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말 미국의 대표적인 시사잡지 중 하나인 디 애틀랜틱지에 “Let’s declare a pandemic amnesty”라는 제목의 기고문이 실렸더군요. 브라운 대학의 경제학자인 Emily Oster교수가 쓴 이 글의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마스크, 락다운, 학교 폐쇄, 백신 등 우리는 팬데믹 동안 심각한 잘못을 저질렀다 (2) 그러나 이 모든 일은 정보가 부족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을 뿐이다 (3) 따라서 방역 정책을 이끌었던 이들에 대한 소모적인 비난은 멈추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이 글에 대한 해외 반응은 매우 싸늘한 듯합니다. #PandemicAmnesty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팬데믹 사면이란 결코 없을 것이며, 끝까지 책임을 묻고 따져보겠다는 글들이 줄을 잇고 있군요. 특히 결과적으로는 잘못된 판단이었으나 사회에 도움을 주고자 선의를 가지고 한 일이었니 용서해야 한다는 Oster교수의 주장은 많은 분노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2020년 10월 발표된 그레이트 배링턴 선언문에 서명했던 15,000여 명의 전문가들을 포함하여, 유행 초기부터 방역정책으로 인한 피해가 감염병 유행으로 인한 피해보다 더 클 것이라고 주장했던 수많은 목소리가 존재했는데 이제 와서 몰랐다고 주장할 수는 없는 일이죠. 마스크든 백신이든 미국 CDC, 그리고 그들과 뜻을 같이 하는 전문가들과 다른 주장들은 모두 빅테크에 의하여 철저하게 검열당하고 삭제당했다는 점에서 더더욱 이런 변명은 궁색하기 짝이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코비드 19사태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 지난 2년 동안은 정보가 부족했기 때문에 불가피했으며 당시로서는 최선이었다고 해명하는 전문가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공존할 것인가? 박멸할 것인가?”를 결정하기 위하여 필요한 정보 정도는 중국 우한, 대구 신천지 사태때부터 알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들의 해명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특히 유행 초기 한국과 전혀 다른 방역 정책을 가졌던 일본에서 별 일 없음을 목격하고도 못 본 척 했다는 점에서 그들이 했다는 판단의 진정성에 의구심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해외에서는 팬데믹 시 대응을 두고 사면을 해야 한다, 아니다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논란이 시작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있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소한 그들의 정책이 잘못되었음을 범사회적으로 인지하고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을 통하여 특별히 문제 의식을 가지지 못했던 대중들이 이번 사태를 다시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면, 미래에 동일한 일이 반복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겁니다.
한편 우리나라는 대다수 국민들이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인지조차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어떤 국가보다 상황이 심각합니다. 오로지 코비드 19로 인한 피해가 대부분 서구권 국가들보다 작았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모든 것을 덮고 지나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듯합니다. 서구권이야 피해가 컸으므로 그런 논란이 당연하겠지만, 한국이야 피해가 적었는데 뭐가 문제냐는 식이죠.
하지만 한국은 <확진자 수 최소화>라는 무의미한 방역 목표를 가지고 2년 동안 전체 사회를 고사 직전까지 밀어 넣은 다음, 이미 감염과 전파를 막을 수 없다고 알려진 백신을 가지고 <백신접종률 최대화>로 승부수를 던진 국가입니다. 그 결과가 오미크론 유행시 확진자수, 사망자수, 초과사망 폭발이었고요. 그 과정 중에 전면 락다운을 선택했던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인권 및 기본권 침해 사례들이 있었고, 경제와 교육에 심각한 피해를 가져왔죠. 특히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만 가능했다는 개인 정보에 기반한 동선 추적은 사회에 공포를 조장하고 특정 개인과 특정 집단에 대한 마녀 사냥의 도구로 유용하게 사용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한국은 미국 CDC와 WHO가 권장했던 방역정책의 방향성에 가장 충실히 따랐던 국가입니다만, 유행 초기부터 PCR 검사를 제한하고 어떤 방역 정책도 의무화하지 않았던 일본보다 성적이 더 나쁩니다. 서구권에서도 가장 느슨한 방역 정책을 가졌던 스웨덴의 초과 사망이 유럽 최하위권이죠. 건강한 사람들이 경험하고 지나가는 자연감염에 대하여 국가가 과도한 개입을 하지 않았던 국가들일수록 오히려 성적이 좋다는 이런 놀라운 결과를 보고도 왜 아무도 질문을 던지지 않는 걸까요? 우리 사회를 지금까지 지배했던 고정 관념, 즉 감염병은 무조건 전파를 억제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대전제 자체에 심각한 오류가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요?
현재 우리나라 국민들 대다수는 지난 정부가 반복하여 세뇌시킨 <전 세계가 감탄한 K방역>이라는 프레임에 갇혀서 코비드 19 사태와 관련하여 질문을 던지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그러나 한국은 코비드 19 사태에 대한 철저한 복기가 그 어떤 국가보다 시급한 나라입니다. 이런 복기가 전혀 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세계 유일의 실내 마스크 의무화라는 어처구니없는 제도가 아무런 질문 없이 사회에서 받아들여지고, 백신 접종 피해자 가족들이 길 위에서 눈물을 삼키고 있는 것입니다.
코비드 19 사태는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렸는지가 이미 자명하게 드러난 사건입니다. 이런 명백한 결과를 앞에 두고도 어떤 질문도 던지지 못하는 사회가 된 우리나라가 참으로 걱정스럽습니다. 질문 없는 사회란 죽어가는 사회와 동의어로, 과거에서 배우지 못한 자는 과거를 되풀이한다는 오랜 격언이 이 땅에서 재현되지 않기를 바랍니다.