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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덕희 Jun 13. 2019

현미가 사람을 서서히 죽이는 독약이라고? 2

액면가로만 비교하자면 현미는 백미보다 중금속 농도도 더 높고 농약 농도도 더 높습니다. 그러나 단지 이 결과만을 두고 백미가 현미보다 안전한 음식이므로 백미를 먹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너무나 단순한 일차원적 접근법입니다. 

 

제가 반복해서 말씀드리지만 현재 우리는 다양한 경로를 통하여 아주 낮은 농도의, 그러나 엄청난 수의 환경오염물질에 일상적으로 노출되면서 살고 있습니다. 백미와 비교하여 현미에서 더 많이 검출된다는 중금속과 농약은 그중 극히 일부일 뿐입니다.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현미를 단 한 톨도 먹지 않는다 하더라도 다른 경로를 통하여 현미에 들어 있다는 그 중금속과 농약에 대한 노출도 여전히 끊임없이 발생합니다. 즉, 여러분이나 저나 이 지구 상에서 먹고 마시고 숨 쉬며 살아가는 한, 단순히 현미에 들어있다는 중금속과 농약만 피한다고 그것이 우리가 처해있는 현실에서 대단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현미와 같은 통곡물의 중요한 특성이 있습니다. 바로 통곡물에는 일단 몸 안에 들어온 수많은 독성물질들, 그중에서도 특히 체외로 잘 빠져나가기 힘든 지용성 합성화학물질들 (이 놈들이 진정으로 우리를 병들게 하는 놈들이죠)을 흡착하여 대변을 통하여 체외로 배출하는데 효과적인 특별한 성분이 다량 함유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합성화학물질들의 생산과 사용은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시작된 것이기 때문에 우리 조상들이 살았던 그 시절에는 현미의 이런 특성을 전혀 고려할 필요가 없었어요. 그 시절에는 생존을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영양소조차 부족했기 때문에 현미가 필수 미네랄의 흡수를 방해한다는 점이 훨씬 더 중요했을 겁니다. 그러나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들이 처해 있는 상황은 완전히 다릅니다.  현미가 흡수를 방해하는 미네랄쯤이야 다른 식품을 통하여 얼마든지 보충할 수 있거든요. 

 

최근 이러한 지용성 합성화학물질들에 대한 장기간 노출이 다양한 질병들을 야기한다는 증거들이 속속들이 나오고 있지만 그에 대한 뾰족한 대처방법이 없어요. 이러한 화학물질들은 1-2개 특정 화학물질들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많은 종류들이 먹이사슬에 농축되어 있다가 혼합체의 형태로 들어오는 것이기 때문에 외부 노출을 피하는 것은 그리 의미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단 들어온 화학물질의 배출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더 현실적인 접근법입니다.  

 

제가 앞서 살을 뺄 때 반드시 운동을 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지방조직에서 흘러나오는 화학물질들이 배출되는 경로로 담즙을 이야기했었습니다. 하지만 담즙으로 이 놈들이 나간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상황 종료가 결코 아닙니다. 담즙이 나오는 일차 목적은 화학물질 처리에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 그 안에 있는 지방성분의 소화를 도와주기 위하여 나오는 것인데요 우리 몸은 담즙으로 분비되는 성분들 대부분을 소장 끝에서 다시 재흡수하는 기전을 가지고 있거든요. 안타깝게도 그때, 담즙으로 나온 화학물질들도 같이 재흡수되어 버립니다. 

 

