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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덕희 Dec 18. 2021

좀 더 퍼져야 멈춘다

오랜만에 올리는 글입니다. 저도 모르게  브런치 마지막글이 거칠게 기사화된 후 차마 읽기조차 힘든 댓글들에 맥이 탁 풀렸습니다. 유행 초기부터 코비드 19 사태에 대한 저의 견해가 정치적 관점에서 해석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해왔습니다만 그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 버렸다 싶더군요. 기사가 나간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좀 더 설득력 있는 기사로 만들 수 있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너무 컸습니다. 며칠 잠을 설친 후, 그렇게라도 코비드 19 사태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그건 좋은 일이라는 정도로 저를 위로하고 넘어가기로 했습니다. 


그 와중에 일본에서 날아온 묵직한 편지 하나를 받았습니다. 이메일로 모든 것을 소통하는 시대에 구글 번역기를 이용하여 어색하게 일본어를 한글로 번역한 편지글이 낯설었는데, 보내신 분이 현재 80대 중반의 연령대더군요. 이 분께서는 일본의 코비드 19 유행 패턴은 자신이 <가면역 이론>이라고 명명한 수리모델링로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면서, 엑셀을 이용한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으로 그 결과를 보여주었습니다. 이 분의 결론은 현재 일본 상황은 <PCR 검사를 하지 않고 지나갔던 무증상과 경한 증상자가 가진 가면역>이 결정했다는 것이었죠. 일본 언론에까지 보도된 제 기사를 보고 본인의 생각과 일치한다는 것에 반가워 편지를 보낸다고 적고 있었는데, 진정한 과학자로서의 면모를 갖춘 타국의 노신사가 보여준 열정이 감동적이기까지 했습니다. 


지난 8월 말 백신 접종률이 50%가 되지 않았던 시점부터 급감하기 시작했던 일본의 코비드 19 확진자수와 사망자수가 몇 개월째 거의 요동하지 않고 있습니다. 공존하는 호흡기계 바이러스의 주요 특성 중 하나가 계절성 패턴이기 때문에, 겨울철이 되면 일본도 확진자 수 증가를 보일 것으로 생각했으나 아직까지는 조용하군요. 종종 일본의 상황을 두고 mRNA백신을 단기간에 집중해서 맞았기 때문으로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는 듯합니다만, 화이자나 모더나나 백신의 전파방지 효과는 3개월 정도 지나면 급감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죠. 오로지 백신 덕분이라면 지금쯤은 일본도 지난여름 이스라엘과 같이 확진자가 폭증해야 할 시점입니다. 일본의 현재 상황은 견고하고 광범위한 면역을 제공하는 자연감염 인구와 동아시아권의 높은 교차면역 수준없이는 설명하기 힘들다고 봅니다.


한편 우리나라의 코비드 19 관련 각종 지표들은 상당히 암울하며, 유행 곡선 자체가 작위적으로 보입니다. 일반적으로 자연스런 유행 곡선이란 일본처럼 포물선을 그리면서 깨끗하게 증가했다가 떨어지는 패턴을 보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도 조만간 일본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아직까지 학교에서 확진자 1명 나왔다고 전교생 전수 조사하고 무증상자들을 격리하는 어이없는 방역정책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에 그 시기가 계속 늦춰지고 있을 뿐입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그물의 망보다 그물에 뚫린 구멍이 훨씬 컸던 K방역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 주위에 존재하는 수많은 무증상과 경한 증상자들이 지역사회 전파를 시키고 있으며, 이 숫자가 일정 규모에 이르면 우리도 확진자 감소를 경험하게 될 겁니다. 다만 일본은 의료시스템의 부담이 적은 여름철에 확진자수가 급증한 반면, 우리는 호흡기계 질환의 사망률이 높은 겨울철이기 때문에 시기적으로 좋지 않고 더 긴 기간이 필요하다는 악조건하에 있습니다.



