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덕희 Jun 10. 2019

현미가 사람을 서서히 죽이는 독약이라고? 1

제가 세상에 호메시스란 책을 내놓고 얼마 후 의대 동기가 카톡 하나를 보내왔어요. 제 책에 나오는 현미 이야기를 읽고 열심히 현미를 먹고 있다고 감상문까지 보내준 고마운 친구였죠. 그런데 이걸 읽고 나니 자기는 지금 너무 혼란스럽다고 이 글에 대한 제 생각은 어떠냐고 묻더군요. 클릭을 해보니 바로 “현미는 사람을 천천히 죽이는 독약이다”라는 글로 이어지더군요. 


사실 그 카톡을 받기 며칠 전에 학교 근처에 있는 대형 서점 한 곳을 들렀어요. 갑자기 몇 군데 선물 줄 곳이 생겨서 머플러로 얼굴을 절반쯤 가리고 제 책을 제가 사러 갔었죠. 건강서적 코너로 가서 도대체 내 책은 어느 구석에 쳐 박혀 있나를 둘러보다 보니 요즘 잘 팔린다는 건강서적들을 한 곳에 모아놓은 곳이 눈에 띄더군요. 어떤 책들이 그렇게 잘 팔리는가? 궁금해서 그 코너에 진열된 책들을 쭉 훑어보는데 제목들이 매우 자극적이라는 걸 알게 되었죠. 죽인다, 살린다, 속지 마라, 거짓말, 배신, 반란.. 


그걸 보니 아~ 건강에 대하여 쓴 책은 기본적으로 이렇게 제목을 달아야 팔리는구나.. 싶었어요. 갑자기 “호메시스”라는 일반인들은 물론이고 전문가나 의사들도 모르는 단어를 대중을 위한 건강서적의 제목으로 사용하고는 많은 사람들이 읽어 주기를 바라고 있었던 제가 어리석게 생각되더군요. 그러고 나서 며칠 후 친구로부터 받은 글이 또다시 “현미는 사람을 천천히 죽이는 독약이다”라는 무시무시한 제목을 달고 있는 글이었고요. 


일단 누가 그 글을 썼는가 궁금해서 검색을 해보니 글쓴이는 재야의 유명인사더군요. 글에서는 반복해서 어떻게 현미의 독성이 서서히 건강을 망치는가를 몇몇 극단적인 사례들을 들어가면서 일반인들이 현미에 대하여 충분한 공포심을 가질 수 있도록 적어 놓았더군요. 다음은 그 글을 읽은 저의 소감입니다. 


먼저 밝혀야 할 사실은 진짜 현미 안에는 독이 들어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 글의 제목 중 일부인 “현미는 독약이다”는 말은 틀린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현미뿐만이 아니에요. 많은 식물성 식품들이 독을 가지고 있죠. 바로 식물성 식품 안에 포함된 수많은 파이토케미컬들의 본질이 독이거든요. 발암성분이기도 하고요. 그러나 식품 속에 포함된 이러한 파이토케미컬들은 사람을 천천히 죽이는 독약이 아니라 천천히 살리는 독약일 가능성이 큽니다. 아니~ 이게 무슨 말도 되지 않는 말장난인가 싶으신가요?? 그러나 이것이 바로 호메시스의 기본 개념입니다. 


아시다시피 식물성 식품에는 빨주노초파남보 다양한 색깔과 갖가지 향기를 만드는 엄청난 수의 다양한 파이토케미컬들이 포함되어 있죠. 그리고 이런 파이토케미컬들이 많이 포함된 채소와 과일들이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파이토케미컬들은 지구 상에서 그다지 도움도 되지 않는 인간들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라고 식물들이 살신성인의 자세로 만들어내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파이토케미컬들 중 상당수는 식물이 자신을 공격하는 다른 생명체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만들어내는 살충제 성분들입니다. 일차적으로는 자신들의 번식과 성장에 방해가 되는 다른 생명체를 죽이거나 병들게 하는데 초점을 맞춰서 만들어진 독들이죠. 예를 들자면 적포도주에 많이 들어 있다는 그 유명한 레스베라트롤이 그렇고, 산림욕장의 편백나무 군락지가 뿜어내는 피톤치드가 그렇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파이토케미컬의 경우 식물과 그 식물을 먹으면서 생존해온 동물 간의 기나긴 상호과정을 통하여 동물들은 그러한 성분들을 오히려 우리 인체에 유리한 스트레스, 즉 호메시스를 자극하는 신호로 사용할 수 있도록 진화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파이토케미컬들, 즉 독이 든 식물성 식품들을 음식으로 먹으면 건강에 유리하게 작용을 하는 것이고요. 물론 현시점에도 이러한 파이토케미컬의 양이 “엄청나게” 많아지면 독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음식을 통하여는 그렇게나 많은 양을 먹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바로 독도 적절하게 사용하면 약이라는 말이 딱 맞는 상황입니다. 


