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진자 수 증가와 함께 다시 방역이 첨예한 정치적 이슈가 되고 있군요. 새 정부 출범 후 확진자 수 헤아리기를 과감히 중지하고 독감처럼 마스크, 검사, 격리 등을 자율에 맡기는 바이러스와의 공존 전략을 수용했더라면 이런 혼란을 피해 갈 수 있었을 텐데 현 상황이 참으로 안타깝군요.
Doing nothing is often better than doing something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뭐라도 하는 것이 하지 않는 것보다 항상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경우에 따라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은 경우도 많습니다. 아이를 키울 때 부모가 조바심 내지 않고 그냥 지켜보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듯, 코비드 19와 같은 감염병도 건강한 사람들은 국가가 개입하지 않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입니다. 그런데 이걸 두고 K방역 지지자들은 <방역 포기>라고 비난하고 있군요.
감염병 유행시 국가가 사용할 수 있는 2가지 <과학적인> 방역정책이 있습니다. (1) 봉쇄전략과 (2) 완화 전략이죠. 봉쇄전략의 목표는 전파 최소화에 있고, 완화 전략은 피해 최소화를 목표로 의료시스템 과부하 방지에 초점을 맞추는 방역정책입니다. 교과서적으로는 지역사회 전파 발생 전에는 봉쇄전략을 사용하다가 발생 후에는 완화 전략으로 옮겨간다고 적고 있습니다만, 병원체 특성상 공존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되면 의료시스템 확충과 재정비후 완화 전략으로 신속히 옮겨 가야만 전체 사회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코비드 19 바이러스는 처음부터 공존할 수밖에 없었던 바이러스였습니다. 무증상과 경한 증상자가 매우 많으면서 전파력이 높고 변이가 계속 발생하는 RNA 바이러스라는 사실을 중국 우한, 대구 신천지 사태 때부터 알 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최근 한 인터뷰에서 K방역의 핵심 인물 중 한 분이 지난 정부의 방역정책은 코비드 19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상태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불가피한 면이 있었다고 해명하고 있었습니다만, <공존할 수밖에 없는 바이러스>란 사실은 유행 초기 제한적인 지식만으로도 충분히 판단 가능했습니다.
따라서 코비드 19에 대한 과학 방역이란 아래 정도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1) 유행 초기 의료시스템 확충 및 치료 전략을 수립하기 위한 시간 벌기 목적으로 단기간 봉쇄전략을 유지했다가 (2) 적절한 시점에 고위험군과 환자 중심의 완화 전략으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특히 지금까지 방역당국에서 주장해왔듯 고위험군을 위한 안전하고 효과적인 백신이 존재한다면 매우 신속하게 완화 전략으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완화 전략 하에서도 치명률이 높은 고위험군 환자 발생 속도를 조절하기 위하여 다양한 방역 정책이 사용될 수 있으나, 그 강도는 의료시스템 준비 상황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리고 이때 치명률 0%에 수렴하는 건강한 사람들은 의료시스템 과부하가 없는 한 자율 방역 기조하에 본인의 삶을 살도록 허락해야 합니다. 일차적으로는 사회 기능을 가능한 한 정상적으로 유지함으로써 방역 정책으로 인한 2차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입니다만, 여기에 더하여 <교과서나 논문에는 나오지 않는 감춰진 이유>가 하나 더 있다고 봐야 합니다. 코비드 19와 같은 감염병은 자연 감염을 경험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많아져야만 바이러스와의 안전한 공존이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방역의 승패는 봉쇄가 필요할 때는 그에 맞는 전략을 사용하고, 완화가 필요할 때는 그에 맞는 전략을 사용하는 데 있습니다. 만약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봉쇄가 시급한데 완화 전략을 사용하거나, 완화로 넘어가야 할 시점에 계속 봉쇄전략에서 사용할 법한 정책을 고집한다면 사회적으로 가장 큰 피해를 가져오는 최악의 조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K방역이 그러했다고 봅니다. K방역이란 무증상자가 많은 공존할 수밖에 없는 바이러스를 상대로 3T라는 전형적으로 봉쇄전략에 사용하는 방법을 무려 2년간 유지하면서 유행의 책임을 특정 개인, 특정 집단에 전가했던 방역 정책입니다. 그로 인하여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고 의심하고 혐오하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 버렸죠.
여기서 K방역 지지자들은 우리나라 코비드 19 사망률과 초과사망이 서구권보다 월등하게 낮다는 점을 두고 K방역의 성공이라고 반발할 듯합니다만, 이는 전적으로 착각입니다. 동아시아권과 서구권은 처음부터 코비드 19에 대한 저항력 자체가 달랐습니다. 예를 들면 유행 초기부터 PCR 검사를 제한하면서 완화 전략에 가까운 방역정책을 가졌던 세계 최고령국 일본의 코비드 19 사망률과 초과사망은 한국보다 더 낮습니다. 다시 한번 초과사망이란 PCR 검사건수 등과는 아무런 관계없는 방역정책의 최종 성적표와 같은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K방역의 가장 큰 수수께끼는 PCR 검사를 제한했던 일본에서 <서구권과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고 별일없음>을 2020년 초부터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 정보에 기반한 동선 추적으로 사회를 공포로 몰고 갔던 3T를 계속 고집했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요?
뿐만 아니라 처음부터 공존할 수밖에 없는 바이러스임을 깨끗이 인정하고 완화 전략을 적극 수용했던 대표적 국가인 스웨덴 역시 초과사망이 유럽 최하위권에 속하죠. 노마스크 노락다운 혹은 집단면역으로 유명한 스웨덴에 대한 최근 소식은 "WHO 초과사망 보고서에 대한 신문기사를 본 소감"을 참고로 하시기 바랍니다. 완화 전략 과정 중 자연감염을 통하여 올라가는 집단면역은 <과학적 방역 정책의 필연적 결과물>로 바이러스와 공존까지 이르게 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무조건적인 확진자 수 최소화를 목표로 했던 K방역은 <집단면역 형성을 막기 위하여> 최선을 다한 방역정책으로, 그 어리석음의 대가를 오미크론 변이 유행 때 치렀다고 봅니다.
지난 2년 동안 <의미 없는 확진자수 최소화>와 <감염과 전파를 막을 수 없는 백신접종률 극대화>를 위하여 우리 사회에서 벌어졌던, 일일이 열거하기도 낯 뜨거운 수많은 일들은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위한 것이었다고 봅니다. 당장 숫자로 표시되는 실적을 두고 자신들의 정치적 성과로 삼기 원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확진자수와 백신접종률이 그렇게나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일일 사망자수 1,2명에 확진자수가 천명 넘었다고 거리두기 4단계를 실시하고, 백신접종률 OECD 1위 국가에서 백신 패스 제도를 도입한 배경이기도 하고요. 반면 완화 전략의 핵심인 의료시스템 확충과 재정비에는 거의 관심을 가지지 않았음이 2020년과 2021년 겨울 반복해서 드러난 바 있죠. 이 모든 것이 K방역이 과학 방역과는 아주 거리가 먼 이유입니다.
지금이라도 코비드 19와 같은 감염병은 건강한 사람은 그냥 두고 고위험군과 환자에만 집중하는 것이 진정한 과학 방역이라는 점을 국민들에게 정확하게 이해시켜야만 이번과 같은 어리석은 일이 우리 사회에서 반복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하루속히 확진자 수 언론 보도, 실내 마스크 의무화, 자가격리 의무 등과 같은 일도 중지하고 바이러스와 공존을 향해 나아가는 진짜 완화 전략을 우리 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