이 놈들이 재흡수가 되지 않게 하려면? 그렇죠. 일단 담즙을 통하여 장관으로 나온 후에는 누군가가 이 놈들을 확실히 붙잡아놓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담즙이 나올 때 우리의 장관내에는 우리가 먹는 음식들과 같이 섞여서 들어오는 수많은 합성화학물질들도 같이 존재합니다. 먹는 음식과 함께 들어온 이들도 누군가가 붙잡고 있지 않으면 쉽게 인체 내로 흡수가 되어버려요. 즉, 장관 내에 존재하는 화학물질들이 흡수되지 않게 붙잡고 대변으로 쉽게 빠져나올 수 있게 도와주는 그 누군가의 존재. 정말 중요하다는 것이 실감 나시죠? 실제로 이들을 흡착하여 대변으로 빠져나오게 할 수 있는 방법들에 대한 다양한 연구들은 오래전부터 꽤나 있었어요. 식용 숯이니 클로렐라니 하는 몇몇 항간에 유명한 건강보조식품들도 이러한 범주에 속하죠. 그러나 제가 판단하기에 현실에서 제일 의미 있는 방법은 바로 통곡물 안에 있는 식이섬유를 먹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식이섬유라는 것은 식물성 식품에 기본적으로 포함된 성분이고 종류도 아주 많습니다. 그런데 왜 굳이 통곡물 안에 있는 식이섬유냐고요? 바로 통곡물에 들어 있는 식이섬유가 우리 몸에서 잘 빠져나가지 않는 지용성 화학물질들과 흡착력이 가장 좋기 때문입니다. 중금속에 대한 흡착력도 아주 좋고요. 반면, 다른 식물성 식품들이 가진 흡착력은 이에 훨씬 더 못 미칩니다. 이러한 흡착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통곡물의 성분을 리그닌(Lignin)라고 부릅니다. 리그닌은 보통의 식이섬유와는 성질이 좀 달라요. 많은 식이섬유들은 다당류 탄수화물의 형태이지만 리그닌은 지용성 페놀 중합체 형태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역시 지용성인 화학물질들에 대한 흡착력이 다른 식이섬유보다 더 좋을 수밖에 없고요.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점은 리그닌은 대장 안의 미생물들에 의하여 쉽게 발효가 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다당류 탄수화물인 다른 식이섬유들은 화학물질들을 흡착해서 대장까지 내려온다 하더라도 대장 안의 미생물들에 의하여 쉽게 발효가 되어버립니다. 그러면 그나마 흡착되어 있던 화학물질들이 분리되면서 대변으로 빠져나올 수가 없어요. 그러나 리그닌은 발효가 되지 않기 때문에 흡착된 상태를 그대로 유지한 채로 대변으로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바로 이 리그닌이 사람을 서서히 죽인다는 현미의 속겨 안에 듬뿍 들어 있습니다. 

 

다시 한번 강조드리고 싶은 점은 통곡물이 가진 이러한 화학물질 배출 능력은 우리 조상이 살던 그 시절에는 전혀 의미 없는 일이었다는 점입니다. 아니 오히려 이 능력 때문에 통곡물을 멀리했을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현미 안의 피틴산만 가지고 필수 미네랄의 흡수를 방해한다고 걱정하지만 리그닌도 똑같이 흡수를 방해합니다. 아니 방해하는 정도로만 보자면 리그닌이 피틴산보다 훨씬 더 강적입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수많은 화학물질에 오염이 된 상태로 살 수밖에 없는 현시점에서는 통곡물이 가진 바로 그 능력 때문에 통곡물들이 우리의 건강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되고 현미가 사람을 서서히 살리는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어떤 식품이 좋다고 하면 100% 완전무결한 좋은 음식이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세상에 그런 식품은 없습니다. 현미도 마찬가지로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있는 식품입니다. 중요한 것은 현재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을 두고 어디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하는가를 판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현미가 가진 미네랄 흡수 방해와 같은 단점보다 우리 인체 내에 들어와 있는 수많은 지용성 화학물질들의 혼합체들을 가능한 한 빨리 인체 밖으로 배출을 증가시킬 수 있는 장점이 현시대에는 우선순위가 더 높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당뇨병과 같은 비만 관련 대사질환을 가진 환자들이나 살을 빼기 위한 노력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우선순위가 높습니다. 즉, 어떤 식품이 가지는 가치는 우리가 처한 상황에 따라서 달라질 수밖에 없으며 우리가 식품의 가치를 포괄적으로 보지 않고 부분적인 사실에 집착하면 종종 진실을 왜곡시켜 버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어떤 경우든 현미가 절대선이라고 이야기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현미의 장점은 극대화하고 단점은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꼭꼭 잘 씹어서 드셔야 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치아가 부실해서든,  성격이 급해서든 어떠한 이유로든 현미를 잘 씹지 못하는 분들 그리고 아무리 잘 씹어도 소화가 안 된다는 분들 굳이 스트레스받아 가면서 반드시 현미 드셔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통곡물만큼은 아니겠지만 식이섬유, 특히 물에 잘 녹지 않는 식이섬유가 많이 함유된 다른 식물성 식품들을 넉넉히 드시면서 운동 많이 하시면 어느 정도는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최종적으로 “현미는 사람을 천천히 죽이는 독약이다”이라는 글을 본 저의 소감을 요약하자면 현재 먹는 것과 관련된 많은 논란이 그렇듯이 이 역시 “Half-truth is often a great lie”라는 말로 결론 내릴 수 있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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