일단 바이러스가 지역사회 전파를 시작하면 이순신 장군의 "生卽死 死卽生"의 원리가 바이러스와 인간의 싸움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바이러스는 퍼지면 멈추고, 인간이 인위적인 수단을 이용하여 전파를 막으려고 하면 잠시 멈칫할 뿐 다시 퍼집니다. 따라서 "바이러스 지역사회 전파 후"에는 <감염을 허용해도 되는 저위험군>과 <위중증 환자가 될 가능성이 큰 고위험군>을 구분하는 투트랙 전략이 사용되어야만 합니다. 고위험군이 사용할 수 있는 백신이 존재하는 상황이라면 더욱 그러합니다. 이건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에 가깝습니다만, K방역과 같이 무조건적인 “확진자 최소화”를 방역 목표로 두게 되면 이러한 논의 자체가 불가능해지죠. 


그러나 투트랙 전략도 유행 양상에 따라 일시적으로 보류해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바로 지금처럼 의료시스템의 과부하가 예상되는 시점입니다. 이 때는 저 위험군과 고위험군 모두 전파 억제에 참여해야 하며, 그 기간 동안 신속하게 의료시스템을 재정비하는 것은 정부의 몫입니다. 단, 이 시기의 전파 억제 정책은 강력하되 단기간이어야 하며, 의료시스템 재정비가 완료되면 다시 투트랙 전략으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미 감염과 전파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이 알려진 백신을 두고 백신접종군과 미접종군을 나눠서 적용하는 차별정책은 사회에 갈등과 혼란만 초래할 뿐 큰 의미가 없다고 봐야 합니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백신접종자가 대다수인 사회에서 더욱 그러합니다. 


최근 다시 사회를 닫으면서 질병 청장께서 일상 회복을 위한 3가지 조건을 이야기했더군요 (1) 병상이 늘고 (2) 확진자가 줄고 (3) 중환자가 감소해야만 일상 회복을 검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제가 동의할 수 있는 조건은 (1) 번밖에는 없어 보이는군요. 중환자 수란 기본적으로 병상 준비 상황에 연계하여 판단해야 하는 수치죠. 우리나라는 인구 천명당 병상수가 일본에 이어 2번째로 많은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5천만 명이 넘는 인구수를 가진 국가에서 천명에 못 미치는 위중증 환자수에 손을 들었다는 것은 사실 놀라운 일입니다. 현재 우리나라 위중증 환자수는 인구 백만명당 20명이 채 되지 않는데, 이 정도는 서구권에서 유행이 잠잠했을 때 보였던 수준입니다. 서구권에서 유행의 정점을 보였을 때는 인구 백만 명당 ICU 입원 환자수가 60~100명 정도에 이르기도 했죠. 


여기에 더하여 아직도 확진자 수와 역학조사를 이야기하는 것을 보니 여전히 확진자 수, 위중증 환자수, 사망자수로 이어지는 일차 방정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합니다. 특히 <무증상 혹은 경한 증상 확진자>란  다름 아닌 <건강한 사람>과 동의어로, 이런 사람들이 많아져야만 유행 종식이 가능하다는 점을 방역당국이 먼저 이해할 수 있어야 우리 사회가 K방역 이라는 덫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겁니다. 건강한 사람들이 일상생활을 하면서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무증상, 경한 증상 감염은 가장 효과적인 광범위 백신이며, 백신 접종 후 경험하는 돌파 감염은 안전한 부스터 샷으로 역할을 하게 됩니다. 유행이 장기화된 상황에서는 더 이상 이들을 전파원의 관점에서 보아서는 안 됩니다만, 아직까지 사고의 전환이 불가능한 이유가 무엇인지 참으로 이해하기 힘듭니다. 


우리나라가 위드 코로나를 시작한 시점은 시기적으로 좋지 않았으며 준비도 제대로 되지 않은 듯합니다만, 어쨌든 시간이 지나가면 우리나라도 유행 곡선이 꺾이게 될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공존하는 바이러스를 상대로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증상 유무에 관계없이 PCR 검사를 계속하는 한 우리는 영원히 이 수렁에서 탈출할 수 없습니다. 이미 이웃 나라에서 무증상자와 경한 증상자는 PCR 검사를 하지 않아도 별일 없다는 답안지를 보여준 셈이나 마찬가지인데, 애써 외면하지 말기 바랍니다. 코비드 19 정도의 감염병은 우리가 독감처럼 대우하면 독감이 되고, 에볼라급으로 대우하면 에볼라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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