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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땡땡 Feb 06. 2020

10년 만에 받은 편지

고등학생의 내가, 20대 후반이 된 나에게.






'너 그거 받았어? 10년 전에 우리가 썼던 편지, 그게 우편함에 와있더라'


오랜 친구의 뜬금없는 카톡에 그런 게 있었나 잠시 기억을 더듬었다. 생각나는게 없기에 '너네 반에서만 했겠지' 하고 무심코 지나쳤는데 이후 다른 동창들 역시 비슷한 얘기를 해왔고, 그제야 기억 저편에서 검정 뿔테 안경을 쓴, 늘 단정했던 차림의 선생님 한분이 떠올랐다.



고등학교 탐구 시간이었다. 남들과 조금 다른 포스를 풍기던 그분께서 어느 날, 여느 수업과는 다르게 10년 뒤 자신에게 편지를 써보라고 하셨다. 때가 되면 당시 살던 주소로 보내주겠다는 말과 함께. 시키니까 쓰면서도, 이사를 일 년 단위로 다니던 내가 과연 이 종이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졌던게 어렴풋하다. 타임캡슐이 묻힌 자리는 결국 희미해지는 법이기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고, 역시 새까맣게 잊고 지냈다. 근데 그걸 진짜 보냈다고? 선생님의 노고와 기억력에 감탄했다.



친구 하나는 그것을 받아 들고 방청소와 목욕재계를 한 뒤 경건하게 열어본다기에 피식 하긴 했지만, 소중하고 남다른 감회가 드는 물건임에는 틀림없었다. 귀찮은 부탁일까 망설이면서도, 당시 살던 아파트에 여전히 살고 있는 동창에게 오래간만에 연락 취할 정도로 그 한 장이 귀했다. 지금은 닫혀버린 미니홈피 시절의 추억을 담고 있을 뿐 아니라, 어른으로서 나아갈 방향과 예언이 적힌 고대 유물의 존재를 알게 된 것 같은 기분. 그 시절 나는 어땠고, 미래의 나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친구는 당시 상황뿐 아니라 본인이 썼던 내용까지 기억해냈지만, 나는 전혀 아니었다. 그러나 두 가지는 알고 있었다. 첫째는 그때의 난 인생을 통틀어 가장 치열하게 살고 있었고 (바보 같지만 쓰는 그 시간을 아까워했을지도 모른다.) 둘째는 지금 내 모습의 8할은 상상하지 못했다는 거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는데, 나여서일지 모르지만, 내 변화는 강산보다 컸다. 막연히 명문대를 들어가고 싶었지, 이 직종을 처음 고려하게 된 건 입시원서 철이 다돼서였고, 남자와 말 한마디 나누는 게 어렵던 수줍은 소녀가 브런치에 자신의 이야기를 나눌 만큼 적지 않은 연애경험을 갖게 되었고, 스스로의 한계를 정하던 신입생이 예상보다 훨씬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해 원하는 병원에 입사했다. 잠 못 이룰정도로 간절히 원했던 공간을 1년 만에 제발로 터벅터벅 걸어 나올지는 정말 몰랐지만.


거기다가 나와 전혀 무관한 줄만 알았던 매스컴에의 출연은 인생에서 가장 핫한 일이었다. 덕분에 한동안 받은 인사는 늘 그에 관한 말이었다. 아, 실용주의자인 내가 아이폰을 쓰게 된 것까지. 십 년 전 바라던 모습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지금의 나를 보면 먼 길을 돌아 헤어진 연인을 다시 만난 것처럼 바람 빠진 웃음이 나올 것 같다.



팔다리가 늘어져 눕고만 싶던 순간들도 있었다. 객관적인 상황이 나쁘지 않다는 걸 알아도, 그쯤은 큰일 아니라던 타인의 말이 들리지 않고 넌 내가 아니어서 몰라. 스스로 눈앞의 검은 자괴감만 보이던 때. 하루에 껌을 30개씩 씹고 단물이 빠지면 뱉던 때. 새벽 4시면 눈이 떠져 세상에 홀로 남겨진 듯 다시 잠들지 못하던 때.


 좋게도 평범한 집안에서  문제없이 자라, 모의고사 성적이  나온 , 좋아하던 남자애를 잃은  인생을 포기하고 싶은 이유가 되던 어릴 시절에는 그런 시간들이 오리라곤 가늠 치도 못했다. 집채만한 파도를 만났고 삼켜져 숨쉬기조차 힘들었고 후유증이 남았다. 여전히  수면 위로 떠올랐다 잠겼다 하는지도 모르지만 버텨준 스스로가 고맙고, 귀하다. 이까지 오느라, 수고 많았다.



처음 화두를 던진 친구는 다시 10년 후의 자신에게 편지를 쓴다고 했다. 고등학생의 눈에선, 완연한 어른으로 무언가 이뤄놨을 거라 믿었던 이십 대 후반이 '시작은커녕 준비도 다 못했는데 모두가 나에게 어른이라 부르네'라는 노래 가사와 같은데 사십 언저리는 또 어떨지 모르겠다. 그쯤이면 직장이나 서랑 모두 안정기에 들어서 있을까? 한 달 너머도 구름이 끼인 듯 희끄무레해서 잘 보이지 않는데 10년 후엔 약간 주름진 얼굴 외엔 모호하다. 30도 익숙지 않은데 40이란 숫자는 더 낯설다. 부모님 역시 이렇게 두렵고도 설레는 불분명함 속에서 나이 들어오셨겠지.


별생각 없이 썼던 과거의 기록을 지금에 와선 간절하게 바라고 있듯이 조금씩 나이 들어갈 나를 위해 현재의 감상들을 이곳에 남겨본다. 이 타임캡슐이 묻힌 자리는 혼자가 아니라 공유한 다수가 있으니 까먹더라도 좀 더 기억해내기 쉬울 테니까.



동창에게서 본인 그리고 내 편지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것 같다는 답장을 받았다. 매일매일 들여다보겠다고.


비록 전해받지 못한다해도, 과거의 내가 오랜 시간을 달려 현재로 오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독서실 계단에서 소리 죽여 울던 뒷모습, 돌아간다면 그 어깨를 토닥여주고 싶었는데 반대를 떠올리자 숨이 크게 쉬어진다. 빛바랜 종이를 사이에 두고 눈을 맞춘다. 숨을 고르며 웃고 있는 나와, 어린 내가 마주 선다. 그 애의 얼굴을 보느라 나는 보이지 않지만 영화 러브레터 마지막 장면에서 책 뒷면을 보게 된 주인공. 그와 같은 표정이 되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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