그래도 독이라니.. 이쯤에서 아무리 진화 과정 중에 적응했다 하더라도 피할 수 있다면 피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을 것 같아서 추가설명 들어갑니다. 여러분들의 생각과는 달리 현대사회에서는 파이토케미컬과 같이 진화 과정을 통하여 적응한 독에 대한 주기적 노출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 이유는 바로 이 성분들이 현대사회에서 절대로 피할 수 없는, 우리가 공기, 음식, 물, 각종 생활용품을 통하여 끊임없이 노출되는  아주 낮은 농도의 수많은 합성화학물질들로 인하여 발생하는 각종 문제들에 대한 현실적인 대응방법이 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이것이 또 당장 궁금하시겠지만 이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차차하고 간략하게만 말하자면 이것 또한 호메시스의 핵심 원리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이 현재 먹는 자연식품 중 현미를 포함한 곡류는 인간들이 진화과정 중에 가장 늦게 만난 식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곡류 안의 파이토케미컬들은 다른 식물성 식품의 파이토케미컬들보다 적응이 덜 되었다고 볼 수 있는 측면이 있습니다. 여기서 적응이 덜 되었다는 것은 약으로 작용할 수 있는 안전한 양의 범위가 좀 더 좁고 독성이 좀 더 일찍부터 나타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그 글에서 우리 조상들이 이러한 현미의 독성에 대하여 우려를 했고 피했다는 부분이 있는데 다소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그 글에서 우리 조상은 아무도 현미를 먹지 않았다는 말이 나오는데요 끼니마다 각종 산해진미로 가득 찬 수라상을 즐긴 임금들은 백미만을 즐겼다고 하지만 먹고살기 바쁜 백성들이 그 많은 시간을 들여서 굳이 현미를 백미로 도정해서 먹기는 힘들었을 듯해요. 서구에서 통밀가루에서 백밀가루를 먹기 시작한 시점이 19세기 후반 제분업이 들어온 다음으로 알고 있는데요 아마 아시아권에서 백미를 주로 먹기 시작한 것도 도정기가 본격적으로 사용된 시점 이후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렇게 적다 보니 갑자기 고귀한 왕족의 후손들은 현미에 충분히 적응되지 않아서 지금도 현미를 먹으면 독성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 나타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주 이 씨, 개성 왕 씨를 비롯하여 고구려, 백제, 신라 왕족의 후손들.. 조심하세요^^


혹자는 현재 우리 유전자는 구석기시대 원시인들과 다를 바가 없으므로 구석기인들이 먹었던 음식만이 인간에게 적합한 것이며 그때 존재하지 않았던 식품들, 특히 곡류는 현미건 뭐건 그 자체로 인간에게 맞지 않으므로 먹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런 관점은 생명체가 가진 환경에 대한 적응능력을 한참 우습게 본 시각이죠. 현시점, 인간들은 1만 년 이상 각종 곡류에 노출이 되면서 생존해왔는데요 1만 년 세월이면 500세대 정도입니다. 어떤 생명체든 그 정도 기간을 살아남았으면 그 종은 그 새로운 환경요인에 대하여 충분한 "후성유전학적인 적응"을 했다고 봐야 합니다. 아니 후성유전학적인 적응은 그보다 훨씬 짧은 세대안에 다이내믹하게 발생하죠. 유전자의 염기배열 순서와는 달리 유전자의 발현, 즉 후성유전학적 반응은 끊임없이 변하는 환경에 대하여 즉각적으로 생존에 최적화된 방법으로 나타날 수 있거든요. 그리고 이 후성유전학적 패턴은 유전자 염기배열 순서와 마찬가지로 후손들에게 전해질 수 있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하겠지만 후성유전학은 진화생물학 분야에서 다윈의 진화론에 밀려 일찌기 용도폐기되었던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이 다시 부활하는 신호탄이기도 합니다.    


다음은 피틴산 (phytic acid) 이야기입니다. 그 무시무시한 글을 보면 피틴산은 여러 가지 필수 미네랄을 흡착하여 몸 밖으로 내보내기 때문에 현미를 먹으면 빈혈이 오고 골다공증이 온다고 적혀 있습니다. 피틴산도 일종의 파이토케미컬로 여러 가지 인체에 이로운 작용을 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필수 미네랄의 소화흡수를 방해한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 피틴산은 현미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몸에 그렇게 좋다는 아마씨, 우리가 늘 먹는 들깨, 통깨, 그리고 콩류 등 기본적으로 다양한 식물성 식품의 껍질에 다 포함되어 있는 성분이죠. 


기본적인 영양소 섭취조차 힘들었던, 먹을 것이 매우 부족했던 시절이나 아직까지 그런 환경에 처해있는 나라에서는 이러한 피틴산이 많이 든 식품을 많이 먹으면 가뜩이나 부족한 필수 미네랄의 흡수를 막아 여러 가지 질병들을 일으킬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현시대 단순히 곡류에 든 피틴산 때문에 필수 미네랄의 결핍이 올 것이 염려되어 통곡물을 멀리하는 것은 그리 현명한 선택이 아닙니다. 어떤 식품의 가치는 그 안에 특정 성분이 존재하는가 아닌가 여부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거든요. 보다 포괄적인 관점에서 이 먹거리 문제를 보지 않는 한, 개별 식품 혹은 개별 성분을 두고 의미 없는 소모적인 논쟁만 끊임없이 계속하게 될 겁니다.


마지막으로 백미보다 현미에 더 많이 들어있다는 중금속과 농약 문제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이 문제는 통곡물이 현시대에 왜 중요한지에 대한 보다 직접적인 이유가 될 수도 있고 앞서 올린 살을 뺄 때 운동을 반드시 해야 하는 이유와도 밀접하게 관련이 있기 때문에 다음 글에서 좀 더 자세히 다뤄보도록 하죠. 


To be continued (두번째 글로 연결됩니다) 

작가의 이전글 운동 안 하고 살빼기, 그 달콤한 악마의 유혹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