 숲이 되어버렸어요.

 -오냐나무(이효담 글 강혜숙 그림)중-



한동안, 내 안의 시크릿이 사라졌고 나는 <오냐나무>를 키우지 못했다. 나를 힘들게 하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변한 것은 그때는 감사였고 지금은 불평이었다. <오냐나무>가 나를 가다듬게 했다. 다시 시크릿을 기억했고 성경의 가르침을 되뇌었다. 알면서도 망각했던 나의 어리석음과 무지를 탓한다. 감사보다 앞선 것은 원망이었고 불안이었다. <오냐나무>의 준이도 마찬가지였다. 무서워했더니, 저절로 떠올랐던 무서운 생각이었을 뿐인데, 오냐나무 숲은 무서운 동물들의 숲이 되어 버렸다. 내 안의 나를 깨워 소리친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눅11:13)”  


“오냐나무는 뭐든 소원을 들어준단다. 네 소원은 뭐니?”

     

 내 안의 부정적이고 자멸적인 생각을 버린다. 과감하게! 완벽하게! 사정없이!

 긍정이 찾아오는 길을 열어둔다. 취준생 둘째에게 특히 넓게 열어둔다.

 아이도 나도 긍정 에너지를 창출해야 할 때이다. 긍정적인 끌어당김으로 완성을 이루어가야 한다. 오냐나무에 <합격>이 매달리기를 간절히 바란다.


     


원주 터득골북샵 내부 (사진 갤럭시노트8)
이 사진은 터득골북샵과 관련없는 사진임. (사진 캘럭시 노트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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