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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덕희 Jun 18. 2019

미세 플라스틱 없는 세상을 꿈꾸시나요?

요즘 미세먼지보다 더 자주 뉴스에 등장하는 것이 미세 플라스틱이죠. 눈에 보이는 플라스틱 쓰레기는 그 자체로 흉물스럽지만 보고 싶지 않으면 안 볼 수 있고 피하고 싶으면 피할 수 있습니다. 법과 규제로 관리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 플라스틱은 더 이상 나의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해보자는 사회 운동은 그 자체로 상징적인 의미는 있습니다. 그러나 종종 언론에 등장하듯 텀블러 들고 다니고 장바구니 들고 다니는 문제로 미세 플라스틱 문제를 환원시키는 것은 기만적입니다. 또한 “강력한 법과 규제를 통하여 플라스틱 제로 대한민국을 만들자”는 한 환경단체의 구호는 “환경호르몬 없는 세상”을 만들어 돌라는 요구만큼이나 순진무구한 구호입니다. 



20세기, 합성 플라스틱이 지구 상에 등장한 후 인류가 생산한 플라스틱 양이 100억 톤에 가까워집니다. 바다뿐만 아니라 히말라야 산맥 정상부터 남극과 북극까지 온 지구가 플라스틱으로 뒤덮인 지 한참이고 이는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전망입니다. 플라스틱이 없었더라면 현재 우리가 누리는 편리함의 90%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고 사람들은 좀 더 움직이고, 좀 덜 먹는 삶을 살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덕분에 우리는 조금 더 건강해질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역사는 가정이 없듯이, 과학문명의 발달에도 가정은 없습니다. 우리가 처한 현실에서 문제점을 이해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해 볼 따름입니다. 


공기는 3분, 물은 3일, 음식은 3주가 없으면 죽음이 목전에 온다고 하죠. 미세먼지는 그 공기를 통하여 우리 몸에 들어오는 것이고 미세 플라스틱은 이 모든 경로를 통하여 우리 몸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미세먼지와 미세 플라스틱의 문제는 인간 생존에 필수요소인 공기, 물, 음식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자웅동체와 같은 것이죠. 우리가 살아 있는 한, 이 놈들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래도 줄일 수 있는 한 노출을 줄이면서 사는 것이 좋은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하시는 분들도 많겠지만 안타깝게도 비선형성이 혼재하는 복잡성의 세계에서는 이러한 선형성의  원리가 작동하지 않습니다. 조만간 미세 플라스틱 노출 허용기준이라는 것도 세상에 나오겠지만 허용기준 이상이니 이하니 하는 이분법이 왜 사람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지는 곧 설명드리겠습니다. 


제가 앞서 <호들갑 좀 그만 떨자는 미세먼지에 대한 정직한 이해>라는 글에서 미세먼지에 붙어서 우리 몸에 들어오는 수많은 환경오염물질에 대하여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미세먼지와 마찬가지로 미세 플라스틱도 원래 플라스틱을 만들 때 사용되는 합성화학물질에 더하여 수 십 년간 생태계를 떠돌면서 만나게 되는 온갖 공해물질들을 다 부착한 채로 내 몸에 들어옵니다. 단순히 플라스틱이라서 해로운 것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미세먼지도 작은 놈이 더 해롭듯이, 미세 플라스틱도 작은 놈이 더 해롭습니다. 세월이 지나가면 플라스틱은 점점 작아져 나노 수준의 초미세, 극미세 플라스틱이 되고 거기에 붙는 오염물질의 종류는 점점 더 다양해집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미세 플라스틱 그 자체가 가지는 성질은 더 복잡해지고 더 예측 불가능해진다고 보면 됩니다. 


지금은 미세 플라스틱이 어디에서 얼마나 검출되나 정도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조만간 미세 플라스틱 노출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다고 정부에서 또 어마어마한 연구비를 쏟아부을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많은 연구들이 그래 왔듯이 연구를 위한 연구들만이 끊임없이 계속될 겁니다. 현대 사회의 대부분 연구는 현란한 과학적 수사로 포장된 일종의 비즈니스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이 분야의 연구들이 더 그렇죠. 미세 플라스틱과 같은 놈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판단할 때에는 흩어져있는 지식들을 기반으로 한 합리적인 추론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합니다만 연구비 한 푼 나올 턱 없고 논문 한 편 쓸 수 없는 그런 방법은 그리 좋아하지 않죠. 어쨌든 연구자들은 대목을 앞두고 있긴 합니다.


앞서 미세먼지에 대한 글에 현재의 패러다임에 갇힌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코끼리 한 마리가 나옵니다. 그리고 제가 미세먼지는 이 코끼리의 오른쪽 앞다리쯤 된다고 비유했었죠. 미세 플라스틱의 문제도 이 코끼리의 관점에서 이해하셔야 합니다. 아마 미세 플라스틱은 이 코끼리의 왼쪽 뒷다리쯤 될 겁니다. 법과 규제로 관리 가능한 영역은 그 엄지발톱 정도 될 거고요. 그 발톱 자른다고 왼쪽 다리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코끼리가 사라지는 것은 더더욱 아니죠. 어떠한 법과 규제로도 불가능한 영역의 미세 플라스틱이 이미 현시대에는 생태계 곳곳에 존재합니다. 즉, 외부에서 조절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저나 여러분이나 현실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이 놈들이 내 몸에 들어온 후 벌어지는 일에 집중하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그 방법 중 일부로 <운동 안 하고 살 빼기, 그 달콤한 악마의 유혹>이라는 글에서 운동을 이야기했고, <현미가 사람을 서서히 죽이는 독약이라고?> 라는 글에서는 식물성 식품 안에 들어있는 파이토케미컬과 식이섬유를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아직 본격적으로 다루지는 않았지만 최근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간헐적 단식”, “저탄수화물식”, 그리고 “명상” 조차도 다 이 범주에 속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물론 “명상”의 세계는 우주의 에너지와도 연결될 만큼 넓고도 깊다고 하지만, 스트레스 관리라는 가장 기본적인 기능만으로도 자율신경계 조절을 통하여 미세 플라스틱과 같은 놈들이 내 몸에서 벌이는 나쁜 일에 대처하는 의미 있는 방법이 될 수 있거든요. 언론과 환경단체에서 장려하는 텀블러 사용하고 장바구니 사용하는 것의 가장 큰 미덕은 자기 위로, 자기 만족감을 줄 수 있다는 정도겠죠. 물론 이런 긍정적 감정의 중요성을 폄하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마지막으로 당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소금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검출되었다는 뉴스가 떴다 칩시다. 그 기사 보고 브랜드별로 미세 플라스틱 얼마나 검출되었나 따져가면서 여태까지 사용했던 소금에서 많이 검출되었다고 불안해하거나,  혹은 가장 작게 검출된 소금 사겠다고 동네 슈퍼 다 뒤지고 다니는 그런 일에 더 이상 에너지 사용하시지 마세요. 그 자체가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해야 하는 의미 있는 일에 대한 방해꾼 역할까지 하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어려울지 몰라도 문제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 질수록 세상이 떠드는 이야기에 一喜一悲 하지 않고 의연하게 대처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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