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덕희 Dec 26. 2021

백신 미접종자에게 드리는 작은 위로의 글

백신 미접종자에 대한 사회적 압력이 날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군요. 현재 우리나라 백신접종률은 80%를 넘기면서 OECD 1등입니다. 하지만 정부에서는 <8백만의 백신 미접종자가 있는 한 코로나는 끝나지 않는다>는 인식하에, <백신접종률 100% 달성>을 국가적 당면 과제로 선정한 듯싶습니다. 방역 만능주의와 백신 만능주의가 일란성쌍둥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K방역과 함께 하는 전 국민 백신 접종은 어쩌면 정해진 수순이었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코로나가 끝나지 않는 이유는 백신 미접종자 때문이 아니라, 서주현 선생님이 쓰신 편지글에 나오는 <멍청한 PCR 검사> 때문입니다.


이제는 다들 인정하겠지만, 코비드 19는 우리와 공존하게 될, 아니 이미 하고 있는 바이러스입니다. 공존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백신접종자든 미접종자든 관계없이 앞으로 <반복적으로> 이 바이러스에 대한 노출과 감염을 경험하면서 살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백신을 강요하는 전문가들은 백신 접종 없이는 코비드 19 바이러스와의 공존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합니다만, 이는 전적으로 기우입니다. 오히려 건강한 면역시스템을 가진 백신 미접종자들은 이러한 공존을 진정으로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귀한 사람들입니다. 


항원성 원죄 (original antigenic sin)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면역계가 최초로 경험했던 병원체에 대한 기억이 그 이후 유사한 병원체에 노출될 때 면역계 반응을 결정한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끊임없이 변이를 야기하는 바이러스의 경우, 최초 노출 경험을 바이러스 전체로 했던 사람에 비하여 특정 부위만 백신을 통하여 먼저 경험한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불리합니다. 전자의 경우 바이러스에 변이가 발생했다 하더라도 여전히 바이러스를 통째로 인지하여 적절히 반응할 수 있습니다만, 후자의 경우에는 최초로 경험했던 특정 부위에 대한 항체만을 대거 생산함으로써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개념을 인구집단에 적용하면 현재 관찰되고 있는 현상에 대한 설명이 가능해지기도 합니다. 지금 시점 (1)백신접종률과 (2) 인구수 대비 자연 감염자 수 규모가 동일하다 하더라도, 백신과 자연감염 둘 중 어느 것을 먼저 경험한 사람이 많은가? 에 따라 변이 바이러스 등장 후 유행양상이 달라질 수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백신접종율을 높인 다음 위드 코로나를 선언했던 다른 서구권 국가들보다 유행 초기부터 위드 코로나에 가까운 방역정책을 가졌던 스웨덴의 현 상황이 더 좋은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뒤늦게 자연감염의 중요성을 인지했다 한들, 백신 접종 전부터 건강한 사람에게 자연감염을 허용했던 국가들이 보유한 저항력 수준을 이제 와서 다른 국가가 모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입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이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방역 패스의 확대 적용과 함께 공공연한 차별의 대상이 된 소수의 성인 백신 미접종자들과 청소년, 어린이, 영유아들이 그들입니다. 이들이 앞으로 경험하게 될 자연감염은 PCR 검사만 하지 않으면 대부분 모르고 지나갈 무증상 혹은 경미한 증상으로, 백신으로 인한 항원성 원죄로부터 자유로운 저항력을 우리 사회에 제공해줄 수 있는 자원들입니다. 그러나 국가에서 우리나라 코비드 19 상황이 나빠지는 주범으로 이들을 공개적으로 지목하고 각종 차별정책을 광범위하게 도입하면서, 이들 숫자가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군요. 


나심 탈레브가 쓴 “안티프레질”은 이 블로그의 주제인 호메시스 개념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모든 분야에 적용시킨 책입니다. 이 책에는 복잡한 수학 모델링으로 새에게 날아가는 법을 가르치고 논문을 쓰고 연구비를 따는 과학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들은 이를 두고 신기술이라고 부르죠. 실험실에서 만들어낸 백신이 건강한 유기체의 면역시스템이 하는 일을 대신할 수 있다고 믿는 현대 사회의 대부분 전문가들은 새에게 나는 법을 가르치고자 했던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숫자도 모르는 새들이 완벽하게 날 수 있듯이, 건강한 유기체의 면역시스템은 그 자체로 최적화된 시스템입니다. 영유아, 어린이, 청소년들은 수많은 바이러스, 박테리아, 곰팡이들과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하면서 최적화된 시스템을 향하여 나아가는 과정에 있고요. 2년 동안 국가로부터 방역이라는 이름으로 강요된 모든 것은 이를 방해하는 역할을 했었고, 지금은 여기에 긴급 승인으로 사용 중인 백신을 더하고자 하는군요. 그동안 감염병에 대한 현재의 견고한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하여 나름 노력해 보았습니다만, 별 성과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부디 새해에는 새에게 나는 법을 가르치고 물고기에게 헤엄치는 법을 가르치고자 하는 어리석음으로부터 우리 사회가 벗어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좀 더 퍼져야 